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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MBC해직자가 만든 스피커, MBC 드라마 소품서 퇴출

등록 2016-06-20 16:13수정 2016-06-20 21:36

해직 4년 박성제 전 MBC 기자

2012년 불공정보도 장기파업중
김재철 전사장이 배후 지목해 해고

분노 다스리려고 목공작업 매달려
수제원목 ‘쿠르베스피커’ 장인 변신

“지배구조 안바꾸면 또 낙하산 사장
20대국회 MBC출신 의원 역할 기대”
해직된 지 4년이 된 박성제 전 <문화방송> 기자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해직 뒤의 삶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 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해직된 지 4년이 된 박성제 전 <문화방송> 기자가 지난 16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해직 뒤의 삶 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 뒤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그래도 해직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복직에 앞서 공영방송 사장 뽑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2012년 김재철 <문화방송>(MBC) 사장이 불공정 보도에 맞서 장기 파업을 벌인 노조 집행부를 해고한 데 이어 그해 6월20일 ‘파업 배후’로 지목해 해고시킨 박성제 기자를 지난 16일 만났다. 그는 마이크를 빼앗긴 4년간 공방에서 묵묵히 원목으로 스피커를 만드는 소상공인으로 변신해 있었다.

그는 2007년 문화방송 노조위원장을 맡기 전까지는 ‘잘나가는’ 기자였다. 주요 부서를 거치며 미국 연수도 다녀온 뒤 기획취재부 차장으로 기자회장을 지내고 있었다. 사람과 잘 어울리는 유연한 성격의 유능한 기자에서 ‘좌파 언론인’으로 낙인찍히며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해고 뒤 처음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는 “정치권, 방송통신위원들,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한 당시 대선 후보들이 김재철 사장 거취와 방송의 정상화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약속해 조금만 기다리면 복귀할 것으로 봤다”고 밝혔다. 사태 해결은 여전히 외면받는 가운데 문화방송의 부당전보·해고 등 노조 탄압은 최근 유엔인권위 보고서를 통해 국제사회까지 주목하게 됐다.

그가 쫓겨날 때 방송사 안팎에선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는 해고의 사유가 불명확해 논란이 있었다. 김재철 사장이 2013년 한 월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실명을 거론하며 ‘배후에서 노조를 조종한 자’라고 언급한 데 이어 올해 초에 드러난 백종문 본부장의 녹취록을 통해 그의 해고 이유는 좀더 확실하게 공개됐다. 그는 “피디는 최승호, 기자는 나를 후견인으로 찍어 본보기로 날린 것이다. 그제야 친한 친구들조차 이런 황당한 이유로 해고된 줄은 몰랐다고 했다”고 말했다.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 공방에 틀어박혀 시작한 목공작업은 오디오광이었던 그에게 둥그런 스피커를 만드는 영감을 떠올리게 했고, 그는 ‘쿠르베스피커’라는 사업체까지 꾸리게 됐다. 목돈이 들어가는 시설 투자가 아니라 몸으로 버티는 작업이기에 가능했다. 수제원목 스피커는 반응도 좋아 드라마에서 소품으로 빌려 가며 방송을 타기 시작했고, 마침내 문화방송의 일일극에서도 지난달부터 협찬으로 등장했다. 그는 “드라마 소품 등을 납품하는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엠비시에서 껄끄러워할 것’이라고 했지만 사정을 하기에 빌려줬다”고 했다. 음악이 동반되지 않는 드라마 협찬은 홍보에 크게 도움되지 않지만 친정이니까 하는 순수한 마음이 작용했다. 하지만 박성제가 만든 스피커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는지 문화방송 계열사 대표의 ‘빼라’는 지시에 따라 지난주 촬영분부터 소품에서 사라졌다.

그의 스피커가 음악 애호가들에게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는 지금도 뉴스 개혁의 꿈을 꾼다. “하루빨리 돌아가서 신뢰가 무너진 뉴스와 시사프로그램들을 복원하는 데 일조하고 싶다. 해고 무효소송은 대법에서 당당히 이길 것으로 기대하지만 방송의 정상화를 위해 그 전에 리더를 뽑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며 정치권 역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다행히 20대 국회에서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에 문화방송 출신 의원이 3명이나 포진돼 새로운 기대를 하고 있다. 그는 “이 모든 게 청와대가 사장을 결정하니까 생긴 문제들이다. 진보적 사장을 뽑자는 게 아니다. 외풍을 막아주는 공정한 인사면 된다”고 강조했다. 해직자들은 대선을 앞두고 2012년처럼 “부끄러운 보도”가 쏟아져서는 안 된다는 절박감이 있다. 지배구조를 개선하지 못하면 내년 2월 임기가 끝나는 안광한 사장 후임에 또다시 낙하산 사장이 내려와 청와대에 충성하는 보도로 화답하는 악순환이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한 미디어 매체에서 김재철 전 사장이 “해고된 후배들에게 죽을 때까지 미안하다”고 발언한 것에 대해 그는 “공영방송을 망친 부분과 부당 징계·해고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면 받아들이겠으나 인터뷰 하나로 해결될 일은 아니다”라고 쐐기를 박았다. 그는 이어 “김재철 전 사장에 대해 인간적으로 욕을 할 생각은 없다. 정치권을 기웃거리다가 경선에서 꼴찌를 하는 등 정권에 충성해봤자 버림받는다는 것을 다른 낙하산 사장들에게 경종을 울려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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