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골적으로 ‘여성혐오’ 드러내기, 피해자 ‘신상털기’, 가해자 입장 받아쓰기…. 지난 두 달간 취재·데스킹 등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내보낸 언론 보도들도 ‘어뷰징 기사’ 못지않게 숱한 2차 가해를 양산했다. 이런 보도는 어떻게 탄생할까.
현장 취재 기자들은 ‘2차 가해’ 소지가 있는 보도는 주로 과잉 취재 경쟁과 관리자 지시 때문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방송사에서 근무하는 ㅂ기자는 “(경쟁하다 보니) 한 명의 피해자에게 여러 건의 연락이 갈 때가 있다. 이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많이 양산된다”며 “‘미투’운동 이후 문화예술계에는 ‘기자 블랙리스트'처럼 피해야 할 기자 명단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한 종합일간지 ㅅ기자도 “취재를 하다 보면 신상털기에 무감각해진다. 다른 기자들도 다 이렇게 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집단으로 죄의식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합편성채널 ㅇ기자는 또 “성범죄 사건 보도가 경쟁 언론사에서 나오면, 비슷한 다른 사건 없는지 알아보라는 식의 분위기가 있다”며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피해자 신원·피해상황 등을 가리면 기사 요건을 갖추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 사건 기자들이 많다. 이 때문에 다른 언론사에서 나온 기사를 확인해서 보도할 때 익명이었던 피해자의 성이라도 쓰게 된다. 누군가는 범행 장소나 범죄행위를 쓸 것이다. 결국에는 피해자가 점점 특정된다”고 말했다.
언론계 전반의 인권의식 부족도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경제 언론의 ㅈ기자는 “최근 지면 제목에서 ‘미투’ 폭로를 ‘지뢰’라고 편집해 기자가 문제 제기한 적도 있다. 성폭력 보도에서 굉장히 관성적으로 기사를 쓰고 제목을 단다. 자신들이 얼마나 중요한 사안을 다루는지 생각지 않고 냉장고에서 김치 꺼내 먹듯이 한다”고 했다.
언론계 전문가들과 기자들은 ‘미투’ 보도로 자성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고 짚었다. 한 지역방송사에서 사건 사고 취재를 담당하는 ㅊ기자는 “이번 계기로 언론인 대상 인권 교육의 기회가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피해자 이름을 노출하는 방식의 보도를 자제하는 등 작은 부분이지만 쉽게 할 수 있는 변화라도 만들어가야 한다. 다른 곳에서 피해자 신상을 어차피 공개할 거니 우리도 공개하자는 방향으로 현장 기사가 흘러가선 안 된다”며 “인권 가이드라인이 언론사 내부에서도 인정과 응원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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