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곤 전 한국방송 보도국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징계무효소송 항소심 첫 공판에 참석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KBS 전 보도국장, 법정서 청와대 인사개입 폭로
“2014년 보도개입 폭로 회견 전
길환영 사장이 나를 호출
청와대 지시 내려왔다고 해”
“인수위 때부터 보도개입” 발언도
“2014년 보도개입 폭로 회견 전
길환영 사장이 나를 호출
청와대 지시 내려왔다고 해”
“인수위 때부터 보도개입” 발언도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이정현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으로부터 <한국방송>(KBS) 보도에 개입하는 전화를 받은 내용을 공개했던 김시곤 전 한국방송 보도국장이 길환영 당시 한국방송 사장이 자신의 사표 제출을 요구하며 “‘대통령의 뜻이라 거절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청와대가 공영방송에 대한 보도 개입과 함께 인사 개입까지 한 정황을 폭로한 것이다. 또 그는 길 전 사장의 ‘보도 개입’은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시작됐다”고 밝혔다.
6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징계무효 소송 항소심 첫날, 김 전 국장은 2014년 5월 보도국장을 사퇴하게 된 과정에 대해 “당일 예정된 14시 (보도 개입을 폭로하려 한) 기자회견을 35분 남기고 길 전 사장이 날 호출했다”며 “기자회견 하지 말라고 하면서 ‘청와대 지시가 내려왔다, 사표 내라, 3개월 동안 있으라’ ‘대통령 뜻이니 거절하면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고 법정에서 밝혔다. 그는 이어 “기자회견 35분을 남기고 갑자기 변경하고 제게 사표 제출하라고 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합리적인 의심을 해봐야 한다”며 “당시 박준우 정무수석이 야당 신임 박영선 원내대표를 찾아가 자신이 전화를 걸어 김시곤이 사직하게 됐다고 자랑했다. 길 전 사장도 실토했고 박 정무수석도 자기 입으로 얘기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한국방송 쪽을 대리해 나온 김현근 변호사는 재판정에서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과연 길환영 전 사장의 부당한 보도 개입에 항거하려고 이 사건 관련 발언을 했는지 의문이다. 녹취록을 보면 오히려 김 전 보도국장이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친밀한 관계에서 협조하는 내용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날 김 전 국장은 보도 개입이 시작된 시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박근혜 정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라고 밝혔다. 김 전 국장이 공개했던 ‘국장업무 일일기록’(비망록)에도 2013년 1월부터 길 전 사장이 “박 당선인 ‘글로벌 취업·창업 확대’”를 첫번째 뉴스로 편집하라고 지시하는 등 보도 개입 실태가 기록되어 있다.
이정현 전 수석이 김 전 국장에게 전화를 건 것과 관련해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한 것”이라고 주장한 데 대해, 김 전 국장은 “난센스”라고 말했다. 당시 이 수석의 전화는 명백한 보도 개입이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그는 “통화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보지는 않지만 통화 내용, 그러니까 뭘 얘기했는지, 통화를 통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려고 했는지가 ‘포인트’”라며 이렇게 말했다. 또 김 전 국장은 “정부·여당이 일방적으로 사장을 선임하는 지금의 제도를 이대로 놔둬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이번 사안이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김 전 국장의 주장과 관련해 <한겨레>는 길환영 전 사장의 입장을 직접 듣기 위해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한국방송 홍보실 쪽은 “길 전 사장과 김 전 국장 사이 개인적 대화 내용에 대해 한국방송이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방송 27기(2001년 입사) 기자 18명은 5일 ‘청와대 보도개입 언제까지 침묵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내부망에 올렸다. 이들은 “한국방송의 위상이 일개 임명직 공무원이 보도국장에게 답변할 틈도 주지 않고 욕설까지 섞어가며 목에 핏대를 세울 수 있는, 그러면서 대통령도 봤다며 간교한 협박을 서슴지 않는 딱 그 정도”라며 “이정현 전 수석의 겁박을 실제로 접했을 때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다고 토로했다. 한국방송 기자들은 앞으로 기수별 성명 발표를 이어갈 것으로 알려졌다.
최원형 허재현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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