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언론사 구성원들도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춰가는 ‘워라밸’(Work & Life Balance) 시대에 합류할 수 있을까.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라 300인 이상 신문사와 뉴스통신사들이 지난달부터 시행한 ‘주 52시간제’가 한달을 맞았다. 52시간제란 하루 8시간씩 주 5일 노동하는, 주 40시간제가 기본이며 불가피할 경우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해 일하는 것을 일컫는다.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방송사(300인 이상)의 경우 주 52시간제는 1년간 유예되고 내년 6월30일까지 주 68시간(휴일근로 16시간 추가)제가 적용된다.
노동시간을 단축한다고 콘텐츠의 질이 떨어지거나 실질 임금의 축소로 이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에 언론사들은 인력 충원, 시간외 수당 현실화 등에 나설 것을 요구받고 있다.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집중해야 하지만 비용 상승 등 경영환경 악화에 큰 부담을 느껴 자칫 은폐된 ‘공짜 노동’만 확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 주 5일제 안착에 안간힘 국내 언론사 기자들의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약 10시간5분으로 법정시간을 2시간 가량 초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부서별로 보면 정치부(10시간45분), 사회부(10시간40분) 순으로 노동시간이 길었다(언론진흥재단 <한국의 언론인 2017>). 프로야구 시즌이 되면 연장전 속출로 스포츠부의 야구담당 기자는 노동시간이 주당 80시간까지 치솟는다. 갓 입사한 수습기자들은 경찰서 기자실에서 밤샘근무하며 발생사건들을 보고하는 ‘경찰 붙박이 취재’(하리코미)로 주당 100시간 넘게 일하는 비인간적인 생활을 했다. <경향신문> <한겨레> <한국방송>(KBS) 등은 이미 이 붙박이 제도를 폐지했고 <서울신문> <연합뉴스> <한국일보> <문화방송>(MBC) 등도 ‘52시간’ 시행에 맞춰 폐지했다. 배성재 한국일보 노조위원장은 “개정된 근로기준법이 결국 이 제도의 폐지를 이끌었다. 지난 6월 입사한 수습기자들이 주52시간제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되었다”고 밝혔다.
종이신문들의 가장 큰 변화는 토요일치 폐지·축소 또는 사전제작에 따른 주5일제 안착이다. 지난달부터 토요일치 신문을 제작하지 않고 금요일치에 주말판을 만드는 <서울신문>은 국실별로 근무시간을 조정해가며 ‘52시간’ 준수에 나섰다. 경향신문은 지난 6월말부터 토요일치 4개면을 줄였다. <국민일보>는 토요일치를 매거진 형태로 사전제작해 토요일에 배송한다. <국민일보>는 편집국장과 부장 등 간부를 포함해 편집국 구성원들이 대부분 금요일엔 쉬고 일요일에 일하며, 금요일엔 인터넷기사 출고를 위해 일부만 일한다. 주 5일 근무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체제다.
퇴근 독려방송과 시차 출근제, 대휴제도 눈길을 끈다. 오후 6시면 퇴근 독려방송을 하는 연합뉴스에 이어 서울신문도 오후 5시55분에 ‘일을 마무리하기 바란다’는 독려방송을 한다. 서울신문 편집국은 늦게 퇴근하면 다음날 출근시간을 늦추는 시차출근제를 도입했다. 이에 따라 오전 편집회의 시간도 30분 늦췄다. 일찍 출근하고 늦은 퇴근으로 노동시간이 긴 정치부 정당팀이나 사회부 법조팀 등은 대체 휴가 또는 주 1회 반차를 정례화하는 추세다.
‘52시간제’는 한편으론 출퇴근 시간 기록을 의무화하는 등 근태관리를 엄격하게 만들었다. <조선일보>는 자체적으로 개발한 근태관리 시스템에 직원들이 출퇴근 시간을 자율적으로 입력하게 했다. 한국방송은 주당 68시간 기준으로 ‘연장 잔여’ 시간을 확인하게 하고, 초과 근무 땐 빨간색으로 바뀌며 알람 기능이 작동한다.
