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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비 일방 삭감에 “XX새끼” 언어폭력…방송사는 ‘슈퍼갑’

등록 2017-11-04 12:56수정 2017-11-04 17:08

[토요판] 뉴스분석 왜?
외주제작사 상대 방송사 ‘갑질’

지난달 독립피디·제작사 협회 나서
실태조사 정책자료집으로 발간
외주제작비 동결 등 방송사 ‘이익 독식’
외주업체, “불방 선택, 적자 떠안기도”

외주 제작물 저작권도 방송사 귀속
영화화 권리·해외 판권까지 챙겨가
영국, 2003년부터 제작사 저작권 인정
정치권 제도 개선 논의 등 서둘러야
한국독립피디협회가 지난 8월16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고 박환성·김광일 피디 추모 및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 결의대회를 여는 모습. 사망한 두 피디의 부서진 카메라를 다른 피디들의 카메라들이 보호하듯 둘러싼 ‘카메라 시위’도 함께 진행됐다. 연합뉴스
한국독립피디협회가 지난 8월16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에서 고 박환성·김광일 피디 추모 및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 결의대회를 여는 모습. 사망한 두 피디의 부서진 카메라를 다른 피디들의 카메라들이 보호하듯 둘러싼 ‘카메라 시위’도 함께 진행됐다. 연합뉴스
▶ 제작비 부담으로 단둘이서 아프리카로 촬영을 떠났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김광일·박환성 피디. 이들이 세상을 떠난 지 석 달이 넘었지만 외주제작 현장의 ‘방송 정상화’는 요원하다.

“방송사들에 직접 이 제작비로 프로그램을 만들라 해보라. 그들은 절대 이 예산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다. 지난해 <에스비에스>(SBS) ‘모닝와이드’ 협찬 매출액은 96억원에 달하는데, 외주제작 현장은 적자와 저임금 노동에 시달리는 기현상이 계속된다.”(‘모닝와이드’ 외주제작 실태를 조사한 ㄱ씨)

매일 아침을 여는 ‘모닝와이드’에는 방송 제작 생태계의 그림자가 숨어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보도 부문을 뺀 6~7꼭지는 외주제작사의 손을 거쳐 탄생한다. 외주사 대다수는 ‘적자 경영’ 구조다. 항상 자금난에 허덕인다. 물가와 인건비는 오르는데, 외주제작비는 그대로인 탓이 크다. 지난 20여년간 방송사에서 지급하는 꼭지당 외주제작비(250만원)는 한 번도 오르지 않았다.

이는 ‘모닝와이드’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방송사의 ‘이익독식’ 구조가 부른 폐해는 외주제작계 곳곳에서 불거져 나온다. 한국독립피디협회와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가 지난달 유승희(민주당)·추혜선(정의당) 의원실과 함께 만든 ‘방송제작 환경의 문제점과 대안’, 김해영 의원(민주당)과 만든 ‘고 박환성, 김광일 독립피디(PD)의 죽음을 계기로 돌아본 문화산업 불공정 고발’ 자료집에 담겼다. <한겨레>는 3일 이를 바탕으로 외주사와 방송사 간 불공정한 생태계의 사례들을 들여다봤다.

<에스비에스>(SBS) ‘모닝와이드’의 외주제작비는 20년째 그대로다. 에스비에스 누리집 갈무리
<에스비에스>(SBS) ‘모닝와이드’의 외주제작비는 20년째 그대로다. 에스비에스 누리집 갈무리
제작비 삭감, 정부지원금과 협찬금도 ‘꿀꺽’

제작비’와 ‘저작권’. 한 독립피디는 외주사에서 일하는 이들에게 이 두 단어만 언급해도 곧바로 방송사의 횡포를 향한 ‘성토대회’가 열릴 정도라고 했다. 한국독립피디협회와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에 방송사의 비정상적 제작비 책정과 미지급 관행에 관한 제보가 쏟아졌다.

