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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인생 기러기처럼 즐겁게 살자던 당신 어디 있소!”

등록 2020-10-09 15:26수정 2020-10-16 15:58

부인 이석표 향한 남편 정우열의 사부곡
부인 이석표 향한 남편 정우열의 사부곡
부인 이석표 향한 남편 정우열의 사부곡
2015년 충남 광천 갈매못성지 순례 때 정우열(왼쪽)·이석표(오른쪽)씨 부부.
2015년 충남 광천 갈매못성지 순례 때 정우열(왼쪽)·이석표(오른쪽)씨 부부.
섬유성폐질환 치료 위해 김포로
6년간 서예봉사·의료봉사 함께
두 손 꼭잡고 가장 행복했던 시간
“정말 고마웠소 그리고 사랑하오”

‘이별하는 사람들 날마다 버들 꺾어/ 천 가지 다 꺾어도 가시는 님 못 잡았네./ 어여쁜 아가씨들 눈물 탓이런가./ 부연 물결 지는 해도 수심에 겨워 있네.’

임제(1549~87)의 ‘대동강 노래’(貝江曲)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떠나는 님에게 버들가지를 꺾어 보냈던가?! 그래도 떠나려는 님을 붙잡지도 못했고, 떠나신 님이 돌아오지도 않았다.

나는 아내(이석표)를 보낸 뒤 자주 강둑길의 버드나무 아래 앉아 시를 읊으며 아내를 그리워하는 버릇이 생겼다. 3년 전 이곳 김포 생태공원으로 이사 온 것은 사실 아내 때문이었다. 그때 아내는 섬유성폐질환으로 투병 중이었다. 그래서 환경 좋은 곳으로 찾아온 것이다. 이 생태공원에는 철새 도래지로 기러기, 청둥오리, 백로, 저어새 등 많은 철새들이 서식한다. 나는 당호를 ‘여안당’(기러기와 더불어 사는 집)이라 했다. 기러기처럼 노 부부의 말년을 즐기겠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여보 당신, 어느새 환갑이 되셨구려! 당신 만난 것이 엊그제 같은데. 한 눈 한번 팔지 않고 오직 한 평생 학문만을 위해 살아온 당신. 소 같이 우직하고 때론 목석처럼 무뚝뚝해 외며느리 신세타령 한두 번 아니었소. 그러나, 이제사 당신 큰그늘에 이렇게 서게 되니 모든 것, 눈 녹 듯이 다 녹아 버리고, 당신과 살아온 세월 꿈만 같구려. 여보 당신! 이제, 남은 인생 즐겁게 삽시다!’

아내 한솔이 내 환갑 때 쓴 시다. 그의 칠순 기념 서예전 때 작품으로 전시했다. 그때 아내는 나의 시 ‘길'도 작품으로 만들었다. 아내는 작품에서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걸어가는 부부의 모습을 두 그루의 소나무로 대신했다. 바로 ‘한송’(漢松)과 ‘한솔', 우리 부부를 상징한 것이다.

한솔은 서예가협회 초대 작가로 활동을 하다 2013년 병을 진단받고 모든 활동을 중지했다. 세상을 떠난 지난해까지 6년간 내내 김포장애인복지관과 청수성당에서 서예 봉사를 했다. 나와 함께 의료 봉사도 했다. 그 6년 동안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봉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올 때, 내가 아내의 손을 꼬옥꼬옥 세 번 쥐어주면 아내도 세 번 내 손을 꼬옥꼬옥 쥐어주었다. 나의 '사랑해' 표시에 '나도요'란 응답이다.

2014년 정우열·이석표씨와 전 가족이 알라스카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캐나다 밴쿠버 빅토리아 궁전 앞에서 찍었다. 사진 정우열씨 제공
2014년 정우열·이석표씨와 전 가족이 알라스카 크루즈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캐나다 밴쿠버 빅토리아 궁전 앞에서 찍었다. 사진 정우열씨 제공
이때 '카톡!'하고 멀리 캐나다 밴쿠버 며느리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우리 모두 마음 속에 어머니 생생히 살아 숨쉬고 계서요. 하루도 잊은 날 없이….” 위로의 글과 함께 6년 전 온 가족이 함께 다녀온 알라스카 크루즈 여행 때 찍은 기념사진 몇 장을 보내왔다. 빅토리아 궁전 앞 잔디밭에서 찍은 가족 사진을 보니 그때가 새삼 그립다. 이젠 다시 올 수 없는 그 순간들이다. 자꾸만 아내가 그립다. 그리고 보고 싶다. “여보, 당신! 무엇이 그리 바빠 그리도 빨리 갔단 말이오?”

‘당신은 나의 버팀목! 힘들 때, 정말 힘들 때 당신이 내민 손길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소. 어려울 때, 정말 어려울 때 당신이 해준 말 한마디는 나에게 큰 위안이 되었소. 좌절할 때, 정말 좌절하고 싶었을 때 당신이 바친 그 기도는 나에게 큰 용기를 주었소. 여보, 아네스! 당신은 정녕 나의 버팀목이었소. 고마웠소. 정말 고마웠소. 그리고 사랑하오!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

집으로 들어오는 길, 나는 아내의 고마움에 이렇게 미친 듯 웅얼웅얼 댔다.

한송 정우열/경기도 김포시

* <한겨레>가 어언 32살 청년기를 맞았습니다. 1988년 5월15일 창간에 힘과 뜻을 모아주었던 주주와 독자들도 세월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새로 맺는 인연보다 떠나보내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절입니다. 올들어서는 코로나19 탓에 이별의 의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억합니다’는 떠나는 이들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이자 소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부모는 물론 가족, 친척, 지인, 이웃 누구에게나 추모의 글을 띄울 수 있습니다. 사진과 함께 전자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한겨레 주주통신원 (mkyoung60@hanmail.net 또는 cshim777@gmail.com), 인물팀(Peop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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