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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가짜뉴스 판치는 시대…그의 ‘진실 추구’ 정신은 더 빛난다

등록 2020-05-05 16:59수정 2020-05-06 02:36

[10주기 맞아 재조명 되는 리영희]
현 기득권 언론, 자사 이기주의 매몰
기자들도 정파성에 갇혀 한계 노출

“치밀한 취재로 구체적 사실 적시한
그의 실천적 글쓰기는 여전히 유효”
“그의 정신 되짚어 언론개혁에 속도를”
고 리영희 선생. 한겨레 자료사진
고 리영희 선생. 한겨레 자료사진

“글을 쓰는 나의 유일한 목적은 진실을 추구하는 오직 그것에서 시작하고 그것에서 그친다. 진실은 한 사람의 소유물일 수 없고 이웃과 나눠져야 할 생명인 까닭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 글을 써야 했다. 그것은 우상에 도전하는 지성의 행위이다.”

지난 2010년 별세한 리영희 선생의 저서 <우상과 이성> 서문에 나오는 글이다. 이른바 가짜뉴스인 허위조작정보가 난무하고 언론 신뢰도가 추락한 시대에 반민주·반지성에 치열하게 맞서며 진실만을 올곧게 좇은 ‘리영희’의 실천적 삶과 글쓰기 방식이 10주기를 맞아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그의 정신을 되짚으며 검찰개혁과 함께 우리 사회 중대 과제인 언론개혁에 속도를 내자는 목소리가 높다.

■ 진실만을 좇은 진리 파수꾼 

리영희 선생은 1957년 <합동통신> 기자로 언론인의 삶을 시작했다. 그에게 언론의 기본 책무는 ‘진실 규명’이었다. 일찍부터 외신을 많이 접해 폭넓은 시각을 지닌 그는 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에서도 잘못된 한-미 관계 등에 날 선 비판을 서슴지 않아 여러 차례 필화 사건을 겪었다. 베트남 전쟁과 국군 파병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가 정권 압력을 받아 <조선일보>에서 쫓겨났고, ‘군부독재 반대 64인 지식인 선언’ 참여로 합동통신에서 또다시 해직을 당했다. 이후 한양대 교수로 임용됐으나 여기서도 유신정권과 신군부 입김에 두 차례 해직을 경험했다. <한겨레> 창간 때 논설고문으로 참여해 방북 취재를 기획하다 1989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전환시대의 논리> <8억인과의 대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대화-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등 여러 저서를 남겼다.

언론인 출신으로 <리영희 평전>을 쓴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리영희 선생은 제도권 언론인이었지만, 누구보다도 언론의 치부를 과감하게 파헤치고 비판의 날을 세우며 진실만을 추구했다. 그런데 요즘 기득권 언론들은 진실은 뒷전이고 자사 이기주의에 매몰돼 수구 집단의 이념지처럼 타락했다”고 비판했다. 진실의 파수꾼이었던 고인의 유업이 우리 사회의 큰 과제라며 언론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그는 “검찰이 내부적 동일체 논리가 있다면 언론도 동일체 의식에 빠져 있다. 기자들이 시대정신이나 역사의식이 뒤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진실 이외의 어떤 목표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리영희 선생의 글쓰기 방식을 되짚어봐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1989년 4월20일 &lt;한겨레신문&gt; 방북취재 기획 사건으로 구속된 리영희 당시 논설고문(오른쪽 두 번째)이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변호인단과 부인(왼쪽 두 번째)을 만나 안기부 조사 과정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1989년 4월20일 <한겨레신문> 방북취재 기획 사건으로 구속된 리영희 당시 논설고문(오른쪽 두 번째)이 서울 중부경찰서에서 변호인단과 부인(왼쪽 두 번째)을 만나 안기부 조사 과정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 구체적 증거·자료 ‘탐사보도 전범’

리영희 선생은 어휘, 표현, 내용 하나하나에 구체적 논거를 댈 뿐 아니라 용기 있게 실천을 강행해 언론계에선 ‘참언론인’이라는 존경을 받았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엄혹한 시절에 북한에 대해 중국·소련의 조종을 받는 꼭두각시 괴뢰국이 아니기에 ‘북괴’라고 쓰면 안 된다는 명쾌한 논리를 펼쳤다. 그를 통해 중공이나 베트콩도 중국, 베트남으로 바뀌게 됐다. 해직기자 출신인 노종면 <와이티엔>(YTN) 기획조정실장은 “리영희 선생 책을 읽으면서 왜 ‘북괴’라는 단어를 쓰면 안 되는지 등 논거를 다 투영시킨 것에 교훈을 얻었다. 빨갱이로 몰려 탄압을 받을 수도 있는데 실천하는 그 용기는 언론인의 소양이 됐다”며 “정파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지금의 미디어 환경에도 선생이 추구한 지향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짚었다. 조국 사태에서 보듯, 누구를 지지 혹은 반대하더라도 충실한 취재를 바탕으로 구체적 사실을 적시해야 하지만, 기자들 스스로 정파성에 갇혀 한계를 보인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공신력 있는 복수의 자료를 근거로 한 리영희 선생의 글쓰기 방식은 탐사보도에서도 전형적인 규범이 되고 있다. 미확인 뉴스를 마구 유포하는 정보 전염병 시대에 ‘리영희’가 절실하게 요구되는 대목이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인 독립언론 <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는 “기자 선배로 리영희를 말하자면 뛰어난 탐사 기자였다. 남북 군사력을 비교한 논문(‘남북한 전쟁 수행 능력 비교연구’)을 읽고, 한 편의 탐사보도로 보여 크게 감명받았다. 국내 자료가 부족했을 때 미국 통계 등 치밀한 자료를 토대로 북의 남침 위협이 과대포장임을 밝혀 당시의 안보 논리를 철저하게 깨부쉈다”며 “지금도 탐사보도가 지향해야 할 기본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1988년 5월14일 밤 서울 양평동 한겨레신문사 윤전실에서 막 나온 ‘한겨레신문’ 창간호를 들고 기뻐하는 창간 주역들. 맨 오른쪽이 리영희 논설고문. 한겨레 자료사진
1988년 5월14일 밤 서울 양평동 한겨레신문사 윤전실에서 막 나온 ‘한겨레신문’ 창간호를 들고 기뻐하는 창간 주역들. 맨 오른쪽이 리영희 논설고문. 한겨레 자료사진

■ 좌·우 날개 균형 갖고 언론개혁을

독재 시절 각인된 ‘용기 있게 행동하는 언론인, 실천하는 지식인’ 구도는 민주화가 이뤄진 오늘날엔 무의미한 프레임일까. 학계에선 여전히 유효하다는 견해가 나온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는 “기자로서의 현장성과 학자로서 연구 자세 등 양자가 결합한 실천적 지식인의 태도를 갖췄다. 외신도 직접 받아쓰는 게 아니라 여러 자료를 통해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확인하고 추적해나간 태도 등은 지금도 되새기고 배워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리영희 선생 10주기를 맞아 리영희재단은 8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 함께센터’에서 ‘진실 상실 시대의 진실 찾기’ 세미나를 연다. 정용준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미리 공개된 발제문을 통해 “선생님이 그렇게 질타하던 ‘기회주의 언론’의 본질은 하나도 변화하지 않아 국민이 언론개혁을 외치는 것”이라며 “선생님은 한쪽 날개가 기울어진 이념적 분극 시대를 살았던 과거와 달리 양쪽 날개로 날아가는 새처럼 이념적 균형성을 역설했는데, 앞으로의 언론개혁에 있어서도 중요한 화두일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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