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케이 지국장 사태’로 갈등 확산
취재 막히자 아시아 총국 ‘탈 한국’
“신년회견 외신 배제”로 불만 폭발
청와대 사령탑 부재로 방향 잃어
“부정적 보도로 국가 신뢰 타격”
취재 막히자 아시아 총국 ‘탈 한국’
“신년회견 외신 배제”로 불만 폭발
청와대 사령탑 부재로 방향 잃어
“부정적 보도로 국가 신뢰 타격”
박근혜 정부의 ‘불통’ 이미지가 국내 정치를 넘어 외신기자 사회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떠올랐다. 새해 벽두부터 차별과 푸대접에 대한 외신기자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외신은 언론 자유가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에 한국 상황을 지구촌에 알려 한국의 민주화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박근혜 정권의 외신 홀대가 깊어지면서 국가 신뢰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는 외신기자는 270여명이다. 서울외신기자클럽(SFCC)에 등록된 매체사는 전세계 91곳이다. 일본 언론이 23개사로 단일국가로는 가장 많고, 북미 24곳, 유럽·중국 각각 13곳, 대만·홍콩 7곳, 중동과 러시아 각각 3곳, 기타 5곳 등이다.
서울 주재 외신기자들은 박근혜 정부 들어 한국에서 취재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졌다고 호소한다. 내신기자들과는 수시로 다양한 접촉을 하는 반면 외신과는 소통 부재로 정부 쪽 정보 확인이 안 되는 등 홀대가 극심하다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는 청와대뿐 아니라 주요 부처들도 외신 대변인을 두고 브리핑에 나서며 적극적으로 외신을 챙겼다. 취재활동이 원활해지자 유력 외신인 <워싱턴포스트>는 아시아 총국을 일본에서 한국으로 옮긴 바 있다. 지금은 한국은행 등에서 외신 대변인이 사라졌고, 워싱턴포스트도 다시 떠나갔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 행적에 의혹을 제기한 일본의 <산케이> 지국장 기소 뒤 외신들은 잇따라 “언론탄압”이라고 보도하면서 한국 정부와 갈등이 확대됐다.
박 대통령의 새해 회견과 관련해서도 청와대와 한국 언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돌았다. 제임스 피어슨 <로이터통신> 특파원은 회견 전에 트위터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사전 승인된 질문들”이라는 트윗과 함께 질문순서, 매체, 요지가 담긴 사전 질문지를 띄웠다. 아일랜드 언론인인 존 파워는 “한국 대통령의 답변을 위해 질문들을 미리 제출받았다. 외국 언론은 배제됐다”며 “기자회견에서 참석하는 기자들은 대통령 위한 질문 미리 제출하는 게 저널리즘인가요?”라는 트윗을 날렸다.
최근엔 현장에서 외신 업무를 지원하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의 해외문화홍보원과도 외신 기자증을 놓고 갈등이 빚어졌다. 그동안 1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외신증은 서울외신기자클럽 사무국에서 회원들의 변경자료를 일괄적으로 정리해 홍보원의 외신지원센터에 전달하면 발급해줬다. 그런데 홍보원이 지난달 사전 협의 없이 출생지·학력·경력·저술 등 기존보다 훨씬 강화된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이메일을 외신기자들에게 직접 보냈다는 것이다. 홍보원에선 외신의 취재 환경을 좀더 원활하게 해주려는 취지라고 설명했으나 외신증으론 정부부처 출입도 안되는 터라 “사찰 수준의 개인정보 수집”, “외신 길들이기”라는 회원들의 항의전화가 쏟아졌다. 원장이 유감표명을 하는 선에서 일단락됐지만 한국 정부의 외신정책에 대한 불신의 골을 더 깊게 만들었다.
일본 <산교타임즈> 서울지국장인 엄재한 서울외신클럽회장은 “외신정책은 외교보다 더 중요할 수 있다. 외신 소홀과 불통이 정점에 달해 언론 외교에 큰 손실이다. 박근혜 정부가 언론 외교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밝혔다.
외신기자들의 요구사항은 정부 접근권에 대한 내신과의 동등한 대우이다. 정부가 주요 정책이나 방향을 내놓을 때 어떤 맥락인지 배경 등에 대한 설명이 중요한데 국내 기자들에게는 별도 브리핑을 하지만 외신은 철저히 무시되는 실정이라는 것이다. 보도자료도 요약본만 영어로 나온다. 분야별로 담당 기자가 있는 큰 언론사와 달리 1명이 파견나와 모든 분야를 다루는 매체에선 자료까지 미약하면 편향되거나 잘못된 기사가 나갈 가능성도 높다. 사후약방문으로 해명 보도자료가 잦은 이유이다.
그런데도 청와대에 외신 업무를 총괄 지휘하는 시스템이 없다. 홍보수석실 소속의 외신 대변인은 참사관급(4급)이다. 외교부에서 과장급이 돌아가며 잠시 거쳐가는 곳으로 생각해 외신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신기자들은 현재 청와대 외신 대변인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과도 지난해 4월 한 차례 만난 것이 전부다.
외신정책이 일관되지 못한 것도 문제점으로 거론된다. 영미계의 한 외신기자는 “당국이 경제위기 조짐이 나면 그제서야 외신을 적극적으로 관리한다. 정권마다 외신을 바라보는 차이가 있겠지만 일관성이 있어야 글로벌 인맥을 이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해 대구대 교수는 “현 정부는 국제 여론이 어떻든 국내 여론만 잘 통제하면 된다는 생각에 외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다”며 “국제 여론시장의 오피니언 역할을 하는 외신에서 부정적 보도가 전달되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국가 신뢰도에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문현숙 선임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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