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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처우 열악·간부 막말·부당 해고…아슬아슬 외줄 탄 ‘위기의 지역방송’

등록 2020-03-25 19:02수정 2020-03-26 02:59

사상 초유의 방송 자진 폐업
프리랜서 피디의 극단적 선택
강력하게 작용하는 대주주 입김
불공정 인사 등 고질적 문제로

소유-경영 분리되지 않고
시민사회 감시 체계도 약해
“방통위 재허가 심사 강화해야”
‘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사망사건 진상규명 대책위’가 24일 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이재학 피디 49재 추모 결의대회’를 열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사망사건 진상규명 대책위’가 24일 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이재학 피디 49재 추모 결의대회’를 열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최근 경기지역 종합편성 라디오 사업자인 <경기방송>이 사상 초유의 ‘자진 폐업’을 하고, <청주방송> 피디가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지역방송 문제가 언론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언론시민단체들은 지역 공동체의 ‘공론의 장’이어야 할 지역방송이 대주주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소유구조와 이로 인한 인사 전횡 등으로 제구실을 못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난 16일 주주총회를 통해 지상파 방송사업자 최초로 자진 폐업을 선택한 경기방송은 지난해부터 잇따라 입길에 올랐다. 지난해 11월 이 회사 현아무개 이사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 폄훼 발언’을 폭로한 피디와 기자를 부당해고하며 논란을 빚었고, 이로 인해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조건부 재허가 결정을 받았다. 방통위는 소유와 경영 분리, 경영 투명성, 현 경영권자의 경영 배제 등을 재허가의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경기방송은 끝내 ‘자진 폐업’을 선언했다.

‘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사망사건 진상규명 대책위’가 24일 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이재학 피디 49재 추모 결의대회’를 열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사망사건 진상규명 대책위’가 24일 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이재학 피디 49재 추모 결의대회’를 열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청주방송에서는 지난달 프리랜서로 14년 동안 일했던 이재학 피디가 유서를 남기고 숨지는 극단적 사건이 발생했다. 월 160만원의 낮은 임금과 열악한 처우를 견디며 일했던 이 피디는 임금인상을 요구했다가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했다. 진상조사위가 꾸려졌지만, 이두영 청주방송 대표이사 겸 회장은 지난 16일 이를 두고 “비정규직을 다 정규직 해달라는 것” “진상조사위는 청주방송 흠집 내기 위한 것” “내부 고발자를 색출하겠다” 등의 발언을 해 비난을 샀다.

언론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이 두가지 사례가 비정규직의 열악한 처우, 간부의 막말 논란, 내부 고발자 부당해고 등 지역방송사가 겪는 고질적 문제점을 단적으로 드러냈다고 지적한다.

중앙방송에 견줘 대주주의 입김이 강한 지역방송은 불투명한 인사와 채용으로 내부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다. 청주방송은 회장의 사위가 경영국 직원으로 입사한 뒤 별다른 선발 절차 없이 보도국 취재기자로 직군이 변경돼 사내 비판을 불렀다. 경기방송은 방통위가 막말 논란이 일었던 현 이사를 경영에서 배제하라고 요구하자 그의 최측근을 보도·제작국장으로 임명해 노조의 비난을 샀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공동대표는 “민간 자본이 대주주인 경우, 방송사를 사유화하려는 경향이 강한데 그동안 언론의 자유 보장 차원에서 조건부 재허가를 해주는 등 비교적 제재가 약했다”며 “특히 지역방송의 경우 시민사회의 감시도 덜하기 때문에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은 행태가 더 심하다”고 짚었다.

‘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사망사건 진상규명 대책위’가 24일 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이재학 피디 49재 추모 결의대회’를 열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청주방송 이재학 피디 사망사건 진상규명 대책위’가 24일 청주방송 사옥 앞에서 ‘이재학 피디 49재 추모 결의대회’를 열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부족한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메꾸면서 고용 안정성을 떨어뜨리는 것도 문제다. 방송사 내 비정규직은 고질적인 문제지만, 지역방송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경기방송의 경우, 2017년 4월에 신입 직원(2015년 8월 공채) 7명이 일괄 퇴사했다. 3개월의 평가 기간과 3개월의 수습 기간을 거친 이들을 경기방송이 1년 계약직으로 고용한 뒤, 다시 무기계약직 형태로 전환한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형태의 고용방식은 불합리한 처우를 낳고, 이는 결국 방송의 지속성과 질을 하락시킬 수밖에 없다. 14년 동안 프리랜서로 일하며 160만원의 저임금에 시달리다 프로그램에서 하차당한 것은 청주방송 고 이재학 피디 사례뿐만이 아니다. 최근 광주전남지역의 한 지역방송에서도 비슷한 사례로 법적 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5년 동안 월급 120만~130만원(회당 30만원)을 받고 일하던 프리랜서 에이디(AD) ㄱ씨는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사실상의 해고를 당했다. ㄱ씨는 “프리랜서지만 출퇴근을 했고, 회사의 지시를 받고 일했으므로 퇴직금을 달라”고 주장했고, 방송사 쪽은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퇴직금을 줄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달 <대구문화방송(MBC)>은 22년간 자막 컴퓨터 그래픽을 담당한 비정규직 직원 2명에게 고정급을 없애고 프로그램별 건당 보수로 지급하겠다고 통보해 반발을 사기도 했다.

전국언론노조 경기방송지부가 11일 경기 과천시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방통위는 경기도민 청취권을 보호하고 고용 안정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언론노조
전국언론노조 경기방송지부가 11일 경기 과천시 방송통신위원회 앞에서 “방통위는 경기도민 청취권을 보호하고 고용 안정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언론노조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미디어학)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위해 사외이사 선임, 시청자위원회 구성 등의 방안을 마련해왔지만, 소유주와 경영진이 같은 상황에서 쉽지 않은 구조”라며 “방통위로서는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를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이 재허가이므로 재허가 심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통위의 한 상임위원 역시 “향후 허가 심사 때는 지역방송의 편성, 인력, 재원 등의 구체적인 계획을 심사 기준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지민 기자 godji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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