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행 MBC 피디 인터뷰
2010년 김재철 사장 퇴진 투쟁하다 해고
2014년 복귀 뒤 비제작부서로 2차례 ‘유배’
“정치권에 줄 댄 사장 오면 언제든 다시 싸워야”
8월30일 오전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 1층 로비에서 총파업 찬반 투표 가결 뒤 첫 집회가 열렸다. 이날 제작부서 바깥으로 밀려난 기자·피디들도 업무 중단 선언을 했다. 구로동 뉴미디어포맷센터로 ‘유배’됐던 이근행 피디가 발언을 하는 모습.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제공
“감정이 메말랐다고 생각했습니다. 예전에는 눈물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수년 새 많이 달라졌습니다.”
원고를 쓸 때까지만 해도 그랬다. 감정이 메마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발언할 때 읽으려고 원고를 출력해왔는데도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결국 눈물을 보였다. 눈물을 흘리면서 “눈물샘이 말랐다”고 말했다. 곳곳에서 함께 눈물을 흘렸다. 아픔과 공감, 희망이 고루 담긴 눈물이었다. 6년여 동안 제작부서 바깥 ‘유배지’로 쫓겨나 있던 이근행 <문화방송>(MBC) 피디가 마이크를 쥔 8분여 동안 일어난 일이다. 8월30일 오전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 1층 로비는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됐다. 이 자리는 전날인 8월29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노조)의 총파업 찬반 투표가 투표 참여율 95.68%, 찬성률 93.2%라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며 마감된 뒤 열린 첫 집회였다. 또 경기도, 인천, 서울 구로동·여의도동 등 아예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 바깥으로 ‘유배’된 기자·피디 30여명이 업무 중단을 선언한 날이기도 하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김장겸 문화방송 사장 등은 이번 총파업이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방송 장악’ 기도에서 비롯했다고 주장한다. 공정방송을 요구하는 노조 소속 기자·피디 등을 제작부서 바깥으로 밀어낸 ‘블랙리스트’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문화방송 구성원들은 모두 자신들이 ‘살아있는 증거’라고 반박한다. 해고자 6명을 포함해, 부당 징계·전보를 겪은 이들이 200여명이 넘기 때문이다.
1991년 문화방송에 입사해 2009년 3월부터 2011년 2월까지 노조위원장을 지낸 이근행 피디도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해고와 부당전보를 겪었다. 지난 정부가 행한 ‘방송 장악’의 산 증인인 셈이다. 그는 8월30일 집회에서 “지난 9년간 자신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고 인간적 수모를 당하고 속 깊은 상처를 입은 기백 명의 동지들에게 피붙이 이상의 깊은 연민과 애정을 느낀다”, “이익과 회유와 암담한 현실에 끝내 굴복하지 않고, 오롯이 스스로 자존을 지켜낸 인간 각자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사람됨과 자존감을 위한 9년간의 싸움, 그리고 4일 총파업에 돌입하는 그의 각오를 지난 1일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에서 들었다. 가급적 육성 그대로 일부만 다듬어 옮긴다. 그는 이번 총파업이 2010년 39일 파업, 2012년 170일 파업에 이은 “3회전 싸움”이라고 했다. 아래는 일문일답.
-그날(8월30일) 왜 그렇게 우셨어요.
“감정 조절하려고 많이 노력했는데. 또 노조위원장 끝나고 6년이란 시간이 지났고 이런 특수한 상황을 견뎌내는, 견뎌내는 것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더욱 ‘감정에 흔들리지 말자’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왔고, 조합원들에게 냉랭하게 쿨하게 얘기해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원고를) 들고 앞에 나갔지만….”
-막상 조합원들 앞에 서니까 기분이 예상과 다르셨나 봐요.
“노조위원장 임기 마치고 6년 반 만에 조합원 앞에 처음 섰어요. 앞에 나가기 전부터 이상하게 긴장이 되더라고요. 긴장이라는 게 (손을 가슴에 대고) 이 안에서부터 느껴지더라고요. 목도 마르고 불안하고. 그래서 후배에게 물 좀 가져다 달라고 해서 물을 마셨어요. 마시고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고 (사회자한테) 소개를 받고 보니 조합원 수백 명이 앞에 주르륵 앉아 있는데, 몸이 먼저 반응을 했는지 말이 잘 안 나오더라고. 탁 막혀서.
