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 언론인 진천규씨가 찍은 평양의 지하철 부홍역 플랫폼 모습. 평양 시민들은 출퇴근 교통수단으로 버스에 이어 지하철을 많이 이용한다. 부홍역은 열차역이 있는 평양역에서 2~3분 거리에 있다. 타커스 제공
다음달 평양에서 열리는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언론교류가 정식 의제로 채택돼야 한다는 언론계 안팎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남북 언론교류의 일환으로 남한 언론사들이 앞다퉈 경쟁하던 ‘평양지국’에 대한 기대감은 현실성 등을 이유로 속도조절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외신 받아쓰기나 북한에 대한 왜곡보도를 막기 위해선 평양지국 설치가 절실하지만 제도 정비 등이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 방북팀 선물 보따리 없어 남북 정상의 4월 첫 회담 이후 언론사 가운데 가장 먼저 방북이 성사된 곳은 종합편성채널 <제이티비시>(JTBC)였다. 지난달 9~12일까지 나흘간 북한을 방문해 언론교류의 물꼬를 틀지 주목받았으나 별 성과없이 빈손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상우 제이티비시 행정국장은 “방북단이 북측 담당자들을 만나 앞으로 계속 교류를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들었다. 평양지국 개설을 포함한 우리의 희망사항을 사업계획서에 다 넣었다. 첫 만남인 만큼 뚜렷한 보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세부적 사안과 조건이 많아 단시간에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공영방송인 <한국방송>(KBS)도 평양에서 열린 국제유소년축구대회 중계 겸 언론교류 논의를 위해 지난 10~19일 열흘간 10여명이 북한을 다녀왔다. 이번 방북단에 합류했던 박찬욱 한국방송 남북교류협력추진단장은 “메인뉴스에서 10년 만에 위성으로 서울-평양 이원 생방송을 했다. 북쪽 인사들과 만나 다큐멘터리나 보도프로그램, 공연 등 방송교류도 협의했다. 평양지국 논의는 남북한 인식차가 있어서 제재가 풀리고 여건이 성숙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함께 방북했던 <문화방송>(MBC)과 <에스비에스>(SBS) 등도 참가 규모는 적지만 북쪽 인사들과 별도로 면담을 갖고 방송교류 등 논의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는 상시적인 언론 활동을 위해 평양지국 개설과 <조선중앙통신>과의 기사 교류를 추진하고 있다. 정일용 연합뉴스 평양지국개설준비위원장은 “우리 당국도 미온적이지만 북한도 언론교류 제안에 묵묵부답으로 부정적”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는 “남북관계 개선과 통합을 위해 언론이 앞장서 노력해야 하는데 부정확한 보도로 되레 재를 뿌리는 행위가 여전하니 우리도 할말은 없다”고 말했다. 북한이 언론교류에 방점을 찍고 있지 않은 이유는 언론의 역할에 대한 관점 차이도 있지만 그동안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총살’ 오보 등 남한 언론에 대한 불신이 크게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남북교류가 급물살을 타면서 언론들이 봇물터지듯 평양지국 설치에 높은 관심을 보였지만 언론사 의지와 무관하게 당국이나 북한 등의 공조가 필요한 만큼 “조금 더 뜸이 들어야 한다”며 시간을 갖자는 분위기가 대체적 흐름이 되었다.
평양 대동강구역 능라3동의 문수물놀이장. 더위를 피해 수영장에 온 많은 사람들이 인공파도를 즐기고 있다. 타커스 제공
■ 외신기자도 상주는 불허 북한에서 외국 언론사의 지국 개설이나 기자의 상주 문제를 관할하는 곳은 조선중앙통신사와 조선중앙방송위원화다. 두 기관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선전선동부의 승인을 받아 상주 허용 신청서를 외무성에 보내는데 최종 결정은 통상적으로 최고 윗선의 몫이다. 평양지국에 진출한 외신은 중국의 <신화통신>과 러시아의 <인테르팍스>, 미국 <에이피>(AP), 프랑스 <아에프페>(AFP), 일본의 <교도통신> 등이 있다. 진출해 있는 서방 언론도 상주보다는 베이징이나 도쿄 지사를 거점으로 필요하면 오가는 평양 순회 특파원으로 활동한다. 2년 전에 남한으로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3층 서기실의 암호>라는 책을 통해 “기자 상주를 조건으로 내세우면 지국 개설이 어려워진다”며 지부 설립 뒤 자유롭게 북한을 드나들며 취재하는 방법을 언급했다. 그는 에이피 통신사의 영상 계열사로 런던에 본사를 둔 <에이피티엔>(APTN)에 이 방식을 제안해 2002년 서방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평양지국을 성사시킨 사례를 들었다.
서울외신기자클럽회장을 지낸 엄재한 일본 <산교타임즈> 서울지국장은 “평양에 진출한 외신들도 이런 저런 통제가 많아 자유로운 취재나 보도가 쉽지 않다. 한국도 경쟁적으로 평양지국을 신청하고 있지만 자유로운 보도를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그래도 국가간 갈등은 정보 부족이나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차원에서 평양지국에 한국 언론사가 생기면 획기적 일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딸리아요리전문식당’에서 코코아향탄산단물(콜라)과 함께 피자와 스파게티를 즐기고 있는 평양시민들. 타커스 제공
지난해 10월부터 올 7월초까지 네 차례 방북하며 최근 북한 모습을 생생하게 취재해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타커스)를 출간한 재미 언론인 진천규씨는 <한겨레>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북녘 사람들은 남쪽 언론이 자기들 마음대로 너무 왜곡해서 보도한다고 무척 억울해한다. 바람직한 남북 언론교류는 '진정성' 과 서로간의 '믿음' 이라는 말을 하고싶다”고 밝혔다. 한겨레 창간 기자 출신인 그는 지난 15일 다시 평양을 방문해 29일까지 북한을 취재 중이다.
남북한 분단 이후 문화적 괴리감이 극심한 가운데 적대감을 증폭시키는 오보나 왜곡보도를 줄이기 위해 언론의 직접 취재가 중요하지만 정치적 목적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세부적 지침 등이 정비돼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최우정 계명대 교수는 “제3자인 서방언론과 달리 우리는 이해당사자인 만큼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영역에서 기사거리가 풍부하게 나올 수 있다. 다만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나서 돌출행동이나 북한 비방으로 여야간 정쟁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 남북 언론교류 공론화위원회를 만들어 논의하고, 언론들도 남북관계 보도제작 준칙 등을 점검한 뒤 잘 지켜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