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생명·건강과 직결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를 보도하는 언론들이 혐오·공포를 조장하는 자극적 표현으로 되레 국민 불안과 혼란을 부추긴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확진자가 지난달 20일 국내에서 처음 발생한 뒤 지금까지 우리 언론은 이 사태를 어떻게 보도하고 있을까. 생명·건강과 직결된 감염병 보도에서조차 여전히 정확성보다 속보 경쟁에 골몰하고, 혐오·공포를 지나치게 조장해 국민 불안과 혼란을 부추기는가 하면 4월 총선을 겨냥한 정파적 보도를 일삼는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 특정 지역 혐오 담긴 용어 지속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번에 확산한 감염증에 대해 특정 지역을 둘러싼 불필요한 편견이 생기지 않도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라는 병명을 사용하도록 권고했다. 한국기자협회,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등 언론단체도 지난달 30일 인종차별적 명칭 및 사회적 혐오·불안을 유발할 수 있는 자극적 보도 자제, 현장 취재기자들의 안전 고려 등 긴급 제안에 나섰다. 김동훈 기자협회장은 “검증되지 않은 잘못된 보도들이 나돌아 국민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이런 보도는 자제하자는 취지에서 지침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처음엔 감염병의 발생지를 반영해 ‘우한 폐렴’으로 명명하던 언론들은 이런 권고와 지침을 받아들여 대부분 신종 코로나로 바꿨으나 일부 보수신문은 “중국 눈치 보기를 하는 거냐”며 묵살했다. <조선일보> <문화일보> <한국경제> 등은 기사 본문에선 우한 폐렴과 신종 코로나를 같이 쓰지만 제목에선 우한 폐렴을 고집한다. 일부 신문은 ‘우한폐렴 공포’ ‘신종폐렴 포비아’ ‘신종 코로나 초비상’ 등 경각심보다 과도한 공포감을 조성하는 머리띠를 몇개 면에 걸쳐 사용하고 있다.
외국 언론의 경우, 지역명은 가급적 넣지 않는다.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등 미국 언론은 대부분 ‘코로나바이러스’로 <아사히신문> <요미우리> 등 일본 신문은 ‘신형 폐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 4월 총선 겨냥 정파적 프레임
과거 사스, 신종 플루, 메르스 등 감염병 사태 때도 불안과 갈등을 부추기는 보도가 있었지만 이번엔 4월 총선을 앞두고 ‘방역 구멍’ ‘방역 참사’ 등 정부 무능을 드러내는 정파적 프레임이 더 확대됐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사회적 재난이 터졌는데 언론이 노골적으로 정파적 보도를 일삼고 있다”며 “재난 앞에 내 편 네 편 하며 공정 보도를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고 비판했다. 방송에선 여야 의원을 불러 감염병 사태를 놓고 싸움을 부추겨 시청자 눈총을 받기도 했다.
국민 불안 해소를 위해 전문성에 근거한 정확한 정보 전달이 절실한데 선정적 분위기에 무게가 쏠린 기사로 되레 공포심을 자극한다는 우려도 나온다. 임영호 부산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미국 <시엔엔> 등 보도는 전문가 해설과 사건의 진전 위주로 건조하게 전달한다. 그런데 국내 언론은 정보 전달보다 반응 등 정서적 분위기에 치우쳐 불안감을 극대화한다”고 짚었다. <헤럴드경제>의 ‘대림동 차이나타운 가보니…’(1월29일) 르포기사는 “가래침을 뱉고 우한 폐렴을 무색하게 하는 비위생적인 행태가 즐비하다”며 중국인 혐오 정서를 드러내 논란이 됐다.
앞서 종합편성채널 <채널에이>는 ‘중 에이즈 치료제까지 투입’(뉴스에이·1월26일) 리포트를 통해 우한 의료진을 자처하는 여성이 “감염자가 이미 9만명에 이른다. 현재 2차 변이까지 일어났다. 폭발적인 전염이 예상된다”고 말하는 영상을 내보냈다. 에스엔에스를 통해 퍼지는 미확인·허위조작 정보에 대해 언론이 진위를 가리기는커녕 무책임하게 보도해 국민 불안을 키웠다는 비판이 일었다.
모든 현안을 삼키는 과잉 보도를 우려하는 견해도 있다. 신문은 날마다 몇개 면에 걸쳐 신종 코로나 사태를 집중 조명하고, 방송도 10여 꼭지로 나눠 20분 넘게 진행한다. 김동원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책위원은 “신종 코로나 보도량이 너무 많다. 재난 보도는 정확성이 핵심인데 속보성에 치우쳤기 때문이다. <중앙일보>가 정부 공식 발표 전에 우한 교민 수용지역을 천안이라고 보도해 논란을 촉발한 것이 단적인 사례”라고 비판했다.
무분별한 외신의 재인용이나 간접인용도 문제다. 지난 8일 <연합뉴스>의 ‘신종 코로나, 비말·접촉 외에 에어로졸 통한 전파도 가능’이라는 보도가 그렇다. 쩡췬 상하이시 민정국 부국장이 기자회견에서 위생방역 전문가 의견을 인용했고, 이를 중국 매체 <펑파이>가 보도한 것을 받아쓴 기사인데 검증 없이 전달해 파장이 컸다.
■ 인권·사생활 침해…보도준칙 되새겨야
확진자의 동선에 대한 신상털기식 보도나 사생활 침해를 일삼는 보도도 논란거리다. 일부 언론은 충북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생활하는 우한 교민들이 빨래를 널거나 앉아서 휴대폰 하는 모습 등을 클로즈업해 찍은 사진을 내보냈다. 윤석빈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장은 “피해자 노출 사진은 질병 예방을 위한 정확한 정보와 관리 등의 본질을 벗어난 인권침해”라며 “언론사들이 내부 준칙을 점검한 뒤 이용자에게 선제적으로 알리고 이를 준수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신종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전문가와 언론이 머리를 맞대고 기존의 인권·재난 보도 준칙과 별도로 감염병 보도 준칙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미 2012년 보건복지부 출입기자단이 학회와 협의해 공포·대혼란 등의 표현 안 쓰기, 감염병의 규모·증상에 대한 과장된 표현 자제하기 등을 담은 준칙을 제정했으나 전체 기자 사회에 공유되진 못했다. 기자협회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은 13일 긴급 토론회를 열어 ‘감염질병 보도준칙’ 제정을 위한 언론계 의견을 수렴할 예정이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