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고영주 이사장 불신임과 이사 해임 건의안을 통과시켰다. 1988년 방문진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시절 정부의 ‘방송장악’에 발맞춰 공영방송 관리·감독 책무를 방기해온 책임을 물은 결과로서, 언론 적폐 청산의 첫걸음으로 풀이된다. 이날로 총파업 60일을 맞은 문화방송 정상화도 급물살을 타게 됐다.
방문진은 2일 연 이사회에서 3시간여 논의 끝에 ‘고 이사장 불신임안’과 ‘고 이사 해임 건의 결의건’을 각각 의결했다. 방통위가 최근 사퇴한 유의선·김원배 이사 후임으로 김경환·이진순 이사를 보궐로 선임한 지 7일 만이다. 이날 이사회는 이사진 9명 가운데 고 이사장이 불참하고 나머지 8명이 참여한 가운데 이완기 이사가 이사장 직무대행으로 회의를 주재했다. 이 이사는 고 이사장 불신임안 통과 뒤 새 이사장으로 호선됐다.
이사 5명(김경환·유기철·이완기·이진순·최강욱)은 불신임과 해임 건의 사유로 △문화방송 경영진의 부도덕·불법경영을 은폐·비호하며 방송의 공적 의무 실현과 경영 관리·감독이라는 방문진 책무 방기 △문화방송 계열사로부터 접대를 받는 등 이사장으로서의 명예 실추 △이념편향적 발언 등을 내세웠다. 이런 사유는 A4 용지 15쪽에 달했다. 옛 여권(자유한국당) 추천 이사 3명(김광동·이인철·권혁철)은 안건 상정·통과에 반대하며 퇴장했다.
이제 고 이사장은 이사장에서 물러나 비상임 이사직만 유지한다. 이사 임기는 내년 8월12일까지다. 고 이사장은 이날 <한겨레>에 “이사직을 사퇴할 생각 없다. 방통위가 해임할 경우 사유를 보고 무효 소송을 낼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방문진이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에 이사직 해임 건의를 함께 의결함에 따라, 추후 방통위 결정이 주목된다. 방문진 사무처는 이날 이사회 의결 내용을 담은 공문을 방통위에 발송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는 이날 “지난 9년 방문진은 공영방송 엠비시의 독립성과 공정방송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데 앞장서왔다. 오늘 방문진의 결정은 방송장악 9년을 단죄하는 출발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방문진은 ‘극우들의 선전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지속적으로 받았다. 방통위가 옛 여권(자유한국당) 추천으로 공안검사 출신인 고 이사장을 비롯해 뉴라이트 성향 대안 교과서 집필진인 김광동 이사 등을 이사진에 임명하면서다. 이들은 방송과 관계없는 탈북단체 지원 예산을 대폭 늘리는가 하면, ‘칼(KAL)기 폭파범' 김현희씨 특별대담을 방송하도록 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기 방문진 이사장은 연달아 불명예 퇴진했다. 2010년 김우룡 당시 이사장은 이명박 청와대의 문화방송 인사 개입을 시사한 발언에 책임을 지고 이사장과 이사 자리에서 사퇴했다. 이 전 대통령의 고려대 동문인 김재우 전 이사장은 학위 논문 표절로 이사장·이사직을 사퇴했다. 최근 국정원 문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방문진 사무실과 김우룡 전 이사장 자택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이날 낸 성명에서 “고 이사장 불신임은 이명박·박근혜 정권 기간 중 역할과 책무를 내팽개치고 극우세력의 놀이터로 전락한 엠비시를 다시 공영방송다운 모습으로 만들기 위한 첫걸음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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