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작성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배우 문성근씨가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해 상황을 조사받으러 출석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시기 국가정보원이 <에스비에스>(SBS)에서 ‘블랙리스트’에 오른 인물을 배제하려 했다는 구체적 증언이 나왔다.
전국언론노조 에스비에스본부(노조)는 19일 성명을 통해 “에스비에스에도 이른바 ‘블랙리스트 연예인’에 대한 국정원의 부당한 압력이 가해졌던 사실이 드러났다”며 확보한 증언들을 공개했다. 노조는 “허모 드라마국장은 드라마 <제중원> 연출을 맡은 홍모 피디에게 권해효씨를 무조건 드라마에서 빼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밝혀졌다”고 했다. 이는 이날 <한겨레>가 보도한 국정원의 ‘블랙리스트’ 인물 출연 배제 지시와 일치한다. 보도를 보면 2010년 1월 국정원 ‘좌파 연예인 대응 티에프(TF)’는 “허○○ 드라마국장과 김○○ 총괄기획 시피를 통해 드라마 <제중원> 배역 축소와 새로운 드라마 편성시 사전 배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관련기사 ‘[단독] 권해효·김민선이 SBS에서 사라진 이유’) 노조는 담당 피디의 거부로 국정원의 권씨 배제 시도는 불발됐다고 밝혔다. 홍 피디는 “타당한 이유 없이 무조건 (권씨를)뺄 순 없다며 버텼다”고 당시 상황을 노조에 전했다.
노조는 이명박 정부 때 국정원 ‘블랙리스트’에 오른 배우 문성근씨와 방송인 김제동씨를 상대로 한 출연 배제 압력도 있었다고 밝혔다. 노조는 “문씨는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 경력이 있었고, 2008년 <신의 길 인간의 길> 등 여러 차례 다큐 내레이션을 맡았다. 하지만 2009년 이후 다큐 내레이션에서 완전히 배제됐다”고 강조했다. 또 노조는 “내레이터로 문씨를 섭외하고도 윗선의 지시로 교체해야 했다”는 한 피디의 증언을 소개했다. 김제동씨도 마찬가지였다. 노조는 김씨가 <그것이 알고 싶다> 20주년 특집방송의 진행자로 섭외됐지만, 결국 상부의 압박으로 섭외를 취소해야 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노조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대주주의 개입으로 시사프로그램의 제작 자율성도 침해됐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대주주의 압력으로 2015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조석래 효성 회장 부분이 대부분 삭제된 것으로 확인됐다”며 “이때는 박정훈 에스비에스 사장이 제작의 총책임자인 제작본부장으로, 이웅모 현 에스비에스미디어홀딩스 사장이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기”라고 밝혔다. 노조는 “당시 보도·제작 책임자들에게 응당한 책임을 물어야만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면서 경영진의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노조는 지난 14일 성명에서 방송사유화에 관여했다는 점을 들어 전·현직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었다. 같은 날 박 사장은 “그동안 과거 정권의 일부 연예인에 대한 부당한 퇴출요구를 단호히 거부해왔고, <그것이 알고 싶다>등 권력과 비리를 감시하는 프로그램들을 총괄하면서도 부당한 압력에 단 한 번도 굴복하지 않았다”며 노사가 모여 대화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박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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