그걸 수습하고 차분하게 얘기를 했어야 하는 거 같기도 해요 나중에 생각하면. (웃음) 그런데 당시에는 수습할 여력이 안 되더라고. 그래서 (준비한 원고를) 읽기 시작하는데. ‘여러분’이라는 첫 말부터 입이 안 떨어졌어요. 시종일관 감정의 통제에 실패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감정에 충실한 건지도 모르겠어요. 감정의 떨림이었겠지. 애시당초에는 (눈물을) 전혀 의도하지 않았고 후배들에게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행운이잖아요. 이런 (싸울 수 있는) 상황이 온 것이. 아직 싸움이 남아 있지만 나이브해질 수도 있고 하니까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것들. 우리 안에서 없애야 할 적폐들. 그날 그 자리가 큰 판의 변화에 따른 수동적 자리가 아니라, 앞으로 많은 숙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 엄숙한 출발점인 것 같아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려고 했던 건데, 여러 사람의 상처를 건드리고 감상에 젖게 한 게 있죠.”
-사실 저는 그때 발언 들으면서, 전체 메시지는 엄중한데, 한편으로 ‘이제 울어도 괜찮아’라고 이야기해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 것도 있을 수 있어요. 나도 이제 다시 (앞에) 서면 눈물 안 나올 것 같아요. 누군가는, 모든 사람은 언젠가 울어야 해. 울어야 맺힌 게 풀리듯이, 조합원들도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면 자기 내부에서 힘들게 억누르고 있었던 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그래서 새로운 마음으로 이 상황을 맞이하고 움직여 나가는 데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을 수 있겠죠. 계속 찜찜하게 눌려 있는 것보단 낫잖아요. 얼마나 시원하게 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감정적 정리 효과도 있을 수 있겠다 싶어요. ‘아 저런 선배도 저러는데’ 이런 측면도 있었다면 내가 잘 해줬다고 하는 생각도 들어요. (웃음)”
8월30일 오전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 1층 로비에서 총파업 찬반 투표 가결 뒤 첫 집회가 열렸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제공
-2009년 2월 노조위원장에 당선됐을 때도 파업 상태 아니었나요?
“맞아요. 전국언론노동조합은 2008년 12월과 2009년 2월에 국회의 미디어법(신문법·방송법 등 미디어 관련 법안을 묶어 부르는 말로, 대기업과 신문사가 지상파 방송, 종합편성채널·보도전문채널 등을 겸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핵심) 처리를 반대하면서 파업을 했어요. 통상 노조집행부 교체가 2월 말에 진행되는데 2009년에는 미디어법 파업이 진행 중이라 이·취임식을 2차 파업 중단일인 3월3일에 했어요. 전장에서 한 셈이죠”
-이명박 정부 2년차에 노조위원장이 됐는데, 이미 1년차에 <와이티엔>, <한국방송> 등에서 정부의 ‘방송 장악’이 진행됐었죠.
“2008년 3월에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인 최시중씨가 방송통신위원장이 되고 같은 해 정연주 한국방송 사장을 불법적으로 몰아냈고, <와이티엔>에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냈죠.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가 잦아들 때쯤 방송 장악이 더 노골적으로 진행됐어요.
2009년 제가 취임하자마자 3~4월에 검찰이 <피디수첩>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 편을 만든 피디, 작가 등을 체포하고 사무실을 압수수색을 수차례 시도했어요. 꽃샘추위가 가시기도 전이었는데 조합원들이 밤낮으로 모여서 막으려고 애썼죠. 그해 7월에는 저희 조합원들이 국회 진입 투쟁까지 했음에도 결국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을 불법 날치기로 처리했고요. 8월에는 최시중 방통위가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이사를 ‘뉴라이트’ 인사로 물갈이해요. 김우룡 이사장, 김광동·차기환·최홍재 이사 등이 임명됐죠. 이들은 엄기영 사장의 임기가 끝나지 않았는데 사퇴 압력을 행사해요.”
