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7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방문진 사무실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조합원들이 김장겸 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조합원 사이로 김광동 방문진 이사가 지나가는 모습.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일부 이사진이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만든 ‘방송 장악’ 문건 실현을 지원한 정황이 기록으로 드러났다.
<한겨레>가 2012년 1월4일부터 12월31일까지 모두 30차례 열린 방문진 이사회 회의록을 입수해 살펴보니, 방문진 일부 이사는 △문화방송 노사 단체협약에서 공정방송 관련 조항 개정 △노조의 상급단체(전국언론노동조합) 탈퇴 유도 등을 지속적으로 언급했다. 이는 모두 최근 공개된 국정원의 ‘문화방송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2010년 3월 작성) 문건에 등장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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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철 사장 단협 개정 ‘공약’ 지켜라” 질책
국정원 문건은 문화방송 단협에 규정된 국장책임제·불신임제 등을 ‘독소조항’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제도를 없애는 일을 ‘당면 과제’로 꼽았다. 김광동·차기환 당시 방문진 이사의 발언을 살펴보면 김재철 전 사장은 2010년 사장 후보자 면접 당시 이런 내용의 단협 개정 등을 ‘공약’했으며, 방문진 일부 이사는 김 사장이 이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꾸준히 관리·지원한 것으로 보인다.
차 이사는 10월11일 열린 7차 임시이사회에서 노조의 인사·편집권 개입을 차단하는 단협과 공정방송협의회(공방협) 규정 개정을 두고 “김재철 사장님 선임하는 과정에서도 그 문제를 짚은 바 있고, 사장님께서도 공약에 그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면서 “3년이 지나도록 전혀 개선이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상당히 유감스럽다”고 김 사장을 질타했다. 같은 날 김 이사도 “노조는 이익단체고 임의단체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고 2개가 있어도 되고 5개가 있어도 되고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런데 공영방송사 사장이 이익단체와 어떻게 인사 문제를 논의하나”라고 김 사장을 질책했다. 이들은 또 “단협과 공방협 규정 개정시기가 곧 오는 걸로 안다”며 개정을 강하게 요구했다.
국정원이 시기별 3단계로 나눠서 계획한 ‘세부 추진방안’ 가운데 ‘3단계(2011년 이후)’에 포함된 ‘언론노조와 결별 유도’도 등장한다. 김광동·차기환 이사는 6·12차 정기이사회, 6차 임시이사회 등에서 노조의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을 문제삼는다. 민주노총 가맹조직인 전국언론노동조합이 ‘노동자 정치세력화’ 등을 강령으로 삼아, 방송 공정성에 의문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국정원이 ‘좌편향 출연자’로 분류한 방송인 김구라씨 출연을 문제 삼는 발언도 나왔다. 10월4일 18차 정기이사회에서 고영주 당시 감사(현 방문진 이사장)는 방성근 당시 문화방송 예능본부장의 하반기 업무보고를 들은 뒤 “김구라씨는 왜 그만두었는데 지금 또 다시 출연시키려고 하는 것이냐”며 “케이블에서 방송하면 모르지만 엠비시 같은 공영방송에서 과거에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인기가 있으니까 쓰겠다는 것은 문제가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2012년엔 ‘170일 파업’(1월30일~7월17일)이라는 문화방송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 일부 이사는 사태의 원인을 노조 탓으로 돌리며 김 사장 등 경영진의 ‘버티기’를 지원하고 사실상 사태 악화를 방치했다. 파업 37일째인 3월7일 열린 5차 정기이사회에서 김·차 이사는 단협에서 불신임제를 빼지 못했다며 김재철 사장을 질책했다. 