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제한 50미터 조항 탓
선관위-조사원 사이 시비 왕왕
조사 정확도, 심층성 높이려면
조사환경 개선돼야
선관위-조사원 사이 시비 왕왕
조사 정확도, 심층성 높이려면
조사환경 개선돼야
대선 출구조사 현장 어땠나
9일 저녁 8시. 지상파 방송 3사에서 제19대 대선 출구조사 결과가 일제히 발표됐다. ‘문재인 41.4%, 홍준표 23.3%’. “와~!” “아….” 한껏 고조됐던 긴장이 기쁨 또는 실망과 함께 풀리는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실제 개표 결과는 문재인 대통령 41.1%,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 24.0% 등으로, 출구조사의 오차범위 ±0.8%포인트를 넘지 않았다. 출구조사가 기호 1~5번 후보들의 최종 득표율을 거의 맞힌 것이다.
출구조사는 이처럼 대선 결과를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예측해서 시민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한다. 1996년 첫 조사가 실시된 뒤, 출구조사는 주요 선거일마다 여론조사의 ‘꽃’이 되느냐 ‘무덤’이 되느냐의 갈림길에 놓였다. 핵심은 정확도다. 정확도는 과학적 방법론에 따라 정밀하게 설계한 조사 절차를 투표소 현장에서 실제 어떻게 수행하느냐에 달렸다. 이 때문에 선거일 전국 수백여곳의 투표소에선 정확도를 높이려는 현장조사원들의 악전고투가 벌어진다.
<한겨레>는 10일, 이번 대선 출구조사에 참여한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의 정효채 대리(연구2본부), 이은교 연구원을 만나 조사 뒷이야기를 들었다. 칸타퍼블릭은 1999년부터 모두 15차례 출구조사에 참여했다. 9일 진행한 지상파 3사와 한국방송협회 공동 출구조사에서는 전국 총 330곳의 조사 대상 투표소 가운데 110곳을 맡았다.
■ ‘거리 제한 50미터’ 조항 필요한가 정 대리와 이 연구원은 9일 투표가 시작되는 새벽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전국의 조사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 상황을 접수받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상황실’을 담당했다. 이날 상황실에 걸려온 전화는 300여통. 이 가운데 90~100통은 조사원과 해당 지역 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거리 시비’였다. 공직선거법 위반 시비로 선관위 쪽에서 경찰을 부른 것도 3건이었다.
해당 선거법 조항은 제167조와 제241조. 유권자는 투표한 후보자 이름, 정당 이름을 누구에게도 진술할 의무가 없으며, 이를 침해하면 처벌한다는 내용의 ‘투표 비밀 보장’ 조항이다. 다만 언론이 선거 결과를 예측하려는 목적으로 ‘투표소로부터 50미터 밖에서 투표의 비밀이 침해되지 않는 방법으로 질문하는 경우’를 예외적으로 허용한다.
문제는 이 ‘50미터 거리 제한’이 조사 현장에서 소모적인 시비를 부르고, 조사 정확도에 부정적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출구조사는 투표를 막 마치고 나온 매 5번째 유권자를 상대로 한다. 조사의 정확성을 높이려면 이 일정한 간격을 지키는 게 관건이다. 그런데 조사를 할 수 있는 지점과 실제 투표소의 거리가 멀다보니 누가 조사 대상자인지를 제대로 파악하는 게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조사기관에서는 투표소별로 정확한 조사 대상자를 파악해서 조사원에게 알리는 ‘카운터’를 둔다. 카운터들은 50미터 안에 접근하되 조사 대상자에게 ‘질문’은 던지지 않는다. 하지만 일부 선관위 관계자들이 카운터도 50미터 밖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시비가 발생한다. 조사가 일시적으로 중단되기도 한다. “분위기가 험악해지면 조사에 응하려던 유권자가 위축되기도 한다.”(이 연구원)
이뿐만 아니다. 자가용을 타고 와, 투표소로부터 50미터 안에 차량을 주차하는 조사 대상자들이 있다. 조사원은 이들이 조사에서 누락되지 않도록, 투표를 마친 뒤 차에 타고 떠나려는 유권자를 붙잡으려 애써야 한다. 선거일 전에 조사 대상 투표소를 사전답사하는 것도 필수다. “대도시에서는 아파트 안에 투표소가 설치되거나 한 건물에 투표소가 2개인 경우가 있다. 투표를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곧장 갈 수 있거나 유권자가 어느 투표소에서 나오는지 파악하기 어려울 경우 어쩔 수 없이 조사 대상지에서 제외하는 일도 있다.”(정 대리)
■ ‘표심’ 심층분석 가능한 출구조사하려면 출구조사 거리 제한 규정은 완화 추세를 보여왔다. 조사의 실효성·정확도를 고려해 1996년 500미터에서 시작해 2000년 300미터, 2004년 100미터, 2012년 50미터로 줄어든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거리 제한 규정을 더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사 정확도 개선은 물론 심층성을 높이려는 목적에서다.
출구조사는 선거 결과 예측만이 아니라, ‘표심’을 분석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자료를 제공한다. 이번 대선에서는 출구조사 역사상 처음으로 심층조사가 이뤄졌다. 어느 후보를 지지했는가뿐만 아니라 지지 이유와 차기 정부의 우선 과제 등을 함께 질문했다. 미국에서는 출구조사 때 성, 연령, 종교, 소득은 물론 지난 선거에서 지지한 후보, 주요 현안에 대한 의견까지 묻는다. 그에 견주면 이번 심층 출구조사는 초보 단계다. “예측조사는 조사에 걸리는 시간이 1분도 안 되는데 심층조사는 3~5분 정도였다. 심층조사 대상자의 경우 조사원들이 협조를 구하기가 더 어려웠다. 거리 제한 규정이 없으면 조사에 참여해달라고 설득할 수 있는 시간을 몇 분이라도 더 벌 수 있지 않을까. 공익적 목적으로 수행하는 조사인 만큼, 조사 환경이 더 개선되었으면 한다.”(이 연구원)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인 9일 오전 투표를 마친 시민들이 지상파 3사 공동 출구조사에 응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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