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박환성 피디(왼쪽)와 김광일 피디의 모습. 한국독립피디협회 제공
“좋은 작품 만들겠다는 독립피디의 열정과 꿈이 더는 가난과 굴욕의 족쇄가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환성이 네가 우리고, 우리가 너다. 너무 걱정 말고, 잘 가라.”
29일 오후 서울 신촌 연세대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안 영결식장에서 고 박환성·김광일 독립피디의 추도식이 엄수됐다. 두 피디는 오는 10월 방영 예정이었던 <이비에스>(EBS) 다큐프라임 ‘야수의 방주’ 2부작(가제)을 촬영하러 남아프리카공화국에 갔다가, 차량 사고를 당해 숨졌다(
▶관련 기사 ‘독립피디 2명 남아공에서 사고사’). 추도식에는 유가족, 동료 피디 등 200여명이 참여해 두 피디를 추모하고, 방송사와 외주제작사 간 불공정계약 개선에 앞장선 고인들의 뜻을 기렸다.
고 박환성 피디의 동생 경준씨는 추도식에서 “처음에는 형의 죽음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 저 세상으로 편히 보내드리고, 두 분이 하늘에서 만족할 수 있도록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희 유가족과 협회에서 힘을 모아서, 보다 안전한 다큐멘터리 제작현장이 구축될 수 있도록 두 고인의 뜻을 받들어서 이루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준씨는 “국가적 차원에서 안전에 관해서 만큼은 제도적인 장치가 꼭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관련한 모든 관계자분의 적극적인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고 김광일 피디의 부인 오영미씨도 “(이번 사건은) 두 피디의 문제가 아니고 모든 방송인의 초상이자 문제라고 생각한다. 저희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건 현장에 갔을 때 박환성 피디의 시계가 유품으로 발견됐는데, 시계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삶은 여기서 끝났지만, 남겨진 우리가 그들이 못다한 일을 이뤄주길 바랐으면 해서 시계가 계속 가는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오씨는 또 “어깨가 무겁다. 두 사람의 유작도 방송에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장례식 끝나고 사건이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계속 관심 가져달라”고 말했다.
29일 열린 추도식에서 두 피디가 제작 중이던 ‘야수의 방주’(가제) 일부 촬영분이 공개됐다.
자연·환경 전문 다큐멘터리 피디로 활약해온 박 피디는 최근 방송사의 부당한 간접제작비 요구 관행에 문제를 제기하며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관련 기사 ‘독립다큐멘터리 PD가 받은 정부지원금, EBS에 일부 떼달라?’) 두 피디는 제작비가 부족해 직접 운전까지 맡았으며, 사고 차량 뒤편에서는 이들이 사놓고 먹지 못한 햄버거가 발견돼 주변을 더 안타깝게 했다.
추도식에는 추혜선 의원(정의당), 오기현 한국피디연합회장, 김환균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등이 참여, 추도사를 통해 불합리한 방송제작 관행을 바꾸는 데 힘을 모으겠다고 말했다. 추혜선 의원은 “(이번 사건 전에) 이미 수많은 박환성과 김광일이 아우성치고 있었다. 독립피디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할 때 ‘인권침해는 참을 수 있다. 사고 나서 죽으면 개죽음만 아니게 해달라’는 답변을 봤을 때, 일찌감치 제도 개선에 더 앞장서지 못한 게 한스럽고 죄송하다”며, “후배들은 더 나은 환경에서 작품 만들 수 있도록 하고싶다는 박환성 피디의 말을 잊지 않겠다. 독립피디의 열정과 꿈이 더는 가난과 굴욕의 족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 자신 있게 주변 사람에게 독립피디 하라고 권할 수 있는 환경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영기 전 한국독립피디협회장은 “저희 독립피디들은 왜 그들이 직접 운전을 해야 했는지, 차량 뒤편에 못 먹은 음식이 있어야 했는지 다 안다. 이제 그 이유를 세상에 알리겠다. 두 사람은 하늘로 갔지만 방송 외주환경의 잘못된 적폐 청산할 때까지 뒷걸음치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전진하겠다”고 말했다. 한국독립피디협회는 ‘방송사 불공정계약청산특별위원회’(가칭) 구성을 논의 중이다.
권용찬 한국독립피디협회 대외협력위원장은 “주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한민국 대사관과 이비에스의 적극적인 협조로, 남아공 현지에서 사고 전문 변호사를 고용하는 등 현지 수습을 잘 마치고 돌아왔다. 자세한 사고 경위와 향후 활동 방향은 추후 알리겠다”고 말했다. 두 피디의 발인은 30일 오전 7시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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