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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지요”…공론장 필요할 때마다 정리해준 ‘목소리’ 기억할게요

등록 2020-06-17 19:08수정 2022-03-17 12:09

[가신이의 발자취] 고 김세은 강원대 교수를 기리며
2017년 12월12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파업 100일째 ‘릴레이 발언'에 동참한 고 김세은 교수. 사진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유튜브 화면 갈무리.
2017년 12월12일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파업 100일째 ‘릴레이 발언'에 동참한 고 김세은 교수. 사진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유튜브 화면 갈무리.

김세은 선생님은 2002년 서울대에서 <커뮤니케이션이론 특강> 과목을 맡았다. 강의 세부 주제는 ‘공론장’이었다. 이후 이어진 선생님의 연구와 사회 활동의 틀 안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공론장이 아니었을까 한다. ‘공론’을 형성하는 장을 만들고 참여하는 것. ‘공적인 것’이 과연 무엇인지, 언론은 공론의 형성과 관련하여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공론장에 참여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그리고 공론장에 참여하는 데 구조적으로 배제됐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 그리고 이에 기초한 실천을 이어간 것이 선생님의 발자취를 설명하는 방법의 하나일 것 같다.

언론의 공적 책임에 대해 끊임없이 발언해온 선생님은 그 방법론의 하나로 정치 권력과의 투쟁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의 삶을 기록하는 작업을 택했다. 해직 언론인의 삶이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지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공정한 언론의 가치를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이런 상황에서 연구자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질문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해직 언론인 생애사 연구 작업은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에서부터 근래 보수정권에서의 <와이티엔>(YTN), <문화방송>(MBC) 언론인 해직사태에 이르기까지 포괄했다. 수많은 언론인의 삶을 기록하고 남기기 위해 선생님의 방학은 ‘듣는 기간’으로 쓰였다. 회의나 연구 모임을 할 때면 막 인터뷰를 마친 듯, 선생님의 옆자리에는 늘 두툼한 문서 자료가 들어있는 가방이 놓여 있었다. 그러면서 삶을 기록하는 연구가 지니는 무게에 대한 고민을 학계 동료들과 나누곤 했다.

선생님은 “실패한 연구자”라고 자신을 스스로 설명한 한 논문에선 타자를 만나는 것에 대한 성찰적 윤리의 문제를 통해 공식사의 보조자료로만 사람들의 삶을 기록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되는, 연구자의 책임을 같이 논의할 것을 요청했다.

한편으로 공론장에서 배제되는 여성의 목소리를 드러내려는 선생님의 문제의식은 저널리즘에서 여성의 재현 문제, 여성 기자들의 어려움 표출하기, 남성 중심적 뉴스룸 구조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더불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여성 신진학자들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고, 그들의 어려움을 듣는 연구 작업을 통해 남성 중심적 학문 공동체의 위계를 비판하는 작업도 수행했다.

‘공적인 것’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선생님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제안하고 조직하며 현실을 이야기했다. ‘기자 단톡방 성희롱 사건’에 대한 긴급 세미나를 기획할 때, 너무나도 다양한 고민에 봉착한 여성 신진학자의 목소리를 정리하는 작업에서, 언론계 문제와 관련된 사안마다 정책 제안과 개선안을 반복해 쓰면서, 당장 달라질 것 같지 않은 현실의 문제를 이야기했었다.

“해야지요.” 그런 현실을 잘 알면서도, 우리의 회의와 대화는 그렇게 정리되었다. 그러니까, 혹은 그래도, 아니면 다른 어떤 말. 무엇이 그 말 앞에 있었는지 때에 따라 달랐지만 그렇게 강조했다. 선생님의 연구 목록과 사회적 실천 활동 목록을 더듬어 볼 때, 그 한 줄 한 줄의 기록을 만들 때마다 선생님은 자신에게, 혹은 함께 하는 동료들에게도 그 목소리를 남겼을 것이다. 오래도록 잊을 수 없는 목소리로, 마주 앉은 사람들과 눈을 맞추어 “해야지요” 하고 고개를 살짝 끄덕이셨을 것이다.

김수아/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여성학협동과정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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