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를 맞아 우리 사회 미디어 분야에서 주요하게 떠오를 화두를 짚어본다. 올 4월 총선 국면에 여론 영향력을 겨냥한 허위 조작 정보가 쏟아질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저널리즘 회복을 위해 언론개혁 논의에 속도가 붙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언론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 한국방송학회 등의 자문을 거쳐 미디어 핵심 쟁점을 선정했다.
■ 선거 앞 유해 정보와의 전쟁
4월15일 열리는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허위 정보를 넘어 진위 여부를 가리기 힘든 영상 조작, 딥페이크(deep fake)가 기승을 부리며 공정선거를 위협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오세욱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텍스트 허위 조작 정보보다 기술력에서 훨씬 앞선 딥페이크가 선거 국면에 정치 선동 수단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도 속을 수 있는 만큼 언론에서 경각심을 갖고 진위 판단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짚었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을 활용해 특정 인물의 원본 콘텐츠에 이미지·음성·영상 등을 합성하는 기술이다. 가뜩이나 가짜 뉴스의 온상이 된 유튜브에 정교하게 위조한 허위 조작 콘텐츠를 쏟아내며 선거에 악용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에선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트럼프는 정말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연설하는 조작 영상이 퍼져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인도에선 여성 인권운동가의 가짜 포르노가 유포된 사례가 있다.
■ 언론개혁과 제도 개선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 때 떠오른 검찰개혁 요구는 언론개혁 요구로 이어졌고, 이런 목소리는 새해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언론계에서도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출입처 폐지 등 취재 관행 개선을 위한 다각적 논의의 물꼬를 텄지만, 날마다 콘텐츠 생산을 해야 하는 현실적 어려움을 어떻게 돌파할지가 과제다.
언론정보학회 회장인 손병우 충남대 교수는 “2019년 조국 사태 이후 학회에서 몇차례 토론회를 열어 언론개혁 방향과 구체적 방안에 대해 논의했고, 새해에도 학계와 언론계가 머리를 맞대 해법을 찾을 생각이다. 취재 관행에 대한 현장에서의 반성과 함께 학계에선 문제 사례를 범주화해 체계적으로 정리하려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단체들 사이에선 문재인 정부의 미디어 정책이 실종됐다는 비판적 시각이 높은 가운데 시민 참여와 공공성 강화를 내세운 미디어개혁위원회를 제안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방송개혁위원회 같은 사회적 기구를 통해 제도 개선을 하자는 취지다.
■ 종편 재승인 심사, 법대로
새해엔 왜곡·편파·막말 등으로 저널리즘 훼손 논란이 끊이지 않은 종합편성채널(종편)들이 재승인 심사를 밟는다. <티브이조선> <채널에이>는 4월, <제이티비시> <엠비엔>은 11월이 그 시기다. 엠비엔은 자본금 편법 충당 등 설립 당시 불법 혐의가 불거져 검찰 수사를 받는 만큼 이번엔 ‘봐주기 심사’가 아니라 법 절차에 따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규제 기관인 방송통신위원회가 공정한 평가를 통해 점수 미달인 종편엔 허가를 취소하는 등 강력한 조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영묵 성공회대 교수는 “종편은 제작비가 별로 안 들어가는 정치평론만 양산하며 공적 책무는 외면하는 등 저널리즘의 붕괴를 조장했다. 또 5·18 왜곡 등 허위 정보로 미디어 시장을 혼탁하게 했을 뿐 아니라 허위 정보가 유튜브 등 1인 방송으로 퍼져나가게 했다”고 비판했다. 이어 “편성·황금채널 등 종편에 주어진 모든 특혜를 환수해 자유경쟁이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한국방송>(KBS), <문화방송>(MBC) 등 공영방송이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큰 위기를 맞았다. 광고가 종편으로 흘러가고 넷플릭스 등 새로운 플랫폼에 시청자를 빼앗겨 공영방송 회의론까지 일었다. 그러나 유튜브 등에서 잘못된 정보가 난무하고 미디어 시장이 혼란스러울수록 진실을 원하는 국민에게 공영방송 역할이 중요하기에 국회에서 잠자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담은 방송법 개정안 논의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상기 부경대 교수는 “유튜브 등 1인 미디어가 쏟아지며 지상파 방송이 총체적 위기를 맞았다. 어떤 정권이 들어와도 휘둘리지 않게 지배구조를 개혁해야 정치적 중립성을 지킬 수 있다. 정치적 독립뿐 아니라 지금은 경제적 독립을 위한 재원 마련도 절실하다. 지배구조 개선을 해야 수신료 논의가 나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는 2월에 임기가 끝나는 최승호 사장의 후임 선정을 앞두고 시청자를 대변할 시민 참여 방식을 논의 중이다.
■ 실검·댓글 폐지 확산
표현의 자유냐, 개인의 권리 보호냐. 온라인에서 공방이 여전한 가운데 다음카카오가 지난 10월 연예뉴스 댓글 잠정 폐지를 결정한 데 이어, 올 2월부터 실시간 이슈 검색어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연예인을 둘러싼 인격 모독, 사생활 침해 등 악성 댓글이 건강한 공론장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기 때문이다. ‘난장’ 자체도 우리 사회 현주소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연예뉴스 댓글 폐지가 시대에 역행하는 정책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있지만, 공론장의 정화라는 긍정 평가가 확산되는 추세다. 정낙원 서울여대 교수는 “예전엔 온라인에서 표현의 자유를 중시했으나 사회적 폐해가 커지자 점차 공익에 대한 인식 확대와 개인의 권리 보호 가치가 우선시되고 있다”며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변화라고 진단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