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화(오른쪽) <문화방송>(MBC) 기획본부장이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방송문화진흥회에서 열린 '제17차 정기이사회'에 참석하려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 조합원들이 공영방송 정상화를 촉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파업 6주째를 맞은 <문화방송>(MBC)의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또다시 공영방송 정상화에 역행하는 결정을 내렸다.
방문진은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연 정기이사회에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검사·감독권을 수용할 수 없으며, 통상적인 범위 내의 자료 요청에만 협조한다”고 의결했다. 방통위가 지난달 21일 방문진 검사·감독권을 발휘해 문화방송 관리·감독 관련 자료 등을 제출하라고 한 요구에 불응한 것이다. 소수 이사(옛 야권 추천) 3명은 이에 항의하며 회의 도중 퇴장했고, 고영주 이사장을 포함한 다수 이사(옛 여권 추천) 5명만 안건을 표결해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다수 이사들은 “통상적인 범위 내의 자료요청” 판단은 고영주 이사장과 방문진 사무처에 맡기기로 했다. 이에 따라 업무추진비와 법인카드·국외출장비 사용 내역, 이사회 회의 속기록 등 민감한 내용이 담긴 자료는 모두 제출 대상에서 빠질 것으로 보인다. 이날 회의 중에 김광동 이사(옛 여권 추천)가 “업무추진비와 법인카드 사용 내용도 통상적인 범위 내의 자료 요청에 포함되느냐”고 질의하자, 임무혁 방문진 사무처장은 “그렇지 않다”라고 답했다.
다수 이사들은 2000년대 초반 방송위원회(방통위 전신)가 방문진을 감사하려 했을 때 방문진에서 4차례 법률 자문을 구한 결과 모두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나온 사실을 근거로, 방통위 관리·감독권 발휘가 방송 독립성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소수 이사들은 방송위에서 받은 법률 자문과 법제처 유권해석 결과는 방통위의 관리·감독권을 인정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들은 또 “법률 문제는 방문진 이사회에서 의결할 사안이 아니며, 다수 이사들은 형식논리 대신 문화방송이 이 상태에 이른 책임을 먼저 통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회의 중에 퇴장했다.
방통위는 지난달 29일 방문진 사무처가 “이사회 논의가 필요하다”고 응답해 자료제출 기한을 13일로 한 차례 연장해줬으며, 방문진이 자료제출에 응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 처분을 내릴 계획이다. 유기철 이사(옛 야권 추천)는 이사회가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방문진 다수 이사진 결의가 지닌 함의는, 이들이 방통위를 헷갈리게 해서 시간을 끌고 파업 동력을 약화시키면서 경영진을 보호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1일 오후 방송문화진흥회가 위치한 서울 여의도 율촌빌딩 앞에서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가 ‘단협 체결과 공영방송 관리 감독 및 공정방송 복원 촉구 결의대회’를 열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편, 이날 오후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열린 <한국방송>(KBS)이사회도 파행을 겪었다. 이날 이사회에는 사퇴한 김경민 이사를 제외한 다수 이사(옛 여권 추천) 6명, 소수 이사(옛 야권 추천) 4명이 참석했다. 고대영 한국방송 사장은 이사회에 출석해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이 “검찰·경찰 수사에서 이미 무혐의 판정을 받은 사건”이라며 “근거 없는 것을 두고 (노조 등이) 과장·왜곡한 사안을 회사가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일축했다. 또 국가정보원의 한국방송 개입 논란을 두고도 “연예인 출연을 막은 적 없고, 회사 차원에서 보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수 이사들은 이날 ‘이사진에 대한 노조의 불법행동 시정 및 대책 마련 촉구’ 안건을 상정·의결하기도 했다.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노조)가 이사진에게 개별적으로 사퇴를 요구하며 마찰을 빚은 부분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회사가 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이인호 이사장은 “같은 이사가 당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대책을 촉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소수 이사들은 이에 반발해 “본질을 보라”며 퇴장했다.
다수 이사들은 또 ‘법인카드 결제 내역 유출에 대한 감사 요청 건’도 의결됐다. 지난달 말 노조는 강규형 이사(옛 여권 추천 몫)가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다수 이사진은 “업무 목적으로 썼다”는 강 이사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며 “법인카드 사용 내역 유출은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김효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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