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외할머니 현명숙 서예가, 딸 지혜씨, 손주 김태현 아기. 사진 현명숙씨 제공
사랑하는 지혜야. 태현이 첫돌 축하한다. 지난 9월 17일은 나의 둘째 딸 지혜가 낳은 손자의 첫 생일이었다. 지혜의 둘째 아이 돌잔치라니…, 꿈만 같다.
지혜가 첫째 나윤이를 낳은 뒤 나는 가끔 이런 말을 했다. “이제 나윤이 동생 봐야지?” 그러면 지혜는 짜증 섟인 반응으로 내 입부터 막곤 했다. 나윤이 아빠는 형제가 없는 무녀독남이다, 그럼에도 둘째를 낳으려 하지 않았다. 사위가 그러니 이유를 물어 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젊은 사람들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어 답답했지만, 어쩌겠는가? 지들 인생이니 더 이상 뭐라 할 수 없어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던 지난해 가을 어느 날 누구 마음이 변했는지 둘째를 가졌다고 했다. 너무나 기뻤지만 내 서예 개인전을 코앞에 두고 있었고, 서예 강의 등 바쁜 일정 탓에 딸을 챙겨주진 못했다. 다행히 첫째 경험이 있어서인지 지혜는 임신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알뜰히 태교까지 하며 2019년 9월 17일 건강한 아들을 낳았다.
둘째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강의 도중 듣고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다. 가족출산센터 병실에 갓난아기와 네 식구가 함께 있었다. 한 생명의 탄생을 이처럼 소중하게 준비하고, 기뻐하는 신세대 출산 현장은 다소 낯설었지만, 그 순간을 함께하지 못해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나윤이는 엄마 뱃속에서 동생이 나왔다고, 선물이라며 좋아했다. 그동안 가족들 사랑을 독차지해온 나윤이가 사랑은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나눠 갖는 것이라는 것을 알까? 두 아이를 보니 옛날 생각이 새록새록 떠올라 딸에게 편지를 띄우고 싶어졌다.
서예가인 서정 현명숙 외할머니가 손주 김태현 아기의 첫돌 선물로 쓴 글이다. 사진 현명숙씨 제공
너도 알다시피 엄마는 늦깎이로 붓글씨를 배웠어. 네 동생을 낳은 뒤 노후에 뭐라도 해야 할 일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거든. 아장아장 걷는 네 동생을 데리고 다니며 붓을 잡은 지 32년. 그렇게 한 길을 걸어 수많은 글씨를 썼지만 네가 부탁한 ‘김태현 첫돌 축하해’는 제일 기쁜 마음으로 썼단다. 가장 보람된 작품 같구나. 붓글씨에 매진하느라 혹여 너를 섭섭하게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 축하 글씨로 엄마의 부족함을 대신하고 싶구나.
지난 달 태현이 돌잔치 때 행복해하는 너희 네 식구를 보며 내 앞에 보물 네 사람이 있구나 생각했단다. 그런 보물과 살면 네 안의 사랑도 몇 배 더 커지겠지? 네 안의 사랑이 커질수록 너의 행복도 커질 거라 믿는다. 황금 같은 이 시기를 충분히 즐기길 바란다. 시어른을 비롯해 온가족을 행복하게 해줘서 정말 고맙다. 너희 가족 엄청 사랑한다.“
현명숙/할머니, 엄마 이지혜, 아빠 김무준
<한겨레>는 1988년 5월15일 창간 때 돌반지를 팔아 아이 이름으로 주식을 모아준 주주와 독자들을 기억합니다. 어언 32돌이 지나 그 아이들이 부모가 되고 있습니다. 저출생시대 새로운 생명 하나하나가 너무나 소중합니다. ‘축하합니다’는 새 세상을 열어갈 주인공들에게 주는 선물이자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나 축하의 글을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또는 cshim77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