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안동MBC’ 편성제작팀장 강병규 피디
오늘 25일은 한국전쟁 70돌이다. 지역방송인 <안동문화방송(MBC)>에서 전쟁 초기 최대 격전지였던 ‘낙동강 전선’의 전쟁사를 50부작 라디오 드라마로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그때 유일한 여성 종군기자였던 마거리트 히긴스(1920~66년) <뉴욕 헤럴드트리뷴> 기자의 1인칭 관점으로 경상북도 일대의 치열했던 전투를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재해석한다.
이 작품을 연출한 강병규 편성제작팀장을 22일 전화로 만났다.
라디오 드라마 ‘낙동강 전선’ 연출
22일부터 평일 매10분씩 50부작 방송
“디지털시대 아날로그 감성으로 차별화” 유일한 여성 종군기자 히긴스 ‘1인칭’
‘귀신 잡는 해병’ 한국군 용맹성 알려
“따듯한 인류애·세계사적 거시 시각”
강 팀장은 “‘6·25’하면 인천상륙작전, 1·4 후퇴, 흥남부두를 떠올리지만 전쟁 초기 두 달간 경북 산악지역의 전투가 치열했다. 한국군과 미군 등 유엔 연합군이 낙동강 방어선을 설정하기 이전에 지연작전을 펼쳤는데, 최후 저지선인 소백산 일대 전투가 마침 인근 지역이라 우리 방송사에서 다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낙동강 전선>을 기획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지역방송협의회 정책위원과 한국방송학회 지역방송특위위원 등을 지내며 지역방송을 어떻게 살릴지에 대해 깊이 고민해 온 언론인이다. 피디로서 지역에 밀착한 의제를 끄집어내고, 지역성 구현에 최적화한 콘텐츠를 끊임없이 찾고 있기도 하다.
그는 “우리한테는 한국전쟁 기록 자체가 많지 않다. 육군 군사연구소의 자문을 받고, 참전 군인들의 수기 등 자료를 참고했다. 자료를 보며 공부하다 보니 마거리트 히긴스 기자라는 인물이 나왔다. 히긴스의 직접 자료는 없지만, 통영 전투 기록을 통해 전쟁 참상에 대한 인류애적 시각을 봤다”고 밝혔다.
1950년 도쿄 특파원으로 발령받은 서른살의 히긴스 기자는 한국전쟁이 터진 직후 6월27일 입국해 6개월간 최전선을 쫓아다니며 전쟁의 참상을 전 세계에 전했다. 또 한국 해병대가 북한군을 궤멸시킨 통영상륙작전을 보도하며 “귀신 잡는 해병”이라는 표현으로 우리 해병대의 용맹성을 널리 알렸다. 히긴스는 이런 경험을 기록한 <워 인 코리아>로 퓰리처상도 받았다.
강 팀장은 종군기자의 시점을 택한 이유로, 인류애에 기반한 히긴스의 기자정신과 세계 정세에 대한 거시적 시각을 꼽았다. “히긴스 기자는 한강 다리가 폭파됐을 때도 현장에 있었다. 오산 죽미령 전투 때도 18살 어린 미군 병사의 죽음을 취재했다. 기자로서 객관적으로 사태를 보면서도 따뜻한 시각을 보인다. 명령을 수행하는 군인에게 어떤 아픔이 있는지를 담아냈다. 또 소련, 중공, 미국 등 열강의 개입 속에서 한반도 정세를 살필 줄 아는, 한국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기자였다.”
드라마 <낙동강 전선>은 6개 전투를 주요하게 다룬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주인공 박규철·용철 형제가 참전한 것으로 알려진 단양 죽령전투, 민간인 지게부대의 시작이라고 할 영주전투, 백병전이 처절했던 문경 이화령전투, 민·관·군·경이 힘을 모아 큰 승리를 거둔 상주 화령장 전투, 작전 실패로 대참패한 안동전투, 여성 교사들의 간호병 지원과 학생들의 학도병 활약이 돋보였던 영덕·포항전투 등이다. 그는 “전투별로 특징이 다르다. 죽령 전투는 소백산을 중앙선이 지나가는 터널 중심으로 이뤄졌다. 민간인이 기차 타고 피난 가는 중에 벌어져 힘들었다. 고지대에서 벌어진 이화령 전투는 안개 속에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화령장 전투는 민간인 제보에 의해 청년단원 합동작전으로 인민군을 괴멸시킨다. 안동전투는 800명이 수장된 아픈 기억이 있다”고 전투별 서사를 전했다.
지난 22일 첫 전파를 탄 <낙동강 전선>은 매일 10분씩 주5일 10주간 방송한다. 전투별로 4화에서 길면 9화가 진행된다. 그는 “처음엔 하루 20분씩 기획해봤는데 지역 라디오 편성이 한 시간 단위라 만만치 않았다”며 “라디오 드라마는 매일 듣는 맛도 있어 짧더라도 기간을 길게 하는 방식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낙동강 전선>엔 김일성, 맥아더 등 실존 인물은 물론 가공의 인물도 등장한다. 전투마다 직접 활약한 그 지역 실전 인물의 실명을 그대로 쓰기도 한다. 드라마엔 남성 5명, 여성 2명 등 성우 7명이 참여한다. 해설과 현장 취재를 하는 히긴스 기자 역은 <문화방송> 성우극회 출신 박선영씨가 맡았다.
디지털 시대에 방송사들도 라디오 드라마는 거의 외면하는 추세다. 이 분야의 간판 프로그램이었던 문화방송의 <격동 50년>도 2009년 막을 내렸다. 그는 “총소리, 삐걱거리는 민감한 소리 등 전쟁 관련 각종 효과음을 만들어내는 게 쉽지 않지만 라디오 드라마는 소리로 듣는 묘미가 있다. 디지털 영상 시대에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의 이런 시도는 이미 일부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맞아 그가 연출한 라디오 드라마 <임청각>이 한국방송협회의 방송대상 작품상 등을 받았다.
강 팀장은 “남북한 우리 민족은 5000년을 같이 살았고, 70년 잠깐 헤어진 것이다. 70돌이 된 6·25전쟁의 묻힌 이야기를 꺼내 전쟁의 아픔을 알리고, 대립과 갈등을 넘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다시금 강조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한국전쟁 70돌 특별기획 라디오 드라마 <낙동강 전선>을 연출한 강병규 <안동MBC> 편성제작팀장. 사진 안동MBC 제공
22일부터 평일 매10분씩 50부작 방송
“디지털시대 아날로그 감성으로 차별화” 유일한 여성 종군기자 히긴스 ‘1인칭’
‘귀신 잡는 해병’ 한국군 용맹성 알려
“따듯한 인류애·세계사적 거시 시각”
드라마 ‘낙동강 전선’은 한국전쟁 때 미국 <뉴욕 헤럴드트리뷴>의 여성 종군기자였던 마거리트 히긴스의 1인칭 관점으로 구성한다. 사진 안동MBC 제공
미국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 이어 한국전쟁 취재기로 1951년 여성 최초 퓰리처상을 받았고, 베트남전쟁 정글에서 얻은 풍토병으로 46살에 사망했다. 1950년 가을 한국전쟁 때 종군한 잡지 사진기자 칼 마이던스가 찍은 히긴스의 모습이다.
연재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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