-엄기영 사장 사퇴 8일 만에 김재철씨가 새 사장으로 선임됐어요.
“엄 사장이 쫓겨나기 전부터 김재철씨가 사장 내정자라는 소문이 파다했어요. 김재철 사장이 정치부 기자 시절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을 맺고 오래 친분을 쌓아온 ‘친엠비(MB) 인사’라는 게 알려져 있었으니까요. 김재철 사장이 선임되고 나서 출근 저지 투쟁도 했는데, 김재철 사장은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 앞에 천막을 치고 거기에 국장들 불러서 업무 보고받는다는 둥 쇼를 하고 그랬죠. ‘내가 방송독립 못 지키면 한강에 던지세요’라고 발언했던 것도 그때였어요. ‘엠비시(MBC)를 30년 다닌 선배를 이렇게 해도 되느냐. 나도 조합원이었다. 나는 야당도 디제이(DJ)도 존경한다’ 등등 장광설이 많은 사람이었죠.
출근 저지 투쟁을 장기간 이어갈 줄 알았는데, 김재철 사장이 ‘자기를 믿어 달라’면서 방문진에서 뽑아놓은 이사들을 해임하겠다고 약속했어요. 그때 노조의 전력을 다 소비하면서까지 싸우는 건 전략적으로 옳지 않다고 판단해서, 두 이사를 해임하는 조건으로 출근 저지 투쟁을 접었어요. 김재철 사장이 사장실에 들어갈 수 있었죠. 당시에 제가 비판을 감수하고 이사 두 사람을 해임하는 것도 성과니까 현장에서 공정보도 싸움 계속하자고 설득했는데, 김재철 사장은 한 달 정도 뒤에 해임하기로 했던 황희만 이사를 부사장으로 전격 승진 임명했어요.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이 <신동아> 인터뷰에서 김재철 사장을 두고 “‘큰집’(청와대) 불려가 조인트 맞고 엠비시 내 좌파 정리했다”는 발언을 한 사실도 알려졌기 때문에 더는 용인할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그동안 신중하게 유예했던 총파업 투쟁 돌입을 4월5일에 선언했습니다.”
지난 2010년 3월2일 김재철 <문화방송> 사장(앞줄 왼쪽)이 첫 출근하는 날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본관 들머리에서 이근행 문화방송 노조위원장(맨 오른쪽)과 입씨름을 벌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10년 4월5일부터 5월13일까지 39일 파업을 했죠.
“그때 상황이 아주 안 좋았지만 파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3월26일에 천안함 폭침 사건이 일어났거든요. 아주 큰 사건이잖아요. 그런 때 엠비시가 전면 파업을 하는 게 과연 실효성 있는 건지 고민을 아주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악의 조건이지만 총파업을 하기로 했어요. 해야 했으니까요.”
-열흘 넘게 단식하다 병원에 입원했었죠.
“그때 노조 집행부는 단식도 하고 삭발도 하고…. 저는 분신만 빼고 다 해보자고 했어요. 그때 느낀 게, 노동자들이 해도 해도 안 되면 몸을 쓰는 거구나. 내 목숨을 걸고 싸움을 더 끌고 가고 여론에 호소하고. 총파업을 해도 쳐다도 안 보는데, 한 생명이 위기에 몰리면 그래도 관심 가져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단식을 12일 했어요.
단식을 끝내고 나서 파업 중단 여부를 두고 회의를 많이 했어요. 전임 노조 집행부들 얘기도 듣고. 여러 의견을 취합해서 일단 파업을 중단해야겠다, 조합이 최소한의 역량을 남겨야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다, 모든 역량을 다 써버리면 다음 싸움도 불가능해진다, 그렇게 판단을 하고 파업 중단 선언을 했죠.
그런데 상황을 수용하지 못하는 조합원들의 반대가 있어서 총회를 나흘 동안 했어요. 조합에 대한 비판이 엄청났죠. 성과 없이 싸움을 이렇게 멈춰야 하느냐는 쪽과, 집행부 판단이 맞다는 쪽이 나뉘었어요. 이건 다수결로 정할 수 없다. 가능한 이야기를 많이 하자고 판단해서 계속 의견을 나눴어요. 상처는 최소화해야 한다고 봤고, 결국 나흘 만에 파업을 종료하고 현장에 복귀했죠. 그렇게 파업을 마치고 조합은 김재철에 의해 일방적으로 단체협약도 해지당한 상태에서 전 노조위원장 임기를 끝냈죠.”
