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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 털고 선정적 묘사…‘2차 가해’ 함정 빠진 미투 보도

등록 2018-02-28 05:00수정 2018-02-28 09:26

민언련 ‘성폭력 보도’ 한달 분석

“폭로내용 충격” 호들갑 떨고
성추행 피해상황 재연 방송

피해자 사진·이름 싣고
웃음소재 삼거나 “나쁜손” 희석
행실·평판 전하며 책임전가까지

성폭력보도 가이드라인 헌신짝
“2차, 3차 피해볼 수 있는 상황
현장 중계하듯 보도해선 안돼”
<한겨레> 자료사진
<한겨레> 자료사진
“용기 내서 폭로한 당사자가 당신의 기사 한 줄에, 전화 한 통화에 다시 상처받고 있습니다.”

이윤택 전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성추행을 폭로해 연극계에 ‘#미투’ 열풍을 불붙인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가 지난 20일 에스엔에스(SNS)에 올린 글이다. 김 대표의 지적처럼 언론들이 최근 미투 운동을 보도하면서 피해 상황을 선정적으로 묘사하거나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피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등 ‘2차 가해자’가 되길 주저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달 29일 안태근 전 검사장 성추행 ‘미투’ 폭로 이후 지난 26일까지 한달 동안의 성폭력 사건 보도를 분석한 보고서를 보면, 피해자에게 추가 피해를 줄 우려가 있는 기사가 상당수 발견됐다.

“성범죄 피해를 선정적·구체적으로 묘사하지 말라”는 보도 윤리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19일 <제이티비시>(JTBC)가 이윤택 전 예술감독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당한 인물을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구체적 피해 상황을 보도하자, 언론들은 이를 집중 부각해 ‘폭로 내용 충격’ 등의 선정적 제목으로 인터넷판 기사들을 쏟아냈다. 안태근 전 검사장 성추행 의혹 사건에선 피해 상황을 재연하는 장면이 지상파·종합편성채널에서 방송되기도 했다.

피해자의 신상을 무차별 공개하는 행태도 이어졌다. 지난 22일 <국민일보> 온라인판 보도는 연극계 성폭력 피해자 가족이 에스엔에스에 올린 글을 보도하며, 기사에 피해자 사진을 첨부하기도 했다. 각 방송사가 안 전 검사장의 성추행을 폭로한 피해자의 실명과 사진을 필요 이상으로 연속 보도한 사례도 있었다.

‘미투’에 나선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보도들도 문제로 지적됐다. 피해자의 ‘행실’과 ‘평판’을 보도하는 행태다. <엠비엔>(MBN)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 1일 <엠비엔>은 ‘미투’로 성추행 피해를 고백한 검사를 두고 “한 검찰 관계자는 (그가) 명석한 두뇌를 가졌고 업무 처리도 뛰어났다고 밝힌 반면, 다른 관계자는 근무 당시 동료들 사이에서 성품과 복무 평가가 좋지만은 않았다고 전했다”는 검찰 관계자의 말을 그대로 방송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의 입장을 부각한 보도들도 있었다. 각 지상파·종편들은 지난 19일 이 전 감독이 성폭력을 두고 “욕망을 억제할 수 없었다”고 말한 대목을 리포트 제목으로 썼다. 이외에도 ‘미투’ 운동을 웃음 소재로 삼거나, ‘(가해자의) 나쁜 손’ 등 피해를 희석할 우려가 있는 표현을 쓴 보도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문제 보도는 모두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여성가족부·한국기자협회·여성아동폭력피해중앙지원단),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한국기자협회·국가인권위원회) 등이 자제를 권고하는 유형에 해당했다.

언론진흥재단이 성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75.3%가 ‘언론이 피해자의 인격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동의했다. 언론진흥재단 제공
언론진흥재단이 성인 10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 75.3%가 ‘언론이 피해자의 인격권을 충분히 보호하지 않는다’는 지적에 동의했다. 언론진흥재단 제공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상임이사는 “피해자가 2차·3차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에서 기자는 ‘미투’를 사건 현장 알리듯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 ‘미투’ 보도에 달리는 악의적 댓글도 기사의 왜곡된 형태·관점과 무관하지 않다”며 “언론인 대상 인권 교육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유경한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 교수(언론학)도 “1920~30년대에도 성범죄 피해자들을 선정적으로 묘사하는 등 남성적 시선으로 보도했다는 연구가 있는데, 100년 전과 지금의 보도 관행이 별반 다르지 않다”며 “취재 관행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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