이 자리에서 김 이사는 “그 직원들은 대부분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정치 활동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이라며 “지금 이 기회가 20~30년간 엠비시의 문제와 적폐, 그리고 잘못된 방향이 누적화되고 만성화된 것을 바로잡는 기회로 삼고 당당하게 임해주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차기환 이사는 2014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추천으로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위원도 맡았다. 사진은 2015년 11월23일 서울 중구 삼일대로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 열린 전원회의에서 당시 여권 추천 위원들이 자신들이 발의한 ‘청와대의 참사대응 관련 업무적정성에 대한 조사를 제외하자는 내용의 수정안’이 부결되자 위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퇴장하는 모습. 회의를 방청하던 세월호 참사 유족들이 손을 뻗어 말리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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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70일 파업 사태 악화 사실상 방치
김재철 사장의 법인카드 사적 유용 논란이 불거진 뒤 방문진 이사회에는 2012년에만 김 사장 해임안이 두 차례 상정됐지만 모두 부결됐다. 김 이사는 11월8일 9차 임시이사회에서 김 사장 해임에 반대하는 이유가 “방송사 구성원 혹은 노조를 중심으로 하는 구성원들의 정치화 내지는 정치 세력화라는 부분들이 본질적인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프로그램 진행자·내용에 개입하는 발언도 꾸준히 등장했다. 주로 뉴라이트 사관에 맞지 않는 부분이 도마에 올랐다. 김 이사는 파업 52일째인 3월21일 열린 6차 정기이사회에서 직접 준비한 자료를 배포하면서, 뉴라이트 계열에서 출간한 역사교과서를 <뉴스 후>가 ‘뉴라이트와 광기’(2007년 6월30일 방송분), ‘한국판 후쇼샤?’(2008년 3월29일 방송분)라고 표현한 점 등을 문제삼았다. 김 이사는 2008년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이 모여 만든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의 집필진 12명 중 한 명이다. 그는 2009년 8기 방문진 이사로 취임한 뒤 두 차례 연임해 현재까지 9년째 방문진 이사를 역임하고 있다.
차 이사는 9월6일 16차 정기 이사회에서
‘16년간의 의혹, 칼(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진실’편(2003년 11월18일 방송분)에 문제가 있다며 제작진의 인적사항과 제작경위, 당시 제작진의 현재 소속 부서 등을 조사해 방문진에 제출하라고 김 사장에게 요구하는 안을 주도했다. 법조인 출신으로 뉴라이트 계열 활동을 해온 차 이사는, 김 이사와 함께 2009년 방문진 이사로 취임해 6년 동안 활동하다가 2015년 <한국방송>(KBS) 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고영주 당시 감사는 10월11일 7차 임시이사회에서 “170일 동안 김 사장님이 꿋꿋이 지켜주셔서 종전에 노영방송의 특징인 엠비시 좌편향성이 시정됐다고 생각을 했는데”, “음악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사람이 진행 중에 우리나라가 해방 이후 이승만이 사리사욕으로 단독 정부를 수립하는 바람에 분단됐다, 통일이 안됐다, 이런 멘트를 했다고 들었다”면서 “이런 사람이 계속 방송을 맡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공안 검사 출신인 고 감사는 2015년 8월부터 방문진 이사장을 맡고 있다.
김광동·차기환 이사, 고영주 이사장은 1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국정원 문건과의 연계 의혹을 모두 부인했다. 김 이사는 “국정원 문건이 작성된 2010년 3월에 나는 국정원 직원이 엠비시에 아이오(IO·국내정보 담당관)로 있다는 사실조차도 몰랐다. 아이오의 존재는 몇년 지난 뒤에 어쩌다 알게 됐다”며 “국정원은 아마도 사회각계 의견을 취합해서 문건을 만들었을 것이며, 문건에 나오는 엠비시의 문제점과 개선 방안은 특별할 게 없다”고 말했다. 차 이사도 “나는 방문진 이사로 선임된 2009년부터 단협 개정 필요성 등에 대해 꾸준히 문제제기해왔다”면서 “국정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고영주 이사장도 “당시 김구라씨가 과거 인터넷 방송 때 한 막말 논란으로 자진 방송 중단을 선언했기에 질문했을 뿐 국정원 문건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