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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자사의 혁신과제 써내라’ CEO도 쩔쩔맬 신입 자소서

등록 2016-10-13 18:57수정 2016-10-13 21:11

EBS, 9건 문항에 원고지 45매 분량
자기소개와 거리 먼 회사전략 요구
MBC 지역사는 부모직업 등도 물어
“지원자들 인권 유린…제도 바꿔야
언론사들 공개채용이 진행되는 가운데 과도한 자기소개서(자소서) 요구에 취업준비생들이 몸살을 앓았다. 대학입시뿐 아니라 취업시장에서 갈수록 높아지는 자소서의 비중은 언론사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언론인으로서의 기본 자질과 소양 등 잠재적 가능성을 가늠해보는 자소서가 자사 프로그램 개선점이나 혁신 과제를 요구하는 등 빗나간 문항에 불만들이 쏟아졌다. 취업에 목매는 다수의 지원자 ‘을’들을 대상으로 자신들의 미래전략을 얻으려는 속셈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4일 서류 접수를 마감한 <교육방송>(EBS)은 2년 만의 채용이라 이른바 언론고시생(언시생)들의 관심이 높았다. 문제는 피디 부문 자소서가 모두 9건(각 1000자 이내)으로 원고지 총 45장 분량을 작성해야 한다는 것과 ‘입사 후 본인이 겪을 수 있는 구성원 간의 갈등은 어떤 유형일 것으로 예상하며, 구체적인 극복 방안은?’ ‘EBS의 미션, 재원구조, 매체 다변화 등 대내외 환경을 고려할 때, 취약점과 혁신 과제는?’ 등 자기소개와 거리가 있는 문항들 때문에 ‘폭탄급 자소서’라는 원성이 나왔다.

언론고시카페인 ‘아랑’ 사이트에서는 이를 놓고 와글와글 시끄러웠다. “딱 열어보고 몇개는 선택문항이 아닐까 눈을 의심했다. 재작년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실제로 2014년엔 ‘해당 직무에 대한 이해 및 지원동기’ 등 4건이었다. “정말 취조인 줄…” “너무하네요 진짜. 졸업논문도 아니고” “이 자소서를 다 읽는지도 의문… 결국 뽑는 측이 갑이니…시키는 대로 할게”라는 자조적 답도 올라왔다. “뭔가 밥 떠먹여달라고 입 벌리고 있는 아기의 모습이 떠오르네요”라거나 “저게 신입사원 자소서라고요? 사장을 뽑기 위한 경영계획서 이런 게 아니고?”라며 질문 내용에 대한 문제제기도 잇따랐다.

언론사가 자사에 적합한 인재를 뽑기 위한 다각적 접근으로 이해하기엔 과도하다는 평가다. 한 언시생은 9개 문항에 대해 “비슷한 질문이 많아 자기복제를 안 할 수 없다. 문제에 불만은 많지만 을의 입장에서 신경쓸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교육방송 내부에서도 비판적 시각이 나온다. 이 방송의 한 피디는 자소서가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문항 수를 늘린다고 정밀한 검증이 되는 것이 아니어서 패착이라고 진단했다. “요즘 스펙은 고만고만해서 차별화가 안 된다. 그래서 자소서로 개성있고 자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는 지원자를 눈여겨보는 것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항목이 많아지면 지원자도 고생이지만 채점해야 하는 심사위원들도 진빠진다. 대체로 5개를 넘어간 적이 없는데 지나치게 욕심을 부렸다.”

같은 날 접수를 마감한 <제이티비시>(jtbc)도 문항은 2개지만 ‘프로그램 가운데 비판할 점과 개선점’(시사교양 피디 부문)을 요구하는 자소서로 논란이 일었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자소서는 지원자의 인성과 언론관을 들여다보며 언론인으로서의 가능성을 측정하는 것으로, 본인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알 수 있도록 심리적 문항 개발이 필요하다. 정책적 질문은 뉴스나 논문 등을 짜깁기해 뽑힌다 한들 진정성이 없지 않으냐”고 비판했다.

지난 상반기 채용에서 <문화방송>(MBC)의 한 지역사는 자소서에 가족 동거 여부와 부모의 직업, 근무처 등을 버젓이 묻는 행태로 다른 직업보다 혁신적 사고를 지녀야 할 언론사로서 퇴행적인 반인권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언론사의 신입사원 채용 과정은 서류전형, 필기시험, 실무평가, 면접 등을 거치는데 소수를 뽑으면서 비용은 거액이 들고, 공들인 만큼의 긍정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아 효용가치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점점 더 고약해져가는 자소서 항목 등 대안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재경 이화여대 교수는 “갈수록 극단적으로 치닫는 언론사의 자소서를 채우느라 학생들이 혹사를 당하고 있다. 아이를 가르치는 학교도 책임이 있겠지만 인권을 지켜나가야 할 언론사들이 채용 과정에서 회사 위주로 생각해 지원자들의 인권을 유린하고 있다”며 “지금의 제도는 저널리즘이 철저히 준비된 사람을 뽑는 것도 아니고 사람만 황폐화시키고 있는데 언론사 시험도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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