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당에서 서민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해온 추혜선 전 정의당 의원이 의원직에서 물러난 지 3개월여 만에 통신 재벌인 엘지유플러스에 비상임 자문으로 취업해 논란이다. 외연을 확대해나가겠다는 주장이지만 피감기관으로의 이적은 ‘이해충돌 금지’ 원칙 위배로 공직자윤리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추 전 의원은 언론개혁시민연대(언론연대) 사무총장 등 오랜 언론운동 활동을 인정받아 비례대표로 20대 국회에 입성해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정무위원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통신 재벌 감시와 씨제이헬로비전·엘지유플러스 등 유료방송과 통신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방송 공공성·공익성 등에 앞장서는 의정 활동을 했다. 외주제작·비정규직 중심의 희망연대노동조합 방송스태프지부와 함께 열악한 드라마 제작현장 실태를 고발하며 노동시간 단축 등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했다. 또 재벌의 노조 와해 공작을 고발했으며, 특히 엘지유플러스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앞장섰다. 그는 지난해 ‘을’들을 위한 희망편지라는 내용의 <을편단심 추혜선>이라는 책을 출간해 우리 사회 비정규직 노동자와 약자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지난 4월 총선에선 경기 안양 동안을 지역에 출마했으나 떨어졌다.
추 전 의원이 사무총장 등 오랜 기간 일했던 언론연대는 ‘추 전 의원 엘지행,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제목의 논평을 내어 “추혜선 전 의원이 엘지유플러스의 자문을 맡는다고 한다. 불과 100여일 전까지 자신이 속했던 상임위의 유관기업에 취업한 것이다. 이는 공직자윤리에 명백히 어긋난다”며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 언론연대는 이어 “직업 선택의 자유든 외연 확대든 명분이 될 수 없다. 자본의 이해로부터 거리두기, 이해충돌금지는 그가 속한 진보정당뿐만 아니라 오래 몸담았던 언론시민운동이 엄격히 지키도록 정한 기본원칙이다. 의원직에서 물러난 지 3달여 만에 통신 재벌로 자리를 옮긴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연대는 또 “전직 의원이나 보좌진들을 영입하여 자사 이익에 활용하는 재벌 대기업의 나쁜 관행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국회의 신뢰를 저해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이런 악습을 용인해 온 국회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국회는 업무 관련성 심사기준을 더욱 엄격히 강화해야 할 것”이라며 재벌과 국회도 규탄했다.
논란이 일자 정의당은 추 전 의원에게 엘지유플러스 자문 취임을 철회해달라고 공식 요청했다고 4일 밝혔다. 조혜민 정의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정의당 상무위원회는 지난 3일 추 전 의원이 엘지유플러스 자문을 맡은 것과 관련해 정의당이 견지해온 원칙과 어긋난다고 판단했다”며 “이에 이날 오후 추 전 의원에게 취임 철회를 공식적으로 요청했고 현재 답변을 기다리는 중”이라고 밝혔다. 조 대변인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정무위원회 소속 의원으로 활동했던 추 전 의원이 국회의원 임기 종료 후, 피감기관에 취업하는 것은 재벌기업을 감시해왔던 정의당 의원으로서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라 보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이 일로 인해 여러 우려를 보내주신 당원 및 시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정의당은 진보 정치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고 정의당다운 길을 갈 수 있도록 보다 노력하겠다”고 했다.
공무원은 퇴직 뒤 이직을 하면 이해충돌 방지와 영향력 행사를 막기 위해 취업 제한 기간을 두고 공직자윤리위원회에서 심사를 받아야 한다. <한겨레>는 추 전 의원이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를 거쳤는지 등을 묻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락이 닿지 않았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