업무관행도 개선되고 있다. 대면 회의 대신 이동 시간을 줄이는 온라인 회의가 늘었다. 또 퇴근 뒤 수시로 튀어나왔던 ‘카톡’ 업무지시가 확실히 줄었다는 점에 호응도가 높다.
■ 부장은 주52시간 적용 안한다고?…보직 기피 현상도 언론사들은 그동안 야근을 밥먹듯 했지만 법에 정해진 대로 야근 수당을 통상임금의 150%를 지급하는 곳은 드물고 대부분 포괄임금을 적용해왔다. 이에 대해 연합뉴스는 시간외 수당 현실화라는 큰틀을 합의하는 등 가장 앞서 논의가 진행중이다. 노사가 팽팽하게 대립했던 시간당 단가도 의견 접근을 보이고 있다.
노동시간을 어디까지로 봐야 할지도 노사간 큰 쟁점이다. 대부분의 언론사에선 기사 작성을 위한 출판담당 기자의 독서시간이나 기자간담회 등 취재와 관련된 공식적인 식사시간은 노동시간으로 인정하고 있다. 공연이나 경기 관람도 노동시간에 포함하되 업무시간이 아닌 경우 사전에 출퇴근 시간을 조정하게 한다. 시행 이후 예상치못한 “52가지 이상의 문제가 쏟아졌다”며 현장에선 일부 혼란도 있지만 ‘노동시간 티에프’를 구성해 다양한 논란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고 있다.
52시간제를 누구까지 적용할지도 쟁점이다. 연합뉴스의 경우 노조는 부장·팀장 등 데스크들도 52시간제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 쪽은 통신사 특성상 주말에 긴급한 사안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데스크는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방송은 부장급 이상 간부는 업무지시권 등 광범위한 전결권을 가지고 있으며 별도의 직책수당을 받는다는 점에서 노동시간 단축 대상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부장·팀장 보직을 기피하는 현상도 벌어진다. 반면, 한국일보는 일찌감치 편집국장도 주 52시간제를 적용하고 있다.
언론사 노동시간이 정상화하려면 정부기관과 국회 등 출입처의 전반적 환경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를 출입하는 한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는 “정당들이 당리당략을 내세우며 상임위나 본회의에서 밤샘 대치하는 구태가 변하지 않으면 기자들의 노동시간도 바뀔 수 없다”며 현실적 한계를 토로했다. 출입처에 상황이 생기면 퇴근시간이라도 대기할 수밖에 없고, 뉴스가 있으면 기사를 쓰지 않을 수 없다.
잦은 초과 근무가 불가피한 상황은 공짜노동으로 이어진다. 연장 근무를 하려면 기자들이 일일이 일정을 보고해 부서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눈치가 보이거나 번거로워 보고를 건너뛰기 일쑤다. 심지어 초과근무를 했어도 법정근로 8시간을 추기 위해 점심을 2~3시간 먹은 것으로 적었다는 사례까지 나온다. 공짜노동이 다양하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영석 전국언론노조 법규국장(노무사)은 “시간외 근무와 관련해 노사 충돌의 지점이 있으나 객관적으로 합의 가능한 범위가 있을 것”이라며 “시스템을 개선해가는 것이 중요하고 조합원들도 인정되는 업무라면 적극적으로 승인 신청해서 공짜노동을 줄여가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언론사 노조들은 52시간제 취지를 무력화시키는 재량근로엔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다음달 열리는 아시안게임과 같은 국가적 대형 행사에선 탄력근로제 수용을 제한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일이 많을 땐 노동시간을 대폭 늘리는 대신 다른 주의 노동시간을 줄여 주 40시간인 평균 법정시간을 맞추는 제도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