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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구세군 자선냄비 ‘특종사진’의 비밀은?

등록 2005-12-07 15:57수정 2005-12-07 17:17

경향신문 2일치에 실린 구세군 사진(왼쪽)과 한겨레 신문 3일치에 실린 구세군 사진.
경향신문 2일치에 실린 구세군 사진(왼쪽)과 한겨레 신문 3일치에 실린 구세군 사진.

사건의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한다는 당위성과 좋은 사진을 얻기 위해 약간의(?) 현장개입을 해야 하는가를 놓고, 사진기자들은 고민에 빠진다. ‘더 좋은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 어떤 구도로 어떤 각도에서 사건이나 대상을 프레임(사진) 에 넣어야 할까?’ 사진기자들은 종종 취재현장에서 ‘연출’의 유혹에 빠진다.

<경향신문>의 12월2일치 1면 사진보도가 도마에 올랐다. 경향은 이날 “서울 명동 거리에 구세군 냄비가 처음 내걸렸다”며 명동 한복판에 놓인 구세군 자선냄비 사진을 찍었다. 이 사진에는 친절하게 “쌀쌀한 날씨만큼이나 하늘빛조차 우울하게 가라앉은 1일 서울 명동 거리에 구세군 자선냄비가 처음 내걸렸다”라는 사진설명까지 붙어 있었다. 기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1일부터 구세군 남비가 등장한 것’은 분명한 사실로 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구세군 자선냄비는 12월1일 어디에서도 걸리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이 사진은 2일 열리는 구세군 시종식을 앞두고 1일 구세군에서 자선냄비를 빌려 ‘연출사진’으로 찍은 것이다. 이 사진으로 2일 자선냄비 현장취재에 나선 언론은 본의 아니게 하루 뒤늦은 보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들이 구세군 쪽에 항의하면서 구세군도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구세군은 2일 서울 시청 앞에서 처음 모금에 들어가는 시종식 행사를 대대적으로 열고, 이 행사를 마친 뒤 전국 곳곳에서 모금에 들어갈 예정이었다.

이에 대해 경향신문 사진기자는 <미디어오늘>에서 “2일에 시작하니까 2일 아침신문에 알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 이미지컷으로 찍었다. 그러나 사진설명을 쓰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사진부장도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진설명을 쓰는 과정에서 2일로 쓸 것을 1일로 잘못 표기하는 실수를 했다”고 인정하면서도, “정정보도 등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언론사의 한 사진기자는 “보도사진의 생명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는 데 있는데, 취재과정에서 사건이나 대상에 개입하는 것은 객관성을 위배하는 것”이라며 “왜곡된 사실을 전달받은 독자가 가장 큰 피해자”라고 말한다. 그는 “원칙적으로 사건이나 대상에 기자가 이미지를 위해 사진에 개입하면 안된다”며 “지금까지 이미지 연출이 암묵적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이런 큰 실수를 저지르고도 담당기자나 사진부장(데스크)가 사진 왜곡에 대해 죄책감이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간신문의 한 사진기자는 “구세군 냄비 사진을 이미지컷으로 사용했거나, 사진설명이라도 제대로 달았다면 좋았을 것”이라며 “왜 이런 일을 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혀를 찼다.

사진계에서는 이미지를 연출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 인물들을 찍을 때 “모여 주세요!” 또는 “이렇게 포즈 취해 주세요!”, “아까 그 행동을 똑같이 다시 해주세요!”부터 “여기 보세요”, “웃으세요”, “악수하세요!” 등은 일상처럼 되었고, 사건현장에서 증거물이나 현장에 있는 물품을 옮겨놓는 일이나 집회에서 피켓과 사람의 위치를 바꾸는 일도 흔하다.

<미디어 오늘>에 실린 ‘불 밝힌 부산 APEC 정상 회의장 누리마루’ 동아일보,세계일보 사진
<미디어 오늘>에 실린 ‘불 밝힌 부산 APEC 정상 회의장 누리마루’ 동아일보,세계일보 사진

똑같은 사진이 두 개의 신문에서 동시에?

뿐만 아니라 똑같은 사진이 여러 신문에 해당 신문의 바이라인을 달아 쓰이는 경우도 사진계의 오랜 관행 가운데 하나다. 이는 해당 언론사가 사진을 찍지 못했거나, 신문에 쓸 수 있을 정도의 사진이 나오지 않았을 때 다른 신문사에 연락해 유사한(또는 똑같은) 사진을 얻어 지면에 싣기 때문이다.

지난 9월14일자 <동아일보> 1면에 실린 사진이 대표적이다. 당시 동아는 9월10일 <세계일보> 1면에 실린 ‘불 밝힌 부산 APEC 정상 회의장 누리마루’ 사진을 양 신문사 데스크간 합의 하에 14일 받아쓰면서 자사 기자 이름을 넣어 날짜까지 13일로 바꿔 1면에 내보냈다.

뒤에 <미디어오늘>을 통해 이 문제가 불거지자, 동아일보 사진부장은 <미디어오늘>에서 “우리 기자가 현장에 안 간 것도 아니고, 이미 나간 사진을 받아쓴 것일 뿐”이라며 “(사진 주고받기는) 기자들이 부족한 상황에서 서로를 돕는 일이고, 현지를 취재한 우리 기자 이름으로 보도하기로 사전에 양해를 구해 나갔는데, 타사에서도 있었던 문제를 왜 동아일보가 뒤집어 써야 하느냐”며 사실상 관행이었음을 시인했다.

더 큰 문제는 사진기자들 사이에서는 경향의 사진 왜곡이나 동아의 사진 표절에 대해 ‘묵인’하거나 ‘관용’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게 퍼져 있다는 점이다. 동아일보는 인사위원회를 열어 사진부장에게 구두경고 조처를 내렸을 뿐이고, 경향 역시 구세군 사진과 관련해 어떠한 조치도 내리지 않았다.

한 일간지 사진기자는 “사진 돌려쓰기는 오랜 관행이었고, 특히 취재 제한이 있는 국회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더욱 심했다”며 “기자들끼리 자정노력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한 인터넷매체 사진기자는 “사진이 돌고 도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며,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동아의 사진은 날짜까지 바꾼 것이기 때문에 명백한 허구”라며 “차라리 소설을 쓰라고 하는 것이 낫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전달해야 할 기자들이 사실을 왜곡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는 것이 부끄럽다”며 “관행이라고 치부하기에 앞서 사진기자들 스스로 반성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사진기자들의 자정을 촉구했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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