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훈(오른쪽)·서영민 <한국방송>(KBS) 기자가 28일 오전 서울 광화문 근처의 한 카페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우스꽝스러운 부조리극 한 편을 본 것 같아요.”
<한국방송>(KBS) 문화부 송명훈(42) 서영민(37) 기자는 지난해 7월부터 겪은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지난해 7월29일, 보도본부 간부들은 두 기자에게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흥행 돌풍’을 일으키는데, 평단이 혹평하는 것은 문제다. ‘관객과 따로 가는 전문가 평점(가제)’ 주제로 취재하라”고 지시했다. 영화 개봉 후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이를 거부한 두 기자에게 회사는 ‘감봉 2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두 기자는 지난해 11월부터 징계가 무효라고 소송을 내어 법정 싸움을 이어왔다. 마침 <한겨레>와 인터뷰를 잡은 지난달 28일 소송이 ‘승리’로 끝났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서울 광화문 인근 카페에서 만난 둘은 인터뷰 시작 직전 담당 변호사로부터 전달받은 문자를 보여줬다. “회사가 상고를 포기했다네요.” 앞서 서울남부지법은 지난 6월, 서울고법은 지난달 10일 두 기자에게 내려진 징계가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회사의 상고 포기로 징계 무효가 확정됐다. 두 사람은 부당 지시는 한국방송이 상업영화 <인천상륙작전>에 투자한 상황과 맞물려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방송은 본사 20억원, 계열사 10억원 등 총 30억원을 이 영화에 투자했다. “수신료를 받아서 상업영화에 투자했어요. 정당하지 않아요.”(송명훈)
당시 <인천상륙작전>은 한국방송 ‘9시 뉴스’에서만 아홉 차례 다뤄졌다. 비슷한 시기 흥행한 <부산행>이 한 차례 보도된 것과 대비된다. 서 기자는 “한국방송 보도는 상업영화와 거리를 둔다. 형평성 때문이다. 하지만 <인천상륙작전>은 개봉 전에만 세 번을 보도했다. 명백한 띄우기로, 언론의 본분을 따르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두 기자는 취재 지시를 거부하자 간부가 쏘아붙인 말을 기억했다. “편집회의에서 결정된 기사는, 하라면 하는 게 보도본부 전통이야!” 송 기자는 “당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왜 기자사회 전통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건 저널리스트가 아니고 회사의 부속품”이라고 했다.
징계 과정은 한국방송 경영진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냈다. 두 기자가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이유는 ‘성실의무 위반’이었다. 두 기자는 인사위에 출석해 간부들에게 ‘반성하라’는 강요만 여러 차례 들었다. “최종 징계 확정 자리에서 홍기섭 현재 보도본부장이 압박했어요. ‘반성하라. 개전의 정을 보여야 우리가 징계를 경감해주지 않겠느냐’고 말했죠.”(서영민 기자) “인사위에서 부당 지시를 저널리스트의 양심상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항변했어요. 그런데 그 자리에 온 최고위 간부가 ‘자기 양심에 어긋나면 또 지시 어기겠단 거요’라고 되물었죠.”(송명훈 기자) 둘은 회사의 ‘부당 지시’와 ‘징계’는 이명박 정권 이후 한국방송 내 공정보도가 사라졌다는 걸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서 기자는 “고대영 사장은 2009년 보도국장 시절,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의혹 관련 특종을 막았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에 ‘할 수 없는 건 무조건 안 돼. 시키는 건 무조건 해’ 하는 보도국 내 분위기가 이어졌다”고 말했다.
송 기자는 이번 한국방송 파업은 왕성한 내부 비판이 가능한 ‘저널리즘의 본령’을 되찾아가는 싸움이라 봤다. “이전에는 하지 못했던 ‘부끄러움’을 고백해야 해요. 조직 내 건강한 비판으로 제작 자율성을 되찾으면, 공영방송 가치를 다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봅니다.” 두 기자는 또 법원의 징계무효 판결 내용도 ‘저널리즘의 본령’을 지키는 싸움이 정당하다고 인정한 것이라 말한다. “원고들은 양심에 따라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여야 하는 기자들로서, (이 사건은) 신념과 실체적 진실에 반하는 아이템의 취재 및 제작을 강요받은 경우에 해당하므로 이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 서울고법이 징계무효를 확정한 이 결론은, 한국방송 ‘편성규약’에 나오는 말이기도 하다.
글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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