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대다수인 방송작가들은 임신 출산의 자기 선택권을 박탈당한 채 일과 육아의 양립에 심각한 제약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 52시간제’ 도입 등 노동시간 단축에 나서는 사회적 추세와 달리 방송작가들은 프리랜서라는 신분에 따라 밤샘노동에 시달리고 출산 휴가조차 제대로 쓸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별칭 방송작가유니온)는 지난 20일부터 26일까지 ‘방송작가 모성보호에 관한 실태조사’를 진행 뒤 그 결과를 29일 발표했다. 조합원 및 비조합원을 포함한 총 222명(기혼 105명, 미혼 117명)의 여성 방송작가가 설문에 답했다. 방송작가 숫자는 전국적으로 1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94.6%가 여성이다
실태조사에서 ‘본인이 원할 때 자유롭게 임신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방송작가 열에 일곱명(70.8%)은 ‘아니오’로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임신결정이 자유롭지 않은 이유’에 대해 66.1%가 ‘임신과 일을 병행하기 힘든 높은 노동강도’로 답했으며, 휴가 및 휴직혜택 전무(25.3%), 임신 이후 해고 등 불이익 예상(7%), 동료들의 곱지 않은 시선(1.6%) 순으로 꼽았다.
방송 현장에선 방송작가들의 임신·출산과 관련해 아직도 부당한 언사와 행위들이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방송작가들이 실제로 상사에게 들은 말 중에는 출산 후 복귀한 작가에게 “아줌마가 되더니 감떨어졌다”고 말하거나 “맘 놓고 밤샐 수 있는 젊은 애들 넘쳐나는데 누가 애 보러 가야 하는 애 엄마 쓰겠냐", (면접 시 결혼 여부를 물으며) "임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든가, 불임이면 합격", 임신 초기 지방촬영 동행 및 대본작업으로 밤샘을 강행하다 유산되었으나 "며칠 쉬더니 얼굴이 좋아 보인다, 애는 또 금방 들어선다" 등이 있었다.
방송작가유니온은 "방송작가들에게 모성권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열악한 구조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특수고용직 프리랜서에 속하는 방송작가들에게 유급 출산휴가나 휴직제도는 생각조차 못한다. 임신출산을 경험한 방송작가 115명 가운데 71.3%는 ‘임신출산 휴가를 사용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휴가를 썼다고 응답한 28.7%도 제대로 된 ‘출산휴가’라 보기 어려웠다. 62%가 ‘출산을 위해 아예 일을 그만 두었다’고 답했고, 26%는 ‘다른 작가에게 잠시 일을 넘겨주는 방법으로 (무급 휴가) 출산휴가를 냈다’고 답했다. 유급으로 공식휴가를 받았다는 응답자는 115명 중 단 1명에 그쳤다. 아예 임신출산 사실을 숨긴 사례도 있었다.
이윤정 방송작가 수석부지부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방송작가들도 애를 낳고 키울 권리가 있다. 임신하면 해고나 경력단절을 우려해야 하고, 출산 휴가제도가 없기에 결혼해도 아이는 생각도 못한다. 정부와 방송사들이 방송작가들의 모성권 보장을 위한 노동환경 개선과 출산 뒤 복귀가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