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 지분 매각을 논의한 비밀회동을 보도한 최성진 기자가 8월20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선고공판을 마친 뒤 법정을 나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십니까.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신문지부장을 맡고 있는 최성진이라고 합니다. 노동조합 일을 맡기 전에는 <한겨레21>과 편집국 토요판팀, 미디어팀, (지금은 사라진) 사회정책부 등에서 기자로 일했습니다.
오늘은 엊그제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정수장학회 보도’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려고 토요판을 찾았습니다. 4년 전 바로 이 토요판 지면을 통해 ‘공개되지 아니한 타인간의 대화’를 엿듣고 녹음하고 보도했다며, 그동안 수사와 재판을 받은 기자가 바로 저였습니다.(정수장학회 보도는, 2012년 대통령선거 직전 <문화방송>과 정수장학회 관계자가 만나 이 장학회가 보유한 문화방송 등 언론사 지분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한테 유리한 쪽으로 매각하려 모의했다는 내용을 폭로하는 내용입니다.)
제게는 참으로 긴 싸움이었습니다. 정수장학회 보도가 이뤄진 시점은 2012년 10월이었고, 거의 곧바로 검찰 수사가 시작됐으니 3년7개월 남짓 걸렸군요. 시간이 오래 흘러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그때의 일들이 하나둘 떠오르네요. 그해 11월 어느 이른 아침, 정수장학회 취재에 쓰인 제 휴대전화를 가져가겠다며 검찰 수사관 여러명이 압수수색 영장을 갖고 제가 살던 오피스텔에 들이닥쳐 휴지통이며 냉장고, 침대 매트리스 바닥까지 샅샅이 털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만 납니다.
법원이 허락한 압수수색의 범위를 무시한 채 마구잡이로 제 집을 헤집던 수사관들과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 뒤, 저는 허탈하게 담배를 태웠더랬습니다. 그 옆으로 슬쩍 다가와 “저도 사실 한겨레 독자입니다”라며 맞담배를 청했던 그 수사관은 지금도 <한겨레>를 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해지네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2013년부터 4년째 이어진 재판의 결과는 유죄입니다. 징역 6월, 자격정지 1년의 선고유예가 확정된 겁니다. 지난 12일 오후 대법원의 유죄 확정판결이 나온 뒤 많은 분들이 묻습니다. 농반진반으로 ‘언제부터 구속되는 것이냐’부터 ‘자격정지면 노조위원장 자격도 정지되는 것이냐’, ‘기자 일도 못하는 것 아니냐’ 따위의 걱정을 많이 해주시는데, 그렇지는 않습니다. 선고유예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하는데요, 이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자격정지 등 범행의 정도가 가벼울 때, 그 형의 선고를 유예한 뒤 2년이 지나면 ‘빨간줄’을 지워준다는 뜻입니다. 물론 앞으로 2년간 ‘착하게’ 산다면, 그렇게 해주겠다는 이야기일 겁니다.
사실 저는 이번 대법원 선고에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몇몇 언론사 기자한테 ‘법정에 나오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지만, 정중히 ‘아니오’라고 대답했습니다. 1심과 2심 선고 때와 달리, 대법원으로부터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연예인도 유명인사도 아닌 제가 언론사 취재진 앞에 서서 질의응답을 나누는 것도 썩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지금 한국의 사법부에 거는 기대가 제게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이 지면을 통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직접 말씀드리는 것이 도리일 듯합니다. 먼저 ‘정수장학회 보도를 후회하냐(혹은 뉘우치냐)’는 물음에 대한 제 대답입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아니오’입니다. 제게 유죄를 선고하는 동시에 ‘2년간 착하게 살면 없었던 일로 해줄게’라고 밝힌 판사들한테 미안한 말씀입니다만, 저는 당신들이 바라는 ‘착한 기자’로 살 자신이 없습니다. 그냥 지금까지 하던 대로, 앞으로도 한 명의 ‘평범한 기자’로 살겠습니다.
진실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기자의 일입니다. 권력집단에 불편한 진실, 감춰진 진실을 국민 앞에 드러내면 흔히 죄가 되는 이 ‘언론자유 후진국’에 산다고 해서 우리 기자가 해야 할 일이 어디 달라지겠습니까. 시절이 우울하기에 기자의 취재 및 보도 행위가 때로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걸을 수 있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가 합의한 저널리즘의 경계 안에 있다면 달리 이것저것 따질 게 있겠습니까.
또 하나의 질문입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이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것인가.’ 음, 잘 모르겠습니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저보다는 많은 동료 기자들이 현장에서, 기사로 직접 보여주기를 기대합니다. 저 또한 정수장학회 보도의 기회가 다시 찾아온다면 더 크게 귀를 열 준비가 돼 있습니다. 아울러 저는 지난 4년의 정수장학회 재판을 겪으며 언론자유란 누가 던져주는 게 아니라 끊임없는 투쟁과 도전을 통해 쟁취해야 하는 가치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노동조합 일을 마치고 다시 취재 현장으로 돌아간다면, 앞으로도 열심히 취재하고 보도하겠습니다. 투쟁~!
최성진 전국언론노조 한겨레신문지부장 csj@hani.co.kr
최성진 전국언론노조 한겨레신문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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