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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가 다르고, 만족도 다릅니다’ 내 나름의 창간사였죠”

등록 2020-05-18 20:57수정 2020-05-19 00:38

[한겨레 지령 1만호 특집] 전 우성건설 상무 조계현 회장
1988년 5월15일 <한겨레> 창간호 1면에 우성건설의 아파트 분양 광고를 낸 조계현 브랜드마케팅협회 회장이 지난 13일 한겨레신문사 현관의 창간호 동판 앞에서 32년만에 ‘광고 비사’를 털어놓았다. 사진 김경애 기자
1988년 5월15일 <한겨레> 창간호 1면에 우성건설의 아파트 분양 광고를 낸 조계현 브랜드마케팅협회 회장이 지난 13일 한겨레신문사 현관의 창간호 동판 앞에서 32년만에 ‘광고 비사’를 털어놓았다. 사진 김경애 기자

<한겨레> 창간 32돌을 이틀 앞둔 지난 13일, 뜻밖의 독자가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를 찾아왔다. 1988년 5월15일치 창간호 신문을 한 장 받아든 그는 신문사 3층 현관 입구에 걸린 ‘창간호 동판’ 앞에서 한참을 감회어린 듯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은 창간호의 1면 아랫쪽을 장식한 5단 광고에 머물러 있었다.

“가치가 다르고, 만족도 다릅니다.”

우성건설의 ‘부평 우성아파트타운’ 분양 광고에 적힌 카피를 소리내어 읽은 그는 자신이 직접 지은 문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바로 88년 당시 우성건설 기획조정실 상무로서 광고를 집행한 조계현(77) 브랜드마케팅협회(BMA) 회장이었다.

88년 군사정권 노골적 압력에도
‘한겨레’ 애정으로 ‘자리’ 걸고
분양광고 한달 앞당겨 1면에

창간 때도 지금도 마찬가지
‘좋은 신문은 좋은 독자가 찾아’

“워낙은 회사 이미지를 홍보하는 카피로 제작까지 마쳤는데, 마지막 순간에 바꿨어요. 단순히 광고주로서 창간을 축하하는 차원을 넘어, 개인적으로 ‘한겨레’에 바라는 지향점을 담았어요. ‘한겨레는 가치가 다르고, 만족도 다릅니다’로 읽어보면, 창간사를 압축한 듯한 뜻이 분명하게 드러나죠? 실은 오늘에야 처음 얘기하는 겁니다. 허허.”

그는 뒤이어 “이제는 말할 수 있다”며 ‘<한겨레> 창간호 1면 광고 비사’를 32년 만에 털어놓았다.

“창간 1주일 전쯤부터 한겨레신문사 변이근 광고이사가 내 사무실 소파에 눕다시피하면서 내내 농성’을 하다시피 했어요. 하지만 안기부를 비롯해 모든 부처와 기관이 총궐기하듯 <한겨레>에 광고를 못하게 노골적으로 탄압을 하던 때였잖아요? 이른바 ‘빨갱이 신문’에 광고를 하는 업체엔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성 경고’를 했어요. 그러니 가뜩이나 관급 공사 수주와 금융 지원에 목이 달린 건설회사의 사주들이 누구보다 몸을 사릴 수밖에요. 그래서 고심 끝에 사장도 회장도 몰래 혼자 결단을 내렸어요. ‘부평 타운’의 착공을 한달간 앞당겨 분양 광고를 냈던 거죠”

실제로 그는 5월15일 창간호 광고가 나간 직후 최주호 우성건설 회장에게 사직서를 내고 두 달간 ‘자의반 타의반’ 도피 생활을 해야 했다.

“왜 독단적으로 광고를 저질러서 회사 안팎을 시끄럽게 하고 손실까지 끼쳤느냐는 질책을 받았어요. ‘세상의 이목인 쏠린 새 신문의 창간호인데다 광고 단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해서 ‘광고 전단’(찌라시)를 제작해 돌리는 비용보다 싸게 ‘최고의 홍보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 했다, 기업은 이익이 최우선 아니냐고 해명과 설득을 해봤죠. 하지만 당장 정부 쪽에서 발주하는 공공사업 입찰을 하지 못하게 됐으니 회사로서는 피해가 상당했어요. 결국은 안기부 등에 4번이나 사직서 낸 사실을 확인시키며 고초를 겪어야 했어요. 다행히 최 회장의 두터운 신임 덕분에 복귀를 했지만요.”

1988년 &lt;한겨레&gt; 초대 광고이사를 지낸 변이근 전 사우회장은 지난 15일 창간 32돌 기념식에 참석해 ‘우성건설’을 비롯한 창간호 36개면의 광고 수주를 위해 ‘육탄 마케팅’을 감행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사진 김경애 기자
1988년 <한겨레> 초대 광고이사를 지낸 변이근 전 사우회장은 지난 15일 창간 32돌 기념식에 참석해 ‘우성건설’을 비롯한 창간호 36개면의 광고 수주를 위해 ‘육탄 마케팅’을 감행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사진 김경애 기자

이처럼 직·간접적인 피해를 감수하면서까지 그가 창간호 광고를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15일 창간 32돌 기념 행사에 참석한 변이근 전 광고이사는 이렇게 증언했다. “창간호 때 36면을 발행하면서 과연 광고를 다 채울 수 있을지 우려가 컸지요. 그나마 ‘창간 특수효과’를 무기로 육탄공세를 편 덕분에 삼성 현대 럭키금성(엘지) 포항제철 대한한공 금호산업(아시아나) 해태 한국화약 등등 주요 대기업에서 광고를 따낼 수 있었어요. <한겨레> 탄생 자체가 기적이었지만, 창간호 광고를 완판한 것도 기적이었어요. 그런데 맨 뒷면에 실린 삼성그룹의 전면 광고와 더불어 가장 단가가 셌던 1면에 중견업체인 우성건설의 광고가 나간 건 순전히 조 회장의 ‘한겨레’에 대한 남다른 애정 덕분이었어요.”

