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자 ○○○씨는 누구? 관심 뜨거워.’ 언론은 성폭력 피해를 밝힌 ‘미투’ 증언이 실시간 인기검색어에 오를 때마다 이러한 제목의 기사들을 쏟아냈다. 문제는 자극적 제목만이 아니었다. 기사에 피해자 사진을 첨부하고, 피해 사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기도 했다. 2차 가해 소지가 다분했던 이 기사들을 보면, 대체로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온라인 독자를 언론사 사이트로 끌어들일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빠르게 송고하는 ‘어뷰징’ 기사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들은 누가 쓰고 어떻게 생산될까? <한겨레>는 언론사에서 ‘어뷰징’에 참여한 이들 5명과 전화·서면 인터뷰를 통해 인권 침해적 보도가 반복되는 이유를 짚어봤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의 실명은 밝히지 않기로 했다.
‘어뷰징’에 참여한 기자들은 고민할 틈이 없었다. 하루에 써내야 하는 기사는 적게는 5건에서 많게는 50건에 달했다. 이렇게 많은 기사를 직접 취재해서 쓸 수 없으니, ‘짜깁기’, ‘베껴 쓰기’는 필수였다.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키워드를 넣어서, 여러 기사를 조합해 하나의 기사를 만들어내는 식이다.
종합일간지에서 ‘검색어 기사’를 쓰는 정규직 기자 ㄱ씨는 “어떤 사실관계를 취재해서 쓰기보다는 이미 그 사실관계를 다룬 ‘눈에 띄는 다른 기사’를 ‘빠르게’ 베껴 쓰는 일이 많다”며 “혼자서 하루에 10~20건 정도 기사를 썼다”고 했다. 다른 언론사에서 3개월간 ‘어뷰징’ 인턴기자로 일했던 ㄴ씨는 “기사는 한 시간에 5개, 빠르면 5분에 하나도 썼다. <연합뉴스> 기사 여러 개를 긁어서(복사해서) 쓴다. 천천히 쓰면 부장이나 정규직 사원이 (빨리 쓰라며) 심하게 독촉했다”고 했다.
‘어뷰징’ 기사를 생산하는 이들은 기사 작성 경험이 적은 인턴·비정규직도 상당수인데, 이들은 보도 윤리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ㄴ씨는 “속한 팀에 인턴이 4~8명 있었는데, 주로 인턴들이 검색어 기사를 썼다”며 “기자 시험을 준비하고 있어서, 인턴 경험을 위해 지원했었다. 이런 기사를 쓰는지 모르고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어뷰징’ 인턴기자를 관리하는 일을 맡았던 전직 기자 ㄷ씨는 “회사에서 (윤리) 교육 없이 (인턴기자에게) 컴퓨터 주고 바로 어뷰징 기사 쓰라고 시킨다. 어떻게 쓰는데요? 물으면 베껴 쓰라고 한다. 최소한의 교육은 하려 했지만, 보도 윤리 교육은 애초부터 안 되는 여건”이라고 전했다.
‘어뷰징’을 맡은 이는 시시각각으로 ‘클릭 수’ 압박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정제되지 않은 ‘낚시용’ 기사들이 포털 사이트에 그대로 노출된다. 기사 데스킹(기사 작성 뒤 사실관계 등을 검토해 다듬는 것) 과정은 없거나 허술하다. “(관리자들이) 항상 클릭 수와 조회 수를 언급했어요. 팩트체크를 해서 기사 쓰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언론사에서 3개월간 ‘어뷰징’ 인턴기자로 일한 ㄹ씨) “일주일에 한 번씩 인턴별로 트래픽(기사를 보려고 누리꾼이 사이트에 접속을 시도한 수치)을 정리해서 보여줘요. 못하면 분발하라고 해요.”(ㄴ씨) “편집회의를 하면 ‘클릭 수가 떨어졌네’라는 얘기가 나와요. 이걸 듣고 온 부장은 인턴들에게 기사 더 쓰라고 얘기해요. 인턴들은 짧은 시간에 이렇게 데스킹이 안 된 기사들을 써내죠.”(ㄷ씨)
‘클릭 수’를 노려 2차 가해 소지가 있는 기사들을 쓰라는 지시가 직접 내려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2차 가해가 우려되는 자극적 기사를 쓰라는 발제가 내려왔습니다. 데스킹 과정에서 피해자를 비난하는 댓글도 추가됐어요. 피해자 쪽으로부터 정정 요청을 받았고, 죄책감이 들었어요.”(신문사 정규직 기자 ㅁ씨) “트래픽 잘 나오게 피해자 사진을 잘 찾아서 모자이크해서라도 넣으라는 지시를 받은 적 있어요.”(ㄴ씨)
‘어뷰징’의 늪에서 헤어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기자들은 포털 사이트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ㄱ씨는 “의미있는 내용은 없고 제목만 자극적인 검색어 기사들이 포털의 ‘보기 좋은 위치’의 상위권에 오르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이런 현상은 검색어 기사를 배열하는 포털의 책임도 있다”고 했다. 2016년부터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등 포털이 ‘뉴스제휴평가위원회’를 통해 ‘어뷰징’을 반복하는 언론을 제재하고 있지만, ㄱ씨는 이런 조처가 실효성이 크지 않다고 봤다. “(포털의) ‘어뷰징’ 규제를 피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해요. (베낄 기사 원문에서) 제목을 살짝 바꾼달지, 본문 내용을 살짝 바꾸면 됩니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결국 언론 자신에 있다고 입을 모았다. 언론사 스스로 자극적이거나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검색어 기사 작성을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다. ㄷ씨는 “찍어내기식 기사를 쓰는 이상 인권 가이드라인은 소용없을 것 같다. 포털 중심으로 상업성을 강조하는 기사들이 주목받지 않도록 언론계 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어뷰징’ 일을 하고 언론에 환멸감이 느껴졌어요. 누굴 위한 기사들인가요? 기사가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어뷰징’을 이어가는 언론들은 문제의식이 없어요. ‘부끄러운 줄 아시라’고 말하고 싶어요.”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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