-파업이 끝나자마자 김재철 사장은 파업 주도를 이유로 해고했는데 해고 무효 소송을 내지 않으셨어요.
“소송을 통해 돌아올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불법적인 상황에 저항해서 싸우는 일이 법의 보호를 다 받을 수도 없고, 당시 사법부에 기대할 수도 없었어요. 어차피 국민의 힘이 작동하고, 노동조합의 힘이 작동할 때 돌아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당시 변호사도 굳이 소송을 권하지도 않았어요”
-다음 9기 노조 집행부에서도 총파업을 합니다.
“사실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파업은 생사를 건 파업이라 쉽게 끝나지 않고 조직의 출혈이 심해서 쉽게 선택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2010년 39일 파업이 끝나고 1년7개월여 만에 다시 총파업을 한 건 정말 대단한 겁니다. 저는 2012년 총파업을 시작할 때 우리 노조가 정말 저력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39일 파업은 물러선 파업이었죠. 하지만 2012년 파업은 시작할 때 죽기 아니면 살기였을 거라고 봐요. 당시 저는 <뉴스타파>에서 일하고 있어서 당시 집행부의 자세한 판단은 알 수 없지만,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었겠죠.”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요.
“저는 2012년 170일 파업 시작할 때도 그렇고, 마침내 170일째를 맞았을 때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2010년 39일 파업을 우리가 죽을 때까지 했으면 170일 파업은 없었을 텐데. 미안한 마음이 있었어요. 170일, 1년의 절반을 많은 사람이 경제적·심리적 고통을 느껴야 했잖아요. 그게 나한테 왔던 건 아니었을까. 어차피 이명박 정부 때의 싸움이라는 게 이판사판인데 2010년에 나름 정세 판단을 하고 물러섰다고 생각했지만, 첫 번째를 그렇게 물러나서 두 번째 싸움은 물러날 수 없는 싸움이 된 게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있었어요. 항상 있어요. 우리가 170일 파업했으면 걔네는 없었다, 좋게 생각하면 우리가 에너지를 다 소진하지 않고 조직 역량을 보호하면서 불씨를 남겨둔 측면이 있고. 이성적으로는 2010년 파업을 멈추는 게 맞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우리가 죽었으면 170일 파업은 없었다’는 부채의식은 있어요. 그런데 2012년 170일 파업도 결국 멈춰야 했죠. 그런 싸움은 앞으로 공영방송 역사에서 전무후무할 거라고 봐요.”
2012년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는 다시 방송 공정성을 무너뜨린 김재철 사장 퇴진을 위한 파업에 돌입했다. 조합원들이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본사 앞에서 사쪽이 행한 직원 노트북 사찰과 회사 내 고화질 폐회로티브이(CCTV) 설치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가면을 쓴 채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당시 김재철 사장은 시용기자를 파업 대체인력으로 고용했어요. 경영진 행동도 전무후무한 선택 아닌가요.
“2010년 파업 때도 지금처럼 부장들 보직 사퇴하고 전 부문 조합원들이 파업에 참여해서 프로그램 축소·결방이 있었어요. 2012년 파업 때도 비슷했는데, 김재철 사장이 2010년에 엠비시 역량이 다 조합으로 빨려가는 걸 봤기 때문에 밖에서 인력을 충원한 거죠. 그런데 ‘파업 대체인력’이란 의미보다도, 그들의 용어대로 엠비시 디엔에이(DNA)를 바꾸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어요. 조합원으로 표현되는 양심적인 언론인 집단, 언론노동자를 도태 내지는 축출 시키고 자기들 뜻에 충실한, 권력이나 경영진이 컨트롤할 수 있는 집단으로 엠비시를 바꾸겠다는 판단이요. 파업 뒤에도 단계적으로 인력을 충원했고 그렇게 축적된 인력만 200여명이죠. 물론 정권 교체 뒤에 이들 가운데 30%가량이 노조에 가입했어요. 경영진의 기대와 달리.”
