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5월14일 김영삼(왼쪽 둘째) 당시 민주당 총재가 서울 양평동 한겨레신문사 편집국을 방문해 송건호(맨 왼쪽) 사장과 이기택(오른쪽 둘째) 부총재가 지켜보는 가운데 성유보(오른쪽) 편집국장과 악수를 나누며 창간을 축하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2015년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생전의 전 재산 사회환원 약속이 새삼 조명을 받았다. 앞서 2011년 1월 김 전 대통령은 서울 상도동 자택과 고향 거제와 마산 일대의 땅을 포함해 약 60억원 상당의 재산을 김영삼민주센터와 거제시 등에 모두 내놓기로 공증까지 해뒀기 때문이다. 그때 목록에서 빠져 있던 자산이 있었다. 바로 한겨레신문사 주식 2천주(액면가 1천만원)였다.
“지난 연말 1주기를 계기로 아버님의 유지를 다시 되새겼습니다. 또 이번 ‘촛불민심’에서 아버님 필생의 신념이었던 ‘민주화의 천심’과 ‘와이에스식 투명 철학’을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과 재벌 유착 비리를 파헤쳐온 국민주 신문 ‘한겨레’의 존재 가치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고 김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 모셨던 차남 김현철(58) 고려대 연구교수가 지난 20일 선친의 ‘한겨레’ 주식 전부를 한겨레신문사에 기탁하면서 밝힌 뜻이다. 고인이 된 ‘한겨레’ 주주가 자녀나 타인에게 주식을 증여하지 않고 한겨레신문사에 기탁한 첫 사례다.
“생전에 아버님이 ‘한겨레’ 주주란 얘기는 들었던 기억이 있지만 딱히 재산이란 생각을 못했던 것 같아요. 애초 주식을 살 때부터 그때 대부분의 주주들과 마찬가지로 투자 목적이 아니라 민주화와 언론자유를 위한 성금으로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껏 잊고 있었는데 이제라도 유지를 받들 수 있어서 마음이 뿌듯합니다.”
김 전 대통령은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이던 1988년 가을 ‘한겨레 발전기금’ 참여 제안을 받고 자신은 물론 측근인 상도동계와 민주당 정치인들에게도 함께할 것을 권했다. 이날 자리를 같이한 김덕룡 당시 민주당 의원은 “그때 재력가였던 전국구 송두호 의원이 6천주를 사 최고액 주주로 꼽히기도 했다”고 전했다.
88~89년 한겨레 발전기금 홍보위원을 맡았던 박준철(<중부타임스> 대표)씨는 “자본금을 모아 신문을 창간했지만, 운영자금이 모자라 2차로 발전기금을 모아야 했다. 그래서 상도동과 동교동을 오가며 은근히 ‘경쟁 유발 작전’을 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상도동 쪽에 제안 뒤) 한동안 별 반응이 없었는데, 어느 날 통장을 확인해 보니 ‘김영삼 1000만원’이 찍혀 있었어요. 그 뒤로 야권 정치인들의 주주 참여가 줄을 이었죠.”
실제로 김 전 대통령은 공화당의 여러 의원에게도 ‘한겨레’ 후원을 독려해 주주 대열에 합류시켰다. 재산의 사회환원 작업을 추진해온 김기수 전 김영삼 대통령 수행실장은 “김 전 대통령은 ‘정치인에게 돈은 흐르는 물과 같아야 한다’는 철학을 평생 지키신 분이시니 ‘한겨레’ 주식도 기꺼이 내놓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통령 재임 시절 ‘금융실명제’를 전격 단행하고, 자신을 비롯해 삼부요인과 고위 공직자 재산공개를 처음 도입해 우리 사회 투명성을 끌어올린 것처럼, 재산환원까지 차질없이 마무리해 누구보다 깨끗한 정치 지도자로 길이 남도록 하겠습니다.”(김기수 전 실장)
정영무(왼쪽) 한겨레신문사 사장은 지난 20일 서울 시내 한 호텔에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오른쪽) 고려대 연구교수에게 선친의 ‘한겨레’ 주식 기탁에 따른 감사장을 전달했다. 이날 김 교수도 ‘한겨레’ 주식을 구입해 대를 이어 주주가 됐다. 김경애 기자
이어 김 교수는 이날 ‘한겨레’ 주식을 자신 이름으로 구입해 새 주주로 가입했다. 고려대 졸업과 미국 유학을 거쳐 한겨레 창간 무렵인 88년부터 4년간 중앙여론조사연구소 소장을 맡았던 그는 “<한겨레21>의 오랜 애독자였는데 이제야 주주가 됐다. 부끄럽지만 200주부터 출발하려 한다”며 자신이 ‘주인’인 신문사에 바람을 전했다.
“내년 <한겨레> 30돌을 미리 축하하고, 앞으로 새 주주로서 <한겨레>가 추구해온 차별화된 정론직필이 어느 시대 어떤 정권에서도 흔들림없이 계속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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