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에서 방송의 제작 자율성이 심대하게 훼손당하고 있다. 방송의 공정성과 자율성은 권력과의 긴장관계 속에 시대가 변해도 버릴 수 없는 언론의 항구적 과제인데, 권력을 비판하는 방송을 하다 문제가 발생하면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보호구조가 취약하다. 이런 분위기 속에 사회적 의제가 될 만한 시사프로그램들은 갈수록 줄고 있다”.
지난주 한국피디연합회 30대 회장에 당선된 오기현 <에스비에스>(SBS) 피디는 <그것이 알고 싶다> < 에스비에스스페셜> 등을 만든 연출가로서 시사프로의 위축 현실을 가장 먼저 짚었다. 피디연합회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흐름을 타고 지상파 방송사 피디들을 주축으로 자유 언론과 방송문화 발전을 목표로 그해 9월 결성된 단체로 회원이 3000명에 달한다.
오 당선자는 해직 언론인들의 복직이 늦어져 방송 제작 현장에 심리적 위축을 주고 있다며 방송 정상화를 위해 이들의 복직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후배 언론인들이 공정성·공익성·공공성 등 제목소리를 내고 싶어도 해직 선배들처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해직 언론인 해법에 대해 “국회에서 논의하는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안과 맞물려 총체적으로 해결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그는 방송계 내부의 구조적인 ‘갑’질 문화에 대해서도 주목했다. “방송사, 외주 제작사, 독립 피디로 이어지는 상하 구조가 엄존한다. 정의와 평등은 강자들의 논리일 뿐 약자인 독립피디들은 어디에도 하소연할 데가 없다.” 그는 향후 ’갑’의 위치인 지상파 방송사에 독립피디들이 마련한 표준계약서 의무화를 요구할 계획이다.
방송 시장이 어려워져 제작비 압박이 심해지는 것도 난제다. 오 당선자는 “기획력만 좋으면 회사가 전폭 지원했던 옛날과 달리 요즘은 공익적인 대형 프로그램은 후순위로 밀리고 있다. 제작비는 많이 들어가면서 광고는 안 들어오는 프로그램은 적자가 예상되기 때문에 방송사에선 피디에게 협찬을 받아오라고 한다. 남의 협찬을 받는데 공짜로 해주겠느냐”며 가진자의 논리대로 방송이 휘둘릴 수밖에 없는 제작 현실을 우려했다.
그는 피디연합회 통일특위 위원장을 지내며 북한을 수십 차례 방북한 ‘북한통’ 언론인이다. 2000년엔 최초로 평양의 김일성 광장에서 나흘간 진행된 저녁 뉴스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했다. 그는 “언론 교류를 거론하면 북한 언론은 노동당의 산하기관인데 공허한 소리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북 언론이 다른 조직에 비해 상대적 자율성이 보장돼 있고 방송인들도 교류에 대한 의지가 강해 다른 분야보다 교류 효과가 클 것”이라며 “5·24조치 이후 교류를 막고 있는 우리 정부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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