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이사회의 추락에는 날개가 없다. <한국방송>(KBS) 이사회와 <문화방송>(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가 관리감독 기능을 잃었다는 비판이 거세다. 이완기 방문진 이사(옛 야권 추천)는 공영방송 이사회의 현 상황을 이렇게 표현했다. “엉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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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비판·견제 안건은 ‘부결’ 방문진은 특히 비판·견제 기능을 발휘해야 할 때 ‘뒷짐만 진다’는 오명을 썼다. 최근 문화방송의 ‘2016 경영평가보고서’ 채택이 지연된 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해 보도·경영·편성제작 등을 평가하는 이 보고서는 통상 이듬해 6월 의결하는 이사회의 주요 업무다. 하지만 보고서 채택은 3일까지 두 차례나 무산됐다. 방문진 이사 9명 가운데 6명의 옛 여권 추천 인사가 반대해서다.
이들은 보고서가 보도·시사 부문에서 문화방송을 비판적으로 평가한 점을 문제삼았다. 보고서가 ‘문화방송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에 소극적이었다’고 지적하면, ‘평가의 공정성이 우려된다’며 수정을 요청하는 식이다. 전국언론노조 문화방송본부는 이를 두고 “지난해 보도·시사 분야의 책임자가 당시 보도본부장이었던 김장겸 사장이기 때문에 ‘보도 파탄’의 흑역사가 기록되는 게 두려운 것”이라고 평했다.
문화방송 안팎에서는 방문진이 △안광한 전 사장 공금 유용 의혹 △인터뷰 조작 의혹 등의 조사에 소홀했다고도 지적한다. 이 사안을 살피자는 특별감사 안건이 이사회에서 부결되거나, 제대로 된 사후보고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기철 방문진 이사(옛 야권 추천)는 “다수 이사진이 회사가 잘못한 것에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감싼다. 관리감독을 거꾸로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1명으로 구성된 한국방송 이사회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옛 야권 추천 이사 4명은 시민단체·노조·경영진이 참여하는 공청회를 하자며 지난달 26일 이를 한국방송 이사회 안건에 올렸다. 하지만 다수 이사 7명 가운데 참석한 6명의 반대로 부결됐다. 졸속 추진 우려가 나온 ‘미래방송센터 신설 계획’을 검증하자는 안건도 지난 6월 이사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김서중 이사(옛 야권 추천)는 “공청회나 감사 요청은 이사회가 회사의 잘잘못을 결정하는 안건이 아니었다. 문제 제기가 있으니 확인해보자는 취지였다”며 “다수 이사들의 거부 행태는 평가할 기회를 갖지 말자는 것이다. 이사회가 일할 수단을 부정하는 셈이다. 이런 방향이면 이사회가 왜 존재하는지 의문이 제기된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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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박기 인사’ 논란…이사회 수장은 “문제없다” 옛 여권이 추천한 공영방송 다수 이사진은 본연의 역할보다 ‘알박기 인사’에 급급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한국방송 다수 이사진은 지난달 27일 조인석 제작본부장을 부사장에 임명하는 안건을 통과시킨 데 이어 2일에는 이종옥 전 <한국방송>(KBS) 비즈니스 이사를 부사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이사회에 올렸다. 옛 야권 추천 이사 네 명은 “우리는 부적절한 인사의 들러리가 될 수 없다”며 부사장 면접·동의 절차를 거부한다는 성명을 냈다. 방문진도 지난 2월 문화방송 구성원의 반대에도 김장겸 사장과 백종문 부사장 선임을 강행했다.
공영방송 이사회가 제 기능을 못 한다는 지적에 옛 여권 추천 다수 이사진은 “문제없다”는 반응이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은 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이사회가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일방적인 비방”이라며 “그동안 (이사회가) 잘못된 점은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이인호 한국방송 이사장도 1일 <한겨레>에 “(이사회가 제 역할을 못 한다는 지적과 관련해선) 얘기하고 싶지 않다. 임기를 마치겠다”고 밝혔다.
현재 방문진과 한국방송 이사진의 남은 임기는 약 1년 정도다. 그사이 헛바퀴 도는 공영방송 이사회를 움직일 ‘묘수’는 좀처럼 찾기 쉽지 않아 보인다. 문종대 동의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공영방송 이사회 문제에 국가가 직접 개입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이사회 정상화를 위해 명분을 만드는 일이 필요할 것”이라며 “노동청의 근로감독관 파견, 방송사의 내부 투쟁, 소수이사의 성명 등이 그 명분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