“몇년 전 <교육방송>(EBS) 봄 편성 프로그램 기획안 공모에 참여한 뒤 당선 연락을 받았다. 반년이 지나 교육방송은 외주사에 회당 최소제작비보다 600만원이 낮은 예산을 책정해 계약하자고 통보해왔다. 파일럿 네 편을 우선 편성할 테니 일을 진행하자는 것이었다. 그간 들인 노력을 포기할 수 없고 정규편성을 기대해 이를 받아들였다. 프로그램은 반응이 좋아 정규편성까지 됐지만, 방송사는 회당 최소제작비에서 800만원이 적은 금액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한다고 통보했다. 방송사와 관계를 유지해야 했던 외주사 입장에서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파일럿 네 편, 정규편성 15편을 하며 총 3600만원의 적자를 감수했다.”(ㄴ 프로덕션 사례 재구성)

“<문화방송>(MBC) ‘리얼스토리 눈’의 경쟁력 상승은 외주사의 고혈을 짜내며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부도덕하다.(중략) 본사 담당 국장은 제작물의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 아예 ‘불방’시켰다. 그리고 거의 다 만들어 온 프로그램 제작비를 지급하지 않았다. 공식적으로는 방송 보류였다. 그러면 외주사는 촬영과 편집을 보강했다. 그럼에도 계속 방송 보류가 나면 (외주사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더 열심히 해서 어떻게든 제작을 할 것인가, 아니면 이쯤에서 포기해 더 큰 손실을 만들 것인가. 회사는 그저 보류를 이야기하며 책임을 피했지만 이 잔인한 선택을 해야 하는 외주사는 불방을 스스로 선택하고 적자를 떠안아야 했다.”(지난 9월 독립피디협회가 공개한 <문화방송> 본사 피디의 고백)

ㄴ외주제작사는 <교육방송>(EBS)이 편당 최소 제작비인 3000만원보다 600만원 적은 금액에 계약을 제시했다고 지적했다. ‘방송제작 환경의 문제점과 대안’ 자료
방송사가 우월한 지위를 이용해 정부지원금을 챙기는 문제도 오래된 불공정 관행이다. 이는 지난 7월 고 박환성 피디가 제기해 공론화한 문제이기도 하다. 교육방송을 비롯한 방송사들은 외주사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전파진흥협회 등에서 지원금을 받으면, 이 중 20~40%를 송출료·간접비 명목으로 걷고 있다. 방송사의 협찬금 귀속·유치 요구도 과도하다는 증언이 터져 나온다. <엠비엔>(MBN)에 방송을 내보낸 한 외주제작사는 “파일럿 프로그램 제작 시 협찬을 유치한 (외주사) 쪽이 70%, 방송사 30%로 배분하기로 했다. 하지만 본방송 편성 뒤 협찬금 ‘100% 방송사 귀속’으로 계약 변경을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한국방송>(KBS)의 한 여행 프로그램은 두 달에 한 번 편성되는 외주사에 피디 연출료만 주고, 드론·특수촬영을 요구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모자라는 금액은 협찬을 통해 해결하라고 떠밀었다는 것이다. 5년 전부터는 ‘모닝와이드’를 비롯한 에스비에스 프로그램들의 외주사 협찬을 본사가 관리하도록 바뀌었다. 외주사 관계자들은 에스비에스가 책정한 임의 비율대로 협찬금을 나눠 받아야 해 제작비가 줄었다고 지적한다.

만든 제작사 따로, 득 보는 방송사 따로?

외주사가 이렇게 근근이 프로그램을 꾸려가더라도, 저작권은 방송사 소유물이 된다. 실례로, 외주제작사는 콘텐츠진흥원에서 1억원을 지원받고, 자비로 2000만원을 추가해 2부작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한국방송은 이를 방영한 뒤 제작사가 낸 2000만원의 비용만 지급하고 저작권을 가져갔다. 한국방송 방송콘텐츠진흥재단 공모에 선정된 독립피디의 작품도 마찬가지 사례로 지목됐다. 이 작품 제작에는 정부지원금 5000만원, 자부담 1500만원이 들었다. 하지만 방송사는 저작권료 명목으로 1000만원을 낸 뒤 영화화 권리, 해외 판권 등 모든 저작권을 방송사 소유로 삼았다.