-김재철 사장이 물러난 뒤에도 안광한·김장겸 사장 때 조합원인 기자·피디들을 현업에서 배제하는 일이 계속 진행됐어요. 최근 노조가 공개한 지난 2월 방문진의 사장 선임 면접 속기록을 보면 무척 노골적이죠.
“추상적인 의미에서, 악한 사람은 끊임없이 악해지는 것 같아요. 악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부끄러움도 없어지고. 저는 김재철, 안광한 같은 경영진은 피에 취한 살인마처럼 됐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근본에는 그 사람들의 타고난 문제도 있겠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라고 하는 역사적으로 아주 몰상식하고 무지하고 포악한 권력이 있었다고 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사회 어느 부문이든 상식적인 선에서 최소한 지켜야 하는 마지노선을 무너뜨렸잖아요. 그런 게 개인을 더 부추긴 거죠. 전쟁 상태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처럼 엠비시는 살육의 현장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경영진들은 권력에 의해 완장을 찬 인간이고요. 권력이 그렇게 만든 거라고 봐요. 책임을 모두 떠넘길 순 없겠지만, 부도덕하고 추악한 권력이 그런 인간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강화했다고 보는 거죠. 시용기자를 뽑고,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유능한 기자·피디를 제작부서 밖으로 몰아내고. 이 회사에 애정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조직을 망가뜨리는 일을 그렇게 수시로 집요하게 했겠어요? 안 하죠.”
-170일 파업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등 정치권에서 문화방송 사태에 문제의식을 갖고 김재철 사장을 교체하겠다고 약속했었지만 지켜지지 않았어요.
“그렇죠. 2012년 12월 대선이 끝나고 성탄절 전날인 24일에 회사 인사부장한테 전화를 받았어요. 인사부장이 제 입사 동기였는데 존댓말을 쓰더군요. 오늘 이사회에서 저를 특별채용하는 안건이 통과됐다고요. 전화를 끊고 노조에 혹시 나 모르게 회사랑 얘기하고 있었냐고 물어봤더니 아니라고 하더군요. 노조는 아예 모르고 있었어요.
복직이라는 게 엄청 중요한 일이잖아요. 해고 행위에 대한 평가가 전제되어야 하는 거고, 해고 원인이 무효가 되든 사과를 하든. 단순한 개인의 처우 문제가 아닌데 김재철 사장은 ‘특별채용’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방식으로 2013년 1월1일자 인사 발령을 냈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대통합을 외치며 당선됐는데, 김재철 사장도 잔머리를 굴려서 노조를 껴안는 듯한 액션을 취한 것 같아요. 하지만 특별채용은 해직 기간 임금을 하나도 못 받는 건 물론이고 근속연수, 호봉 이런 걸 다 날리는 굴욕적인 방식이었어요.”
-8월30일 발언할 때 당시 상황을 “불명예와 치욕의 귀환이었지만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한 번만 더 싸우자. 저들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서라도 이길 수 있다면 가자”라고 회고하셨어요.
“당시 해고자가 저랑 정대균 노조 수석부위원장 2명에다가, 2012년 파업을 거치면서 정영하 위원장, 이용마 기자(당시 노조 홍보국장) 등 6명이 더 생겨서 8명이나 발생했잖아요. 정영하 위원장이랑 통화하는데 내가 ‘성탄 특사도 아니고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했더니 정 위원장이 그냥 오라고 하더라고요. 너무 힘드니까 한 사람이라도 돌아오라고. 내 복직 조건을 따져서 싸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 노조에서 한 사람이라도 빨리 돌아와서 옆에 있는 게 힘이 된다고 하니까, 오래 생각하지 않았죠.
