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때 체포·압수수색·소송 등
정권의 방송 장악 중심에서 짓밟혀
김재철 전 사장 ‘국장책임제’ 무력화
이후 부당 해고·전보·아이템 검열 일상화
정권의 방송 장악 중심에서 짓밟혀
김재철 전 사장 ‘국장책임제’ 무력화
이후 부당 해고·전보·아이템 검열 일상화
피디수첩 제작거부 배경은
문화방송(MBC) <피디수첩>이 다시 ‘방송 민주화’의 최전선에 섰다. 지난 21일 저녁 6시부터 피디 11명 가운데 10명이 “간부진들의 제작 자율성 침해가 도를 넘었다”며 제작 거부에 돌입했고, 25일치 방송이 결방됐다. 회사 쪽은 아이템 묵살 등 제작 자율성 침해를 폭로한 이영백 피디에게 26일부터 2개월 대기발령을 통보하는 등 강경책으로 맞서, 힘겨운 싸움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 한국 사회 민주주의 부침과 피디수첩 27년사 1990년 첫 방송을 시작한 피디수첩 27년 역사에서 회사 쪽과 벌이는 싸움이 처음은 아니다. 피디수첩이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를 자임하며 정치·자본·종교·언론 등 힘 있는 집단의 치부를 정면으로 고발하면서 한국 사회 민주주의의 부침, 정권의 언론장악 시도와 운명을 같이해왔기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 때 피디수첩은 제작진 체포, 사무실 압수수색, 정부 부처와의 소송,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제재 등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언론탄압을 겪어야 했다. 이명박 정부의 논리는 ‘피디수첩 광우병 편이 허위보도로 촛불집회를 선동했다’는 것이었다. ‘피디수첩 제작진은 언론으로서 정부 정책 감시·비판이라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는 요지의 제작진 승소 판결이 이어졌지만, 보수 정당·언론의 피디수첩 ‘흠집내기’는 멈추지 않았다. 19일 이효성 방통위원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이 “광우병 보도, 정상입니까 비정상입니까?”라고 첫 질의를 시작한 것은 상징적이다.
■ 문화방송 경영진·간부들은 왜 ‘자해’하는가 문화방송 경영진·간부들도 피디수첩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정권에 충성해왔다. 2011년 회사 쪽은 광우병 편을 만든 피디수첩 제작진 4명에게 정직 3개월 등 중징계를 내렸다. 제작진이 회사를 상대로 낸 징계 무효 소송에서 1·2심 연달아 회사가 패소한 뒤에는, ‘(사법부 판결은) 징계 수위가 과하다는 것이지, 징계 사유가 없다는 건 아니’라는 논리로 정직 1개월 등으로 수위를 낮춰 다시 징계했다. 제작진은 재징계에 다시 무효 소송을 냈고, 지난해 말까지 진행된 1·2심에서 모두 승소했다. 그제서야 회사 쪽은 상고를 포기하고 징계를 취소했다.
피디수첩의 자율적인 제작 문화를 손보려는 시도도 계속됐다. 이명박 정부 시절 선임된 김재철 당시 문화방송 사장은, 1988년부터 노사 단체협약으로 보장한 ‘국장 책임제’를 없앴다. 국장 책임제는 경영진이 프로그램에 쉽게 관여하지 못하도록 국장에게 ‘외압의 방패’ 구실을 하도록 했는데, 김 전 사장은 이를 ‘본부장 책임제’로 후퇴시키려다가 노조의 반발이 거세자 단협 자체를 해지해버렸다. 1987년 한국 사회 민주화와 공영방송 민주화 운동의 결실인 사내 민주주의 제도를 일거에 무력화시킨 것이다.
그 뒤 피디수첩에서는 간부들의 아이템 검열이 일상화됐고, 이러한 검열은 경영진의 인사권 활용과 맞물려 ‘공포 효과’를 극대화했다. 피디수첩의 주요 제작진을 다른 곳으로 전출시킨 일은 2012년 파업의 도화선이 됐으나, 파업 당시 최승호·강지웅 피디가 해고됐다. 파업 직후에는 10여년 동안 피디수첩을 함께 이끈 작가 6명이 해고됐고, 시용 피디들이 배치됐다.
■ 다른 피디·기자도 제작 거부 동참…어디까지 번질까 “그동안 쌓인 게 많아서 (제작 거부를 논의하면서) 피디들이 다 같이 눈물을 쏟았다.” 조윤미 피디의 말이다. 조 피디는 2013년 피디수첩 간부진이 불합리한 이유로 아이템을 불허하자 문제제기를 한 뒤 비제작부서로 전출됐다가 1년 만에 다시 피디수첩에 돌아왔다. 사내 제도적 보호막이 사라진 자리에서, 피디들은 피디수첩을 ‘생존’시키는 일에 집중했다. 2014년 간판 교양 프로그램인 <불만제로> 등이 폐지되고, <뉴스데스크>가 각종 왜곡 보도로 추락하는 일을 목격하면서다. 송일준 문화방송피디협회장은 “밖에서 보기엔 무력해 보였겠지만, 그동안 피디수첩 피디들은 ‘최악’의 방송을 막으려 노력해왔다. 이번에는 간부들이 피디의 양심을 버릴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았기 때문에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부서장이 소속 프로그램을 존재 부정하는 성명서를 내는 것이 정상적인 조직입니까?” 24일 장형원 부장이 ‘피디수첩 팀장 자리에서 물러나겠다’며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의 일부다. 문화방송이 21일 제작 거부와 관련한 입장문에서 피디수첩을 “민주노총의 ‘청부’ 제작소”으로 규정한 일 등을 비판한 것이다. 장 부장은 같은 글에서 “지금까지 프로그램과 구성원들이라도 지키고 싶다는 일념으로 일해 왔다. 하지만 최근 같이 일하는 피디들과 입사 동기인 김민식 피디를 보면서 많이 부끄러웠다”며 “나는 피디수첩 팀장이기 전에 한 명의 피디이고 인간이다. 이제부터는 내 양심을 지키고 싶다”고 썼다.
26일에는 같은 시사제작국 소속 피디·기자 30여명도 제작 거부 동참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같은 날 낸 성명에서 “(시사교양국·보도제작국) 조직의 해체 후 좌절감과 사명감이 뒤섞인 감정으로 프로그램을 지켜오던 우리는 시사제작국의 이름으로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문화방송의 시사·보도 제작 프로그램을 지켜내는 싸움을 새로 시작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지난 24일 송일준 문화방송피디협회장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디수첩> 피디들의 제작 중단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피디들 뒤로 문화방송 쪽 직원들이 취재진 출입을 막아서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 24일 송일준 문화방송피디협회장이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피디수첩> 피디들의 제작 중단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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