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겸 사장 퇴진 등을 요구하며 파업 중인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MBC)본부 조합원들이 7일 오후 방송문화진흥회 정기이사회가 열린 서울 여의도 방문진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동안 김광동 이사가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의 다수 이사인 옛 여권 추천 이사진 등이 <문화방송>(MBC) 경영평가보고서 작성을 맡은 외부 평가위원에게 “회사 입장대로 해달라”며 여러 차례 보고서 수정·삭제를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열’에 가까운 보고서 수정·삭제 압박을 한 것은 김장겸 사장 등 전·현직 경영진의 과오를 숨기려는 의도라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서울 여의도 방문진 사무실에서 열린 이사회와 방문진 복수 관계자의 말 등을 종합하면, 방문진 사무처는 문화방송의 ‘2016 경영평가보고서’를 작성한 평가위원에게 지난 5월 ‘회사 쪽의 입장’이라며 문화방송 쪽에 불리한 부분을 수정·삭제해달라고 요구했다. 경영평가보고서는 방문진이 위촉한 외부 평가위원이 한 해 문화방송 경영을 평가한 뒤 내는 보고서다. 사무처가 전달한 요구는, 특정 문구를 수정·삭제하는 대신 대안으로 넣을 문장까지 명시하는 등 매우 구체적이었다. 사무처는 방문진 옛 여권 추천 이사와 회사의 요구대로 수정된 보고서를 이 평가위원에게 보여주며 “이렇게 하면 되겠냐”고 묻기도 했다. 6월 말부터는 방문진 옛 여권 추천 이사들이 직접 나서, 수정 의견을 평가위원들에게 전달했다. 김광동 이사는 문화방송이 최순실·박근혜 게이트 보도에 소홀했다는 보고서의 평가를 두고 “부분적 평가에 머물 우려가 있다”며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인철 이사는 문화방송의 소송 현황이 공개된 부분을 빼자고 했다. 김원배·김광동 이사 등은 7월 말 한 평가위원을 직접 만나 보고서 내용 수정·삭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에 평가위원과 동석한 유기철 이사는 <한겨레>에 “다수 이사들이 수정안을 가져와 고칠 것을 평가위원에게 지속적으로 요구했다”고 말했다. 옛 야권 추천 이완기 이사도 이날 이사회에서 “(김광동 이사 등이) 몇 차례에 걸쳐 평가위원을 방문까지 해 (보고서) 수정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에 김광동 이사는 지난 7월 평가위원을 만난 사실은 시인하면서도 “의견을 개진해서 (평가위원에게) 재검토할 기회를 주자는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임무혁 방문진 사무처장은 “방문진은 회사 쪽 입장을 전달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방문진 다수 이사가 수정·삭제를 요구한 대목은 보도·시사 부문에 집중돼있다. 이 때문에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는 “지난해 보도본부장을 맡았던 김 사장을 지키려고 경영평가보고서 수정을 압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수천만원을 들인 이 보고서는 지난 7일 채택이 무산돼 사실상 폐기됐다. 보고서가 수정되지 않자, 다수 이사들이 의결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방문진이 방문진법에 명시된 경영평가보고서 의결·공포 규정을 어겼다는 비판이 나온다. 한상혁 변호사는 “보고서를 폐기하는 건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방문진 사무처는 2015년 8월 지금의 방문진 이사진이 꾸려진 뒤 작성된 회의록과 사장 면접 내용, 문화방송의 방문진 보고내용 등을 13일 고용노동부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김장겸 사장 등 전·현직 경영진을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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