해고자 지원을 위한 조합의 부담을 줄이자 생각도 했어요. 회사와 대화 가능한 상황도 아니었으니 돌아가는 행위에만 의미를 부여하자. 수치와 굴욕 이런 거 생각하지 말자. ‘산다는 게 언제는 굴욕이 아니었던 적이 있었나’, 언젠가부터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됐거든요. 큰 방향에서 대의를 위해서 행동할 수 있다면 괜찮다.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였어요. 다만 <뉴스타파>가 너무 초창기여서 1년만 더 하고 돌아온다고 얘기했더니 전국언론노동조합에 1년 파견 가는 형식으로 받아들여 주더라고요. 웃긴 게, 원래 한국피디연합회장 이런 걸 맡으면 관례로 파견을 보내주곤 했는데 김재철 사장 때는 그런 배려를 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저한텐 1년 파견을 허용했어요. 특별채용을 하긴 했는데 막상 제가 회사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싫었던 거죠. (웃음) ‘보여주기용’이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었죠.”
-그래도 2014년 3월에는 교양국 피디로 복귀하셨어요.
“원직 복직은 시켰죠. 딱 7개월 피디로 더 일했네요. 주말에 방송하는 <휴먼다큐 사람이 좋다> 프로그램을 맡았었어요. 복귀하고 나서 국장한테 인사하러 갔더니 ‘나는 네 기사나 에스엔에스(SNS) 다 보고 있어’ 그렇게 말하더군요. 김현종이요. 행동이나 말을 조심하라는 의미로 느껴졌어요.
같은 부서에서 <엠비시 스페셜>도 만드는데 산속에서 생태적 삶을 이어가는 젊은 부부 등 ‘지속가능한 삶’을 선택한 이들을 담겠다고 아이템을 발제했더니 허용을 안 해줬어요. 이념적 색채가 강하니 반사회적이니 하면서요. 몇 번을 설득했어요. 나도 방송 프로그램만 20년 한 사람인데 이 아이템에 이념이니 좌우니 하는 게 들어갈 데가 어딨느냐고 얘기했죠. <남극의 눈물>을 만든 김진만 피디가 부장이었는데 그도 같이 국장을 설득했어요. 그래도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러던 중에 ‘유배지’로 방출됐어요. 2014년 10월에 교양국이 해체되는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인사가 났는데 그때 디엠비(DMB) 송출실로 발령이 났죠. 기술적인 일을 하는 엠디(MD) 업무를 2년반 했어요. 당시에 김재영·조능희 피디, 강재형 아나운서 등도 모두 송출실로 발령이 났어요. 한학수·이우환 피디는 신사업개발센터로, 김환균 피디는 경인지사로 쫓겨났어요. ‘블랙리스트’가 작동한 거죠.”
-지난 3월 김장겸 사장 취임 뒤 첫 인사에서는 아예 상암동 밖 구로동 뉴미디어포맷개발센터로 발령이 났죠.
“인사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인용되던 날인 3월10일 오전에 났습니다. 김장겸 사장은 탄핵이 기각될 거로 굳게 믿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어요.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티 나게 또 처박는 일을 했을까. 기각될 거라고 생각하고 권력을 향해 사인을 보낸 거죠. 조합원들 죽을 때까지 패겠다. 외곽에서도 더 외곽으로 뽑아냈어요.”
-8월30일에 ‘유배지 폐쇄 선언’을 하면서 이번 싸움은 “주어진 판”이라서 “이기고도 패배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처절”하고 “철저”하게 해야 한다, “타협하면 지는” 거, “우리 안의 적폐를 청산하지 못하면 지는” 거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경영진이 악질이기도 했지만, 무능한 인물들이 엠비시를 다 무너뜨렸다고 봐요. 저는 7~8년 동안 집에서 엠비시를 안 보고 케이블 방송을 봤는데 그게 정말 나쁘다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시청자들이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못 누리는 거요. 내가 이십여년 몸담았던, 사회생활의 전부였던 조직이 사회적으로 중요한 상황에서 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는 상황, 오히려 해악을 끼치는 상황이 사실은 더 힘들었어요.
그래서 김장겸 사장을 몰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안의 문제를 다 정리해내고 정말 경쟁력 있는 콘텐츠, 신뢰받는 콘텐츠를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워낙에 망가뜨려 놓은 상태라 과연 가능할 것인가 고민도 되고. 경영진을 몰아내는 것 이상으로, 엠비시 재건을 위해 구성원들의 피땀 어린 노력을 하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봐요. 그게 회사를 위하는 길이면서 동시에 시청자와 국민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한국당은 ‘노영 방송’ 프레임, 정부의 ‘방송 장악’ 프레임으로 공격해요.
