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추가 공개된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의 ‘사법농단 문건’으로 대법원과 <조선일보>와의 ‘거래’ 의혹이 불거지자 언론단체들이 진실 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양승태 대법원장 때 법원행정처가 세운 시나리오는 조선일보에 상고법원 홍보를 위한 설문조사와 좌담회, 특집기사, 기고문 등의 게재를 주문하면서 10억원에 가까운 법원 예산을 광고비로 지급하는 계획이었다.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는 2일 ‘법원행정처 문건과 조선일보는 정말 무관했나’라는 논평을 통해 “조선일보 등 언론사가 지난 2015년 사법 농단 세력으로부터 청탁을 받거나 거래를 통해 그들에게 유리한 기사를 써 준 정황이 드러났다”며 “법원행정처의 시나리오를 모른 채 이용당해 기사를 썼든 돈을 받고 기사를 써 주었든 언론으로선 치명적인 잘못을 한 것”이라며 조선일보 보도가 법원행정처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는지 명백히 밝혀져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문건이 공개된 당일 “행정처가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우리와는 무관하다”는 입장문을 낸 바 있다. 이에 대해 민실위는 조선일보가 애초에 상고법원을 반대하다 찬성으로 돌아선 논조 변화 등을 들어 조선일보의 입장문은 설득력이 없다고 짚었다. 2015년 1월 국회의원 168명이 상고법원 법안을 발의하자 “입법과 사법의 불륜”(2015년 1월17일 칼럼)이라며 원색적인 비난을 퍼붓다가 행정처가 ‘상고법원 찬성 기고문 게재 추진대책’을 세운 뒤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의 “상고법원이 필요한 이유”(2015년 2월6일)란 제목의 기고문을 실었고, 이후에도 “대법관 ‘월화수목금금금’ 일해도 벅찬데…상고법원 표류?(2015년 10월21일) 등 상고법원에 우호적인 논조가 몇달간 지속된 점을 들었다.
민언련도 같은 날 논평을 내어 조선일보와 ‘양승태 대법원’의 기사-재판거래 실체를 규명할 것을 촉구했다. 민언련은 “‘조선일보를 통한 상고법원 홍보전략 문건'을 보면 당시 법원행정처는 조선일보를 통해 상고법원을 집중 홍보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며 “사주 일가의 이익을 위해 전방위 로비에 나선 삼성 전략기획실이 연상되는 법원행정처의 모습은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상고법원에 목맨 ‘양승태 대법원’과 2015년 당시 조선일보 9대 사장이자 사주였던 방응모의 친일반민족행위 행정소송이 진행중인 상황을 고려해 “‘방응모 친일 대법원 판결’은 단순히 개인의 판결이 아니라 조선일보 입장에서는 보도협조 요청을 외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하며 “조선일보가 ‘판결과 기사를 거래’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언련은 “사법부가 헌법 등에서 부여한 권한이자 의무인 ‘독립’의 가치를 저버렸고, 조선일보가 사주 일가와 자사의 이익을 이유로 기사를 ‘거래’한 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결코 묵과할 수 없는 파렴치한 일”이라며 “사법부와 언론이 결탁해 법에서 부여한 민주적 기본질서 존중의 의무를 심대하게 훼손한, 일종의 쿠데타와도 같은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또 ‘우리는 무관하다. 관련된 것처럼 보도하면 고소하겠다’는 조선일보에 대해 “겁박하는 태도가 독자와 국민을 얼마나 얕잡아 보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질타했다.
민언련은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실체를 명명백백 규명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국민의 혈세인 법원 예산이 어떻게 조선일보에 광고비 등의 명목으로 흘러들어가진 않았는지 등을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정치권 누구도 수사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