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이 자사 소속 ‘어린이합창단’의 해단을 강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경영 위기에 처한 한국방송이 예산 절감 차원으로 지난해 서울 본사 어린이합창단 활동을 종료한 데 이어 지난달 부산·전주·제주·울산·청주 등 전국 5곳의 합창단에 공문을 보내 동시 해단을 통보했기 때문이다. 이에 이 방송사 시청자권익센터와 청와대 게시판에 ‘동심 파괴를 막아달라’는 청원이 잇따르고 있다.
70여년 역사의 한국방송(KBS) 어린이합창단은 ‘건전한 동요를 통해 어린이들의 정서를 함양한다’는 목표로 설립됐다. 동요 발표회나 창작동요 대회를 열어 동요를 보급하는 것은 물론 지역의 다양한 행사에 참여해 지역 문화예술에도 기여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세계적인 성악가 조수미(서울)와 평창올림픽 개회식 때 ‘올림픽 찬가’를 불러 지구촌의 이목을 끌었던 소프라노 황수미(안동) 등도 이 합창단 출신이다.
지역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한국방송 어린이합창단은 초등 3~4학년 학생을 중심으로 한해 15~20명씩 단원을 뽑아왔다. 총 단원 수는 50여명으로 무대에 오르는 연주 단원은 30여명이다. 신입 단원은 연습을 거쳐 연말쯤 합류하게 된다. 합창단 조직은 지휘자, 반주자, 안무자 1명씩이며, 발성을 지도하는 성악 코치를 따로 두는 곳도 있다. 합창단 운영 예산은 일부 방송국의 지원을 받는 지역도 있지만, 한국방송의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단원들이 자비를 내 재정을 충당하는 곳이 점차 늘었다. “예산 지원 없이 연습 장소나 이름만 쓰는데도 올해까지만 운영하고 내년엔 무조건 해단하라는 조처는 일방적 횡포”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방송사 게시판에 올라온 청원엔 “학부모들이 힘을 모아 재정적으로 독립을 하는 조건으로 합창단을 유지하고 있다. 방송국에 전혀 의존하지 않았는데 재정적인 이유로 해단하라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반발하는 내용이 많다. 또 “도청, 시청, 교육청 행사 및 공연에 초청돼 방송사 이름을 빛냈다고 자부한다. 올해 활동할 단복을 새로 맞췄고, 그 옷을 입고 공연하게 될 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전해야 하느냐”며 울분을 토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지난달 29일 ‘한국방송(KBS) 어린이합창단 해단을 막아주세요’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청와대 국민청원도 이번 조처가 수신료를 받는 공영방송사로서 최선의 선택인지 따져 물었다. 시청률이 떨어지는 어린이합창이나 동요 프로그램은 아예 없애고 시류를 타는 트로트만 공격적으로 편성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방송, 행사 및 공연에도 가요나 트로트를 부르는 아이들만 넘쳐나고 우리 어린이들이 동심으로 노래하는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영영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합창단의 한 관계자는 “어린이합창단을 몰아내려는 공영방송의 경제 논리가 타당한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음악 교사 출신으로 부산 어린이합창단에서 28년째 재능 기부를 하는 지휘자 김태호씨는 “합창단에서 가장 중시하는 부분은 노래를 잘 부르는 방법이 아니라 바로 인간 교육이다. 소리는 어울려야 아름다운 것이므로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함께 노래 부르다 보면 겸손, 배려, 화합, 존중의 마음을 배우게 된다”며 “특히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혼자라 자기밖에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합창을 통해 참을성을 배우고 배려를 익히게 된다”고 합창 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이어 “서울 본사도 합창단을 없앴으니 일괄적으로 해체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일본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는 우리보다 늦게 합창단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전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일 경영혁신안을 발표하며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한 한국방송 쪽은 “어린이합창단 운영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배경엔 한정된 자원을 양질의 어린이 프로그램 제작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는 판단이 있었다”며 “문화사업의 일환이었던 어린이합창단 운영을 불가피하게 중단하는 것일 뿐, 예술 장르로서 어린이들의 노래와 합창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으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현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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