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프로그램이냐, 상품 판매용 홍보 콘텐츠냐.’
방송의 생활정보 프로그램이나 교양 프로그램이 특정 제품을 소개하고, 같은 시간대 홈쇼핑 채널에서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홈쇼핑 연계편성’이 종합편성채널(종편)을 넘어 지상파에도 만연해 있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유튜브 뒷광고’는 이달부터 금지됐지만, 연계편성은 ‘뒤편성·은폐광고·기만광고’라는 비판 속에서도 법적 공백으로 합리적 규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 정보성으로 소개, 다른 채널에선 판매 중 지난 15일 <문화방송>(MBC) 아침 프로그램 <기분 좋은 날>에선 ‘알티지 오메가3 똑똑하게 고르는 방법’을 소개하며, 의료진이 나와 “장용성 코팅을 확인하라. 흡수율이 높은 차세대 알티지는 장에서 용해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채널을 돌리자 <현대홈쇼핑>에서 자막과 함께 쇼호스트가 “흡수율을 높이기 위한 차세대 알티지 오메가3, 장용성 캡슐, 방송 최저가”를 외쳤다. 사전 기획 단계에서 ‘흡수율이 높은’ 등 비슷한 표현과 특장점, 효능 등을 소개하며 연계 전략의 효과를 노린 것으로 추정된다. 전날 <에스비에스>(SBS) <모닝와이드>에도 전문의가 나와 “항불안 효과 등 인체의 생리적 작용 조절에 관여하는 역할을 한다”며 새싹보리를 추천했다. 그 시간대 바로 옆 채널인 <씨제이오쇼핑>은 새싹보리를 팔고 있었다.
9월14일 <에스비에스>(SBS) <모닝와이드>에서 혈관 건강과 비만 탈출을 위해 새싹보리를 추천했다. 화면 갈무리
홈쇼핑 연계편성의 출발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종편인 <제이티비시>(JTBC)에서 아사이베리의 효능에 대한 프로그램이 방송된 다음날 아사이베리를 판매하던 홈쇼핑이 큰 매출을 올리자 건강식품 납품 업체들은 종편에 협찬하고 홈쇼핑과 연계 판매하는 방식을 앞다퉈 선택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연계편성 실태조사에 나선 것은 2017년부터다. 서울와이엠시에이(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가 종편 생활정보 프로그램과 홈쇼핑 채널을 모니터링한 결과 유착관계가 의심된다며 연계편성의 위법 여부를 조사해 제재해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연계편성이 종편뿐 아니라 공적 책무가 요구되는 지상파에서도 잇따르자 시청자단체는 “제품을 과신하게 해 합리적 소비를 저해한다”며 반발한다. ‘매체비평우리스스로’ 노영란 사무국장은 “홈쇼핑에서 쇼호스트가 홍보하는 것과 달리 방송에서 전문의가 나와 설명하면 시청자에게 제품에 대한 과도한 신뢰도를 심어줘 잘못된 소비를 조장할 수 있다. 연계편성을 용인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9월14일 <에스비에스> 옆 홈쇼핑 채널인 <씨제이오쇼핑>에서 새싹보리를 판매하고 있다. 화면 갈무리
■ 2019년 연계편성 에스비에스가 종편 앞질러 <한겨레>가 변재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2017년~2020년 초 방통위의 연계편성 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연계편성은 유산균 제품(86회)과 시서스·크릴오일(38회), 노니(32회), 콜라겐(29회) 등 건강보조식품이 대상인 경우가 많았다.
2017년 첫 조사에선 <엠비엔>(MBN) 38회, <티브이조선> 33회, <채널에이> 30회, <제이티비시> 9회로 나타났다. 2018년 7월 지상파 포함 조사에서도 엠비엔이 47회로 가장 많았다. 2019년 11월~2020년 1월 석달간 조사에선 에스비에스가 127회로 종편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방통위는 2018년 조사보고서에서 “연계편성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소비자에게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고 시청률이 높을수록 납품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 협찬 비용이 비싸다”고 문제점을 인정했다. 그러면서도 “종편 또는 홈쇼핑사로부터 강요를 받았다는 사업자를 확인할 수 없어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고, 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며 어떠한 처분도 하지 않았다.
9월15일 <문화방송>(MBC) 아침프로그램 <기분좋은날>에서 ‘알티지 오메가3 똑똑하게 고르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화면 갈무리
언론단체들은 방통위가 결국 시청자에게 피해를 떠넘긴다고 비판한다.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 신미희 사무처장은 “연계편성은 주로 의료·식품 등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분야가 많은데, 이를 제재하지 않는 것은 방통위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봉우 미디어 활동가는 “방송사들이 협찬 고지도 없이 음성적으로 연계방송을 진행해 시청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연계편성을 통해 엄청나게 팔려나간 크릴오일에 대해 식품의약품안전처가 부적합 성분을 적발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지난해 사건이 단적인 사례”라고 질타했다.
방송사 쪽에선 연계편성 자체를 부인한다. 한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우리는 협찬을 받아 계약서에 방송 날짜를 명시한다. 협찬주가 그 정보를 두고 홈쇼핑과 논의를 하는지는 모르겠다. 씨제이처럼 그룹 내에 홈쇼핑이 있는 것도 아니니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9월15일 <문화방송> 옆 채널인 <현대홈쇼핑>에서 ‘알티지 오메가 3’를 판매하고 있다. 화면 갈무리
■ “연계편성은 시청자 오도하는 ‘뒤편성’” 전문가들은 지속적인 감시와 법·제도 정비를 촉구한다. 정연우 세명대 교수는 “방송사는 몰랐다고 발뺌하지만 연계편성의 경우 일반 협찬에 견줘 비쌀 가능성이 크다. 상품 판매의 바람잡이 노릇을 자처해 방송 신뢰도를 갉아먹는 행위로, 시장 교란과 소비자 기만 행위에 엄격한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병희 서원대 교수도 “협찬 고지 없는 연계편성은 유튜브의 ‘뒷광고’처럼 시청자를 오도하는 ‘뒤편성’이다. 방송과 상품 콘텐츠의 경계가 무너져 방송의 공정성 훼손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방송에서 상품 자체를 홍보하는 것은 위법이다. 광고효과가 과도할 때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에서 제재를 한다. 문제는 법 적용이 모호한 사각지대에 놓인 협찬이다. 현행 방송법은 협찬에 대해 ‘고지할 수도 있다’고 규정해 사실상 방송사 자율에 맡겨놓았다. 연계편성을 금지하는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올해 들어 방통위는 지난 5월 협찬의 개념과 허용 범위, 고지 의무화를 뼈대로 한 방송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지금 법제처와 협의 중으로, 10월이나 11월 국회 제출을 목표로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