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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름엔 뒷마당 메밀꽃 피우며 느낀 ‘풍요로움’ 담았단다”

등록 2020-12-03 20:41수정 2021-01-04 16:26

[축하합니다] 세째 레아에게 엄마가 주는 편지
전사랑씨의 3남매가 함께 놀고 있다. 지난 5월 쌍무지재가 뜨고, 메밀꽃이 피던 날 세째 레아가 태어났다. 사진 전사랑씨 제공
전사랑씨의 3남매가 함께 놀고 있다. 지난 5월 쌍무지재가 뜨고, 메밀꽃이 피던 날 세째 레아가 태어났다. 사진 전사랑씨 제공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하자 임신
아빠는 돌밭에 메밀씨 뿌려 가꿔
분홍빛 꽃송이 웉트던 날 태어나
“행복은 삶 가꾸는 능력에 달려”

레아에게.

네가 태어난 날은 화창하고 푸르른 봄 날, 네 아빠가 새롭게 만든 잔디를 밟으며 네 오빠·언니와 함께 꽃을 보고 바람을 느꼈던 날 이었어. 뭔가 좋은 일, 특별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좋은 날이었지. 널 맞이하던 올해 5월, 네가 태어날 즈음에 보여준다며 아빠가 씨 뿌려 키운 메밀밭에 작은 꽃송이들이 움트고, 엄마가 본 중 가장 아름다운 핑크빛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어. 또 갓 움튼 잔디가 청록색 융단같이 돋아나 보는 눈을 상쾌하게 했지. 자연의 섭리, 그 신비로움을 매일같이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어. 땅이란 것이 신기한 게, 매일같이 아빠가 물을 주고 기른 정성만큼, 말없이 아름다운 색채로 기쁨으로 돌려주더구나.

레아가 태어난 지난 5월 뒷마당에 키운 메밀이 분홍빛 꽃을 피웠다. 사진 전사랑씨 제공
레아가 태어난 지난 5월 뒷마당에 키운 메밀이 분홍빛 꽃을 피웠다. 사진 전사랑씨 제공

결혼 전 아파트에서만 살던 엄마는 마당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하고, 너를 임신하고 땅의 기운을 느끼면서 처음으로 대지의 풍요로움을 느꼈어. 아빠는 황무지 같았던 뒷마당에서 돌을 골라내고, 흙을 갈고, 거름을 주고 가꾸었어. 봄이 되자 네 오빠와 언니는 뒷마당에서 기른 갓 가지 채소를 수확하며 기뻐했지.

아빠는 참으로 귀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야. 자신의 주변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부드럽고 강한 에너지를 나눠주거든. 잿빛을 다채로운 색상으로 틔워내려 기다리고, 묵묵히 물을 주고 거름을 주며 밭일을 하는 아빠를 지켜보며 공간도, 땅도 누구의 손에 맡겨지느냐에 따라 이렇게 변화하는데 하물며 한 사람이 어떻게 키워지고 무엇을 보고 자라는지에 따라 얼마나 바뀔까 생각하며 너를 기다렸단다.

지난 봄 산기슭에 자리한 주택의 마당에서 아이들이 쌍무지개를 가리키며 놀고 있다. 사진 전사랑씨 제공
지난 봄 산기슭에 자리한 주택의 마당에서 아이들이 쌍무지개를 가리키며 놀고 있다. 사진 전사랑씨 제공

솔직히 고백하면, 자식 사랑이 각별한 아빠가 셋째를 원했을 때, 엄마는 자신이 없어 반대 했었어. 가정경제도 고민이 되고 이미 두 번의 출산을 경험해 본 엄마로서 또 다시 임신을 하고, 10개월 동안 기다리고, 출산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신생아 양육을 다시 한다는 것이 자신 없었지. 하지만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너를 임신한 동안 엄마는 더 없이 풍요로운 감정을 만끽했어. 그리고 풍요로움이란 물질적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실감했지. 세입자일 뿐이라 불안한 마음도 있지만 어디서든 우리의 삶을 가꾸며 행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들었어.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족을, 공간을 그리고 삶을 가꿀 줄 아는 능력에 달려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너의 이름을 ‘대지’, ‘풍요’를 뜻하는 레아(Rhea)로 지었다. 야들야들한 네 손을 만지고, 너를 끌어안고 심장을 느끼고, 너의 아기냄새를 흠뻑 맡고, 오빠와 언니 사이에서도 부드럽지만 당당하게 존재를 드러내는 너를 보고 있으면 가슴 벅찬 행복을 느낀다. 매일 벅찬 행복만큼 버거운 육아에 주저앉을 때도 있지만 아름다운 꽃이 피기를 기대하며 묵묵히 물을 주고 거름을 주듯이 엄마는 오늘도 엄마의 할 일을 한단다.

엄마 전사랑

‘축하합니다’ 원고를 기다립니다

<한겨레>는 1988년 5월15일 창간 때 돌반지를 팔아 아이 이름으로 주식을 모아준 주주와 독자들을 기억합니다. 어언 32돌이 지나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고 있습니다. 저출생시대 새로운 생명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축하합니다’는 새 세상을 열어갈 주인공들에게 주는 선물이자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나 축하의 글을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또는 인물팀(peop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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