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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몸값 높아진 콘텐츠…“고품질 프로그램 국제협업 주목을”

등록 2020-08-25 17:31수정 2020-08-26 09:47

[인터뷰/이창수 유니크스튜디오스 대표]

종편 떴어도 콘텐츠 질은 저하
다큐 제작사로 국제 무대 도전
BBC쪽과 공동기획·제작서 돌파구
3년 전 ‘와일드 코리아’로 호평
뉴욕페스티벌서 최우수상 기염
이창수 유니크스튜디오스 대표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최근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 등과 공동제작한 다큐멘터리 <한국,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방법>(화면) 등 그간 제작한 콘텐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창수 유니크스튜디오스 대표가 지난 18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최근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 등과 공동제작한 다큐멘터리 <한국,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방법>(화면) 등 그간 제작한 콘텐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방송사들은 이제 더는 고전적 방식으로 제작·편성해선 안 된다. 뉴미디어 시대에 망하는 지름길이다.”

다큐멘터리 등 팩추얼 프로그램 전문 제작사인 유니크스튜디오스 이창수 대표는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 인터뷰에서 괴멸 위기에 처한 지상파 방송을 비롯한 국내 방송계에 쓴소리부터 던졌다. 시청률이 떨어진다고 다큐 등 고품질 콘텐츠는 외면한 채 방송사마다 트로트 프로그램이나 먹방 예능, 막장 드라마, 토크쇼 등만 쏟아내는 등 콘텐츠의 다양성과 차별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우리 방송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1991년 <한국방송>(KBS) 조연출로 방송에 입문한 이 대표는 프로덕션 1세대, 케이블방송, 지역 민방, 케이비에스위성티브이 등 당시로선 뉴미디어였던 플랫폼을 두루 섭렵한 뒤 2000년부터 독립 제작사를 운영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를 맞아 미디어가 급격한 환경 변화에 맞닥뜨렸다고는 하지만, 사실 과거에도 뉴미디어의 등장을 둘러싼 도전은 엄존했다. 라디오 시대엔 티브이 등장이, 지상파 시대엔 케이블방송의 등장이 또 다른 도전이자 격변이었던 셈이다.

영국팀과 공동제작한 <와일드 코리아>는 2019년 뉴욕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영국팀과 공동제작한 <와일드 코리아>는 2019년 뉴욕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콘텐츠는 다양해졌을까. 이 대표는 “케이블 초창기엔 말도 안 되는 프로그램도 많았다. 뉴미디어가 뿌리를 내려 정착하기도 전에 또 다른 경쟁 체제가 등장해 시장 환경은 더 나빠졌다”며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나올 때도 혼란스러웠다. 시장은 한두 개 채널이 가능하다고 봤는데 정부가 4개나 허가를 내주며 치열한 경쟁이 시작됐고, 되레 콘텐츠의 질은 낮아졌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내 방송사가 여전히 드라마에 올인하는 풍토도 우려했다. “드라마 투자는 투기성이 높다. 하나 대박 나면 한 해 먹고산다는 개념이 박혔다. 실제로 주목받는 드라마는 1년에 너덧 개밖에 안 된다. 이렇게 드라마에 거액을 투자하면 나머지 장르는 다 죽어간다. 종편이 생기고 더 심해졌다.” 이 대표는 “종편이 생기면 콘텐츠가 다양해지고, 제작사들에 기회가 올 것이라고 했으나 정작 외주제작사에 대한 착취는 더 심해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대표는 콘텐츠를 홀대하는 국내를 벗어나 글로벌 시장 개척에 나섰다. 2011년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급박했던 상황, 서해 5도 바다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의 애환과 생태 환경을 조명한 심층 다큐 <엔엘엘(NLL) 365>를 들고 유명 국외 배급사를 찾았다. 국내에선 호평을 받았지만 이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왜 이걸 배급해야 하는지 100번 넘게 묻더라. 한국 다큐는 스토리텔링이 어렵다고 했다.”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모르는 그들에게 영상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큐의 주제뿐 아니라 네트워크의 한계도 절감했다. “그들에겐 기획자가 누구인지 중요했다. 영어권은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탄탄한 연대를 만들었지만 아시아 끄트머리에 있는 우리는 아웃사이더였다”고 첫 도전의 고배를 토로했다. 이후 10년간 공을 들여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쌓아갔다.