그랬다. 조 회장은 “이런 얘기도 처음”이라며 파란만장 개인사를 털어놓았다. 1943년 광주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만 마치고 서울로 유학해 마포고를 다녔다. “공동수도와 공동화장실을 줄지어 사용해야 했던 여기 ‘공덕동’ 달동네에서 낯선 타향살이를 시작했으니 인연이라면 인연이죠,”

경희대 국문과를 나와 어느 대기업 공채시험에 합격했으나 발령을 받지는 못했다. 뒤늦게 알아보니 ‘오너의 특정지역 기피’ 때문이었다. 한동안 개인사업과 취업을 반복했던 그는 1976년 <문화방송>(MBC) 공채로 입사해 문화부 기자로 활동했다. 81년 <경향신문>으로 잠시 옮겼다가 <엠비시애드컴>에서 ‘광고홍보인’으로 입문했다. 그는 그때부터 연세대 경영대학원과 중앙대 언론대학원 석사, 청주대 경영학 박사 등으로 전문성을 키우는 한편, 전경련 소속 30대그룹 홍보협의회를 비롯 프레드(Pred)클럽, 서울카피라이터즈틀럽 등의 창립 회원으로 ‘마당발 네트워크’를 쌓아갔다. <한겨레> 창간을 주도한 해직언론인들과도 1970년대 후반부터 다양한 유대의 끈을 유지하고 있었다.

“1982년께부터 86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에 대비한 대규모 택지개발과 공공주택 건설 투자가 붐이 일었잖아요? 그 가운데 강남 노른자위로 꼽힌 개포지구에 기자촌 아파트(1987년 우성7차)가 포함됐는데, 막판 사흘 사이 기자단을 설득해 유력했던 현대건설을 제치고 우성건설이 사업권을 따내도록 도왔어요. 주요 경제지에 부동산 시세표를 상설 게재하는 아이디어도 처음 제안했지요”

그 덕분에 일약 매출이 두배로 성장한 우성건설은 그가 광고인으로 변신해 성과를 올리자 임원으로 전격 스카웃했다. 그로부터 10년간 그는 우성건설에서 광고마케팅 담당으로 활약했다. 1996년 우성건설이 부도로 쓰러진 뒤 외환위기의 파고가 몰려올 때 그는 기아자동차 구조조정본부 상임고문을 맡아 삼성의 ‘기아차 인수’ 비밀 프로젝트가 담긴 이른바 ‘삼성 신수종 사업 보고서’를 입수해 공개하기도 했다. “신문의 저녁 가판에는 기사를 넣지 않고 2판부터 깜짝 터트렸고 파장이 일자 결국 삼성 쪽에서 사실이라고 인정하고 말았죠.”

1988년 5월15일치 <한겨레> 창간호에는 군사정권의 노골적인 광고 탄압 속에서도 36개면 모두 광고가 실렸다. 특히 현대·선경(SK)·럭키금성(LG)·포항종합제철(포스코)·삼성 등 주요 대기업은 전면광고를 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때문에 삼성 쪽에서 ‘원흉’으로 찍힌 그는 평소 친밀했던 삼성그룹 광고 담당 임원과도 한동안 ‘절연’ 상태였고, 상대적으로 친삼성 쪽이었던 대부분의 매체 기자들로부터도 ‘경계 대상’이 됐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실전에서 닦은 광고마케팅 경륜을 인정받은 그는 성균관대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정년 때까지 12년간 교수로 재직했고, 그 뒤로도 지난해까지 협성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후진을 키웠다. <피알(PR)실전론>(2005·컴북스) 등 교재용 저서도 여럿 냈다. 지금도 2009년 창립한 브랜드마케팅협회를 통해 국내 기업의 글로벌 이미지 전략 등을 자문하고 있다.

“나름 ‘자리’를 걸고 창간 광고를 내긴 했지만, 내 이름으로 직접 주식까지 살 엄두를 내지 못한 게 훗날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어요. 2000년대 들어 광고 현업을 떠난 이후로는 <한겨레>와 인연도 차츰 희미해졌죠. 몇해 전인가 5월 창간기념일 즈음에 혜화동 전철역사 안에서 ‘한겨레’ 사람들이 구독 캠페인을 하는 모습을 보고 반가움에 달려가 인사를 했는데 아무도 알아봐주는 이가 없어 내심 섭섭한 기분이 들기도 했고요. 올해 32돌 소식을 듣고 이제라도 ‘창간 광고 비사’를 한 줄이나마 남겨두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찾아왔어요.”

조 회장은 마지막으로 해직 세대가 아닌 지금의 ‘한겨레’ 구성원들에게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고 했다. “부디 창간 때 ‘새 신문 참 언론’에 대한 국민적 기대와 열정을 잊지 말고 ‘좋은 신문은 좋은 독자가 찾는다’는 마케팅의 법칙을 기억하세요. 언론 위기의 시대에 새로운 정론의 지평을 열어주기를 바랍니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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