“저는 ‘방송 장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굽은 걸 펴려면 반대로 다시 굽은 만큼 펼 수밖에 없어요. 자유한국당은 굽혀진 대로 놓고 가자는 얘기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럴 수 없다고 봅니다.
문화방송 내부 구성원이 해야 하는 일이 있고, 국가기관, 그리고 법과 제도를 만드는 집단이 각자 할 역할이 있잖아요. 방송 독립과 공정방송이 가능하도록 인적 청산, 제도와 법률 정비 이런 작업을 적폐 세력 눈치를 보지 않고 실행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부담과 비난이 있더라도 국민의 지지와 심판이 이미 내려진 이상 과감하게 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실행이 국민의 바람에 부응하는 길이라고 보고, 또 정치하는 사람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파업은 파업이고, 정부와 정치권 등 외부는 또 자기들의 책임이 따로 있는 거죠.
엠비시는 지금 사장 한 명 몰아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엠비시의 거버넌스, 지배구조를 바꾸는 게 아주 중요해요. 정치권력이 좌우하는 구조가 유지되면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선한 권력, 악한 권력의 상대적 차이는 있겠지만 가능하면 권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내부 구성원, 시민 사회, 시청자, 학계 등 다양한 사람의 기대와 의견이 수렴되는 구조가 만들어지지 않으면 이런 피의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어요.
또 공영방송 재편하는 과정에서 과거처럼 구태의연하게 정치권에 줄을 대고 방문진이든 케이비에스이사회든 어디든 한자리하려는 사람들이 넘보지 못하도록 공영방송의 새로운 모델을 공론화해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정치권에 줄을 댔다고 의심받는 사람이 문화방송 사장으로 온다면, 저는 다시 싸워야 한다고 보고요. 절대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7월2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는 서울 마포구 상암 문화방송 앞에서 ‘김장겸 사장과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 퇴진행동 출정식’을 열었다. 지난 5월부터 문화방송 안에서 사장과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기명 성명이 기수별, 직능협회별, 부문별로 쏟아졌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4일이면 총파업이 시작됩니다. 파업과 이후 상황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최승호 피디가 영화 <공범자들> 관련해서 저를 인터뷰할 때 ‘당신들은 진 게 아니냐, 현실적으로 지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했어요. 저는 언론인들의 운명이란 게 그런 것 같아요. 언론인이 이런 제도 아래서 권력을 상대로 어떻게 이겨요. 다만, 승패를 떠나서 싸워야 할 때 싸웠으면 역사적으로 이긴 거다, 굴복하지 않았으면 승리한 거다,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도요.
그런데 이번 국면에서는 싸우고 있지만 형식적으로 승리하는 건 명약관화한 거라고 보고요. 다만 내용적인 측면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게, 아까 말한 것처럼 내부 인적 청산과 내부 적폐를 일소하는 일에 철저해야 한다는 것. 또 이후에 공영방송 지배구조의 문제, 사장 선임 같은 법적·제도적 문제가 정비되어야 한다는 것. 권력에 줄 대어 공영방송에서 자기 입지 구축하려는 인사들이 넘보지 않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 이게 진정한 승리라고 봅니다.
이번엔 될 거라고 봐요. 국민 80~90%의 열망이 담긴 정부 아닌가요. 우리가 지난해부터 겪은 건 한국 현대사의 큰 변곡점이자 하나의 혁명 과정이지, 단순히 여야간 기계적 정권교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 국면을 협애하게 기계적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이 권력의 탄생은 평화적 혁명에 의한 탄생이라서, 다음에 정권교체를 한다고 해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하는 옛날식 정권 교체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민주적 발전을 진행하도록 해 가는 게 우리가 정말 선진적인 민주 사회로 발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사라질 권력, 사라질 정당은 사라져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10년의 암흑기를 거쳐서 우리 사회는 새로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화를 맞이해 나갈 텐데, 저는 역사가 새로운 국면으로 가고 있다고 낙관하고 있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