2017년 <와일드 코리아>를 공동제작한 영국팀과 함께 경기도 양평에서 세트장을 만들어 장수말벌이 꿀벌을 공격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이창수 유니크스튜디오스 대표 제공
2017년 <와일드 코리아>를 공동제작한 영국팀과 함께 경기도 양평에서 세트장을 만들어 장수말벌이 꿀벌을 공격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있다. 이창수 유니크스튜디오스 대표 제공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가 2년 전에 보도·편성만 남기고 내부 제작팀을 자회사로 독립시킨 변신에서도 우리 방송계의 경영난 극복을 위한 시사점을 찾는다. 이 대표는 “비비시는 플랫폼으론 더는 존립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드라마·코미디·예능·다큐 등 인하우스 제작팀과 세계적 배급사 비비시월드와이드를 합병해 ‘비비시스튜디오’라는 상업회사를 만들어 독립시켰다. 지금은 이 매출 구조가 방송사를 먹여 살린다. 넷플릭스나 디즈니가 이곳의 콘텐츠를 사가거나 드라마 시즌2를 통째로 주문한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도 이들을 협업 파트너로 택해 함께 작품을 만드는 데 힘쓰고 있다.

그는 “국제 공동기획과 제작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며 우물 안의 개구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을 가르는 디엠제트(DMZ), 제주 해녀 이야기, 말벌 등 경이로운 야생을 생생히 담은 다큐 <와일드 코리아>는 공동제작의 첫 성공을 이끌었다. 그는 “평창겨울올림픽을 앞두고 2017년 비비시 쪽과 함께 한국을 1년간 촬영했다. 문화적 이질감을 고려해 한국·영국·글로벌용까지 맞춤형으로 3개 버전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씨제이이엔엠(CJ ENM)의 참여로 <티브이엔>(tvN)에서 방송된 한국 버전엔 연예인들이 나온다. 출연자 없이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영국 비비시 버전도 호응이 높았다. <와일드 코리아>는 지난해 뉴욕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며 그 수준을 인정받았다. 이 대표는 “영국·독일·중국 등과 협업하되 현장을 꼭 가야 할 경우를 제외하곤 현지 전문가를 활용할 때 콘텐츠 강자가 되는 세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코로나 시대, 경비 절감과 안전을 위한 최적의 방안이라는 것이다. 지난 6월 비비시에 방송된 <한국,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방법>도 공동제작의 결과물이다.

그는 창의적인 콘텐츠라면 이용자가 직접 찾는 시대를 예고했다. “과거엔 방송사가 ‘갑’이었지만 지금은 콘텐츠가 ‘갑’이다. 코로나19로 콘텐츠의 씨가 말라 재방·삼방이 이어지는데, 앞으로 콘텐츠 수요는 더 확대될 것”이라며 “드라마뿐 아니라 고품질 다큐를 보기 위해 비용을 주고라도 넷플릭스를 찾는 이유”라고 말했다.

문제는 제작비다. 경쟁력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위해선 제작 능력뿐 아니라 만만찮은 비용이 필요하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조성된 방송 콘텐츠 펀드 활용 안을 거론했다. “민간자금과 합해 매칭 방식의 모태 펀드가 됐는데, 이를 잘 이용하면 마중물이 될 수 있다”며 “다만, 콘텐츠 개발에 창의성보단 입찰 기준을 내세워 엉뚱한 곳으로 돈이 새거나 돈을 나눠 먹기 하는 등 그동안 발생한 운영상의 허점은 보완해야 한다”고 짚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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