방송사가 ‘이익독식’에 나서는 동안 외주제작 노동 환경은 척박해졌다. 2015년 독립피디협회가 진행한 ‘독립피디 노동인권 긴급 실태 조사’를 보면, 지난 1년간 총수입이 ‘3000만원 이상, 4000만원 미만’인 독립피디가 36.1%, ‘2000만원 이상, 3000만원 미만’인 독립피디가 24.7%였다. 조사에 응한 독립피디 중 64.4%(121명 중 78명)가 ‘(임금)체불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진행하던 프로그램 취소 시 ‘대가를 항상 받았다’는 답변은 전체의 7.7%(응답자 168명 중 13명)에 불과했다. 외주제작 인력이 대부분인 방송작가의 상황도 열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방송작가 유니온 조사 결과, 최근 1년간 총수입의 평균값은 메인작가가 2996만원, 코너 작가가 1952만원, 막내 작가는 1125만원이었다. ‘리얼스토리 눈’ 담당 책임 국장은 외주제작 인력에 “대가리 나쁘다”, “×× 새끼” 등 폭언·성희롱성 발언을 지속해 논란이 이는 등 업무 현장의 인격침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안성주 방송 불공정 관행 청산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제작사특대위) 위원장은 “단지 외주제작 인력의 호주머니가 빈다는 문제가 아니다. 이대로는 방송 환경의 미래가 어둡다. 이 업계는 이미 ‘기피 업종’이 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감에서 외면받은 외주사 문제

각 방송사들은 이 문제를 두고 다음과 같은 입장을 <한겨레>에 밝혀왔다. “‘모닝와이드’ 등 프로그램의 외주사도 이익이 나니 계약을 하는 것이다. 협찬사들도 협찬계약을 방송사와 직접 하는 것을 선호해 제도를 바꾼 것이다. 제작비가 오르지 않은 것은 방송계 전체가 어렵기 때문이다.”(에스비에스) “외주사와는 문체부 표준계약서를 준용하는 계약을 하고 있다.”(한국방송) “외주사 손실이 발생한 사례만 가지고 불공정 거래라고 말하는 것은 단편적 판단이다. 타 프로그램에 비교해 무리한 외주제작비 책정을 하지 않고 있다. 간접비 문제는 해결을 위해 검토 중이다.”(교육방송) “협찬금 배분은 외주제작사와 미리 협의한다. 우리가 갑질로 외주사 프로그램을 공급받는 게 아니다.”(엠비엔) “공식 입장을 밝히기 어렵다.”(문화방송)

대체로 방송사들은 이 문제 해결에 소극적 태도거나 아예 손을 놓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소개할 만한 사례가 있다. 영국 사례다. 영국은 2003년부터 독립제작사협회와 지상파 방송사가 협의를 통해 ‘외주시행규칙’을 만들었다. 독립제작사의 저작권도 인정하기로 했다. 방송사가 1차 방영권을 가지기 위해 외주사에 줘야 하는 표준제작비도 규정했다. 이 법 제정 이후 영국 독립제작 시장이 10년간 해마다 평균 6.6% 성장했다는 분석도 있다.

최영기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제도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방불특위) 위원장은 “2002년 이전에는 영국의 <비비시>(BBC)도 독립제작사에 저작권을 주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법과 제도 변화로 ‘윈윈’ 관계로 바뀌었다. 한국에 맞게 적용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촬영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난 7월 교통사고로 사망한 박환성(왼쪽)·김광일 피디. 이들은 제작비 부족으로 보조 인력 없이 촬영 현장에 갔고, 운전도 직접 했다. 한국독립피디협회
촬영지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지난 7월 교통사고로 사망한 박환성(왼쪽)·김광일 피디. 이들은 제작비 부족으로 보조 인력 없이 촬영 현장에 갔고, 운전도 직접 했다. 한국독립피디협회
영국의 사례를 한국에 적용해보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입법과 제도 개선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지난 7월, 김광일·박환성 피디가 사망한 뒤 정치권 논의는 활발하게 전개되는 듯했지만, 올해 국정감사에서 외주사 문제는 일부 의원들의 질의 외에는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이효성 방송통신위원장이 지난달 31일 외주사 불공정 문제를 두고 “최우선 과제로 해결하겠다”고 짧게 언급했을 뿐이다. 외주제작 불공정 문제는 이대로 ‘방송 정상화’ 논의에서 빠져도 괜찮은 것일까. 송규학 독립피디협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박환성·김광일 피디의 죽음은 ‘방송 정상화’ 논의에서 거론되지 않고 이렇게 잊히는 건가 싶다. 물론 공영방송이 10년 동안 왜곡된 점은 지금 풀어내야 한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외주사의 문제도 ‘방송 정상화’ 작업의 일부로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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