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MBC) 본부 조합원들이 2012년 6월21일,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본사 앞에서 김재철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문화방송>(MBC)이 지난 2012년 김재철 사장 시절 노조파업 기간 동안 강행한 대체인력 채용은 ‘불법’이라는 입장을 공식 선언하고 후속 대책에 나섰다. 불공정 보도, 내부 구성원들 간의 갈등을 유발하며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른바 ‘시용’(임시고용)들의 거취가 어떻게 결정될지 주목된다. 사내에선 ‘일괄적 채용 해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한켠에선 공헌도를 따져 선별 처리하자는 일부 관용론도 있다. 회사 쪽은 다음달 평가인사위원회를 열어 당시 채용된 이들 모두에게 소명 기회를 주기로 했다.
■ 정상화 최대 걸림돌 파업 대체인력 문화방송은 지난달 31일 “2012년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의 파업 기간동안 이뤄진 전문계약직·계약직·시용 사원 채용이 불법적인 파업 대체인력 채용임을 분명히 한다’’는 입장문을 발표하고, 엄정 대처하겠는 방침을 밝혔다. 갈등의 뿌리는 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1월 문화방송 노조는 이명박 정권의 방송 장악에 맞서 공정방송 복원과 ‘낙하산’ 김재철 사장 퇴진을 내걸고 파업에 돌입했다. 합법적인 쟁의기간에 대체인력을 채용하는 것은 관련 법에서 금지하고 있으나 당시 경영진은 96명이나 뽑았다. 이중 보도국 인력은 ‘시용’ 경력기자 19명을 포함해 북한·복지·환경 분야의 전문계약직(3명)과 계약직 경력기자(4명) 등 26명이다. 이들은 ‘1년 근무 뒤 정규직 임용’이라는 고용 조건에 따라 대부분 다음해 정규직으로 전환된 바 있다. 대체인력은 현재 취재기자 25명, 피디 5명을 포함해 여러 직종에 걸쳐 55명이 남아 있다.
같은 해 7월 노조가 170일간의 파업을 끝내고 조합원들은 일터로 다시 돌아갔지만 원직 복귀는 꿈도 꾸지 못했다. 대선을 앞두고 정치·사회부 같은 핵심 부서엔 파업 참가자들이 철저히 배제됐고, 시용기자들이 이 자리를 메웠다. 편파·왜곡 보도가 남발하자 시용 기자들에겐 상부 지시에 따라 친정권의 용병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때부터 시작된 불신은 깊어져만 갔다. 파업 뒤 복귀한 일선 기자들은 시용 기자들과 부딪치는 일상이 스트레스였다. 불공정 보도에 앞장서는 이들을 동료로 받아들여 선배, 후배 등의 호칭으로 부르는 것도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왜곡보도·오보 남발로 문화방송 신뢰도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문재인 정부 출범 뒤 새 경영진이 들어서 방송 독립성 등 정상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시용 인력 문제는 여전히 걸림돌로 남아 있다.
최승호 사장이 지난해 12월 취임한 뒤 보도국에선 파업 때 채용된 시용 기자들은 취재 현장에 투입하지 않고 있다. 뉴미디어국에 배치해 제작된 영상물을 에스엔에스(SNS)로 유통하는 업무를 맡기거나 기상센터의 기상 관련 자막 작업 또는 자료실 자료 정리 등을 시키고 있다. 그러나 뉴미디어국 등에서도 기존 인력과 불협화음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용기자 문제를 놓고 원칙론과 관용론이 엇갈린다. 노조와 연령층이 낮은 구성원들은 “불법 대체인력 55명의 고용 계약을 취소해야 한다. 개별적 성격을 고려하면 원칙이 무너진다“며 ‘일괄 정리’를 주장하고 있다. 조직내 갈등 요소를 제거하고 과거를 청산해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노조 집행부는 “파업 이후 들어온 경력기자와 달리, 시용 인력들에 대한 정서가 좋지 않아 화학적 결합을 하거나 신뢰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며 “능력 미검증, 채용절차 문제, 편파·불공정 보도 가담 등의 이유로 고용 해지에 대체로 이견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내 분위기는 최 사장이 취임 직후 ‘화합’을 내세워 어정쩡한 끌어안기를 하고 있다며 불만이 높았는데 이제라도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보도국 간부 ㄱ은 “보도국 내에선 이들을 끌어안고 가자는 이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안다. 두고두고 짐이 된다. 경영이 안 좋은데 인건비 부담도 크고, 앞으로 정권이 바뀌면 또 편향 보도의 용병 노릇을 할 잠재적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시사교양국의 ㄴ피디는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 불법 대체인력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가 없다. 이들을 영구적으로 고용하면 파업권이 부정당해 헌법상 보장된 노동권과 배치된다”며 고용 해지 뒤 예고되는 소송을 통해 법적으로 엄밀하게 따져보자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에선 정치적 부메랑이 될 수 있다며 ‘관용’을 주장한다. 보도국 ㄷ기자는 “마음 같아서는 내부 갈등이 없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 ‘해고자가 사장되더니 해고만 양산한다’는 공격의 빌미가 돼 또다른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ㄹ피디도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것은 회사에 이익이 안 된다. 옥석을 가려 결단할 때”라고 지적했다.
■ 인사평가·조직개편 뒤 명예퇴직 추진 회사 쪽은 이와 관련해 법률회사에 자문을 구했으나 고용 해지에 부정적 답변을 얻은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쪽 관계자는 “일괄 계약해지를 통한 정의실현도 좋지만 햇수로 7년 전 일이다. 그동안 문화방송에 기여한 사람도 있고 능력을 키운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강원랜드 방식을 차용해 12월에 평가인사위를 열어 전원 소명을 듣고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채용비리 의혹이 불거졌던 강원랜드는 인사위원회에서 관련자 모두의 소명을 듣고 퇴출 여부를 결정한 바 있다.
한편, 문화방송은 효율화와 경쟁력 제고를 위해 오는 21일 조직개편을 시행한 뒤 대규모 명예퇴직도 추진한다. 지난 9일 명예퇴직을 포함한 구조개혁안을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에 보고했다. 명예퇴직과 대체 인력을 직접 연관시키는 것에 대해 사쪽은 경계하고 있지만 구조조정 등 경영적 자구 노력뿐 아니라 파업 대체 인력들에게 사전에 퇴로를 열어주려는 다목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