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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 이름으로 살아야 했던 ‘원통함’ 다 잊고 잘 가요”

등록 2020-11-12 19:39수정 2020-11-13 02:34

막내 이모에게 보내는 추모글
1963년 필자의 큰누나 시집가는 날. 신부 오른쪽 바로 옆이 막내 이모(이달녀). 오른쪽 끝이 모친(이원녀)이다. 김시열 주주통신원 제공
1963년 필자의 큰누나 시집가는 날. 신부 오른쪽 바로 옆이 막내 이모(이달녀). 오른쪽 끝이 모친(이원녀)이다. 김시열 주주통신원 제공

이름 없이 아흔셋 삶을 살다 간 여자, 평생 자기 이름조차 갖지 못하고 떠나간 한 여자를 기립니다. 핏줄로 맺은 인연을 떠나, 제게 잔잔하지만 울림 있는 가르침을 준 어른으로서 그니를 그리워하고 잊지 않으려 짧은 기억을 남깁니다. 남 앞에 나서거나 당신을 내세우기 싫어하는 성품인지라 제가 이렇게 글을 쓰는 걸 아시면 괜한 짓 말라며 핀잔을 주셨을 겁니다.

1927년 경북 예천군 용문면 구렬 전주 이씨 이순행님의 셋째딸로 태어난 이달녀. 언니 이름으로 평생을 살다 지난 10월24일 돌아가셨습니다. 달녀가 태어나기 이태 앞서, 언니 달녀가 세상에 나왔지만, 돌림병으로 세상 구경 하자마자 무덤조차 없이 하늘나라로 올랐답니다. 부친은 사망신고도 하지 않은 채, 새로 태어난 딸에게 달녀란 이름을 그대로 물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아기는 태어나자마자 세 살이 되었지요.

그 막내 달녀의 큰언니 ‘원녀’가 내 어머니입니다. 1917년생이니 막내 이모와 열 살 터울입니다. 두 분 사이에 작은이모님이 계셨으니 세 자매였지요. 외할아버지가 경북 영천에서 서당 훈장을 한 집안 분위기가 한몫한 것일까요. 세 자매를 꿰뚫는 닮은 점은 책읽기입니다. <조웅전>, <유충렬전>, <장화홍련전>, <강릉추월전>, <옥루몽>, <토생원전> 따위 이야기책을 외울 듯이 읽었다고 합니다. 세 자매는 책을 베끼고 서로 읽어주며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머니는 시집을 온 뒤에도 농사를 끝내고 밤이 되면 동네 아낙들을 호롱불 아래 모아놓고 책을 읽어주었습니다.

저 역시 어릴 때 어머니가 소리 내어 책 읽는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또렷한 발음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대로 슬프고 기쁘고 화나고 즐거운 감정을 실은 목소리가 물결처럼 다가왔다가 멀어지곤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등장인물에 따라 목소리를 달리 냈습니다. 시인들이 시 낭독하는 모습과도 많이 닮았지요.

달녀 이모가 몇 살 때 어디로 시집갔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결혼 몇해 만에 남편을 여의고 어린 아들과 단둘이서만 사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참 지나서 제가 장가들고 1995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모가 경기도 부천에 사실 때 가끔 만났습니다.

2000년대 초에는 이모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때 뚜렷한 직장도 없었던 제가 찾아가면 늘 따뜻한 밥을 지어주시고 따로 용돈도 건네셨지요. 당신도 단칸방에 혼자 살며 그리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습니다. 늘 큰언니 이야기를 꺼내면서 친아들 대하 듯이 저를 거두었습니다.

이모에 대한 기억은 이처럼 조각나 있지만 뚜렷합니다. 따뜻하고 겸손하며 이야기를 참 잘 들어 주는 분이셨습니다. (요즘 자주 듣는 ‘어른이 없다’는 말은 ‘들어주는 사람이 없다’는 뜻 아닐까요. 이모를 생각하니 그런 생각이 듭니다.) 늘 넉넉하게 웃을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세 자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우셨죠. 당신이 살아가면서 도움받았던 말씀을 많이 해주셨고, “어렵더라도 너무 걱정말고 밥은 꼭 챙겨 먹고 다녀라. 반찬이 없으면 밥이라도 든든하게 먹어라. 사람이 굶어 뱃심마저 없으면 쓰러진다”라며 힘을 불어 넣어주셨지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제가 이런저런 인물의 구술자서전 8권을 썼는데요. 국회의원, 교수같이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은 ‘혼자 힘으로 이루었다고 믿는 업적’을 가장 앞세우고, 이름 앞에 자리로 치장할 거리가 없는 평범한 이웃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당신네가 살아오며 ‘도움받은 이들 이름’을 먼저 내세웁니다.

“사람 사는 게 별것 없데이. 잊지 않는 거지. 원수진 사람 말고, 도움 준 사람들 말이다.” 그래 이모 잊지 않을게. “내가 이달녀가 아닌데, 순자로 바꾸고 싶었는데, 평생을 이달녀로 살았다. 그게 원통하다. 우리 아부지 때문에 내가 평생을…, 딸이라고 나를….” 괜찮아! 이모. 우린 이름보다 이모가 한결같이 웃으며 다른 이들 사연 귀담아듣고 남들 궁핍한 살림살이까지 안타까워하며 걸어가신 살가운 그 길만 바라볼 거니까. 그 길로 따라갈 거니까. 그러니, 잘 가, 순자 이모.

김시열/주주통신원

&lt;한겨레&gt;가 어언 32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올들어서는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 (<a href="mailto:mkyoung60@hanmail.net">mkyoung60@hanmail.net</a> 또는 <a href="mailto:cshim777@gmail.com">cshim777@gmail.com</a>), 인물팀(<a href="mailto:People@hani.co.kr">People@hani.co.kr</a>).
<한겨레>가 어언 32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올들어서는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또는 cshim777@gmail.com), 인물팀(Peop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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