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KBS)이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해 지난해 5월15일 <뉴스9>에서 대통령을 부각하고 유족을 소홀히 보도한 점에 대해 사과 방송을 하고 있다. 한국방송이 최근 내놓은 ‘공정성 가이드라인’이 지켜진다면, 이런 일은 재발하지 않을 수 있다. 방송 화면 갈무리
방송사 첫 ‘공정성 가이드라인’
연구원·기자·피디·전문가 참여
공직자검증·선거·공공정책 등
7개 분야 제작 구체적 근거 마련
진실·공익 추구 언론 역할 명시
외압·자기검열 땐 대응책 없어
국장책임제 병행·외부와 피드백을
연구원·기자·피디·전문가 참여
공직자검증·선거·공공정책 등
7개 분야 제작 구체적 근거 마련
진실·공익 추구 언론 역할 명시
외압·자기검열 땐 대응책 없어
국장책임제 병행·외부와 피드백을
<한국방송>(KBS)이 최근 ‘공정성 가이드라인’을 작성해 언론계 안팎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지상파 3사는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는데, 공정성 항목을 떼어내 구체적 제작 지침을 담은 건 케이비에스가 처음이다. 뉴스·시사·교양 프로에 모두 적용된다.
조대현 한국방송 사장은 지난 2일, 창립 42주년 기념식에서 이런 내용이 포함된 ‘한국방송 미래혁신 방안’을 발표했다. 이는 한국방송이 지난해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의 ‘외압’ 폭로로 보도 공정성 논란이 일면서 길환영 당시 사장이 해임되는 파문을 겪으면서 작성된 것이다. 길 전 사장의 후임으로 임명된 조 사장은 지난해 7월 취임사에서 “(한국방송을 둘러싼) 공정성 시비를 끝내겠다”고 밝혔고, 그동안 가이드라인 제정에 공을 들였다.
‘실무자를 위한 한국방송 공정성 가이드라인’(113쪽짜리 책자 형태)은 △총론 △일반 준칙 3개(공정성·정확성·다양성) △7개 분야에 대한 제작 세칙(공직자검증·선거·여론조사·공공정책·사회갈등·역사·재난재해) 등으로 이뤄져 있다. 정책기획본부 방송문화연구소(김혜례 소장)가 제작을 주도했으며, 연구원·기자·피디 등 내부 구성원 10명과 이준웅 서울대 교수(언론정보학)가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의 자문도 거쳤다.
편집위원들은 이번 가이드라인이 기존의 추상적 원칙들을 제작 세칙으로 구체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방송문화연구소 강영희 박사는 “영국 <비비시>(BBC)가 ‘불편부당성 원칙’을 스스로 정하고 수정, 보완하면서 공정성 논란에 대응하듯이, 한국방송도 제작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 준칙을 만들어 대응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졌다”고 말했다. 이준웅 교수도 “1990년대 한국방송이 만든 ‘방송제작 가이드라인’에도 공정성 관련 부분이 있지만 추상적이다. 기자, 피디 등 현장 제작진과 제작책임자 등이 프로그램을 만드는 과정에서 토론을 벌일 수 있는 구체적 근거들을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가이드라인을 보면, “공정성은 비례적이거나 산술적인 균형 또는 외견상의 중립성에 의해 확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정의를 추구하는 윤리적 자세로 접근할 때 확보할 수 있다”고 명시하는 등 진실과 공익 추구가 언론의 역할이자 ‘공영방송’의 핵심 가치임을 명시하기도 했다.
외부 전문가들은 가이드라인 제작 자체로 긍정적인 일이지만, 한국방송 쪽이 가이드라인 전문을 널리 알리고 자주 활용하는 방식으로 위상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국방송은 가이드라인 책자를 방송 유관 기관에 100부 정도 배포했는데, 전문을 담은 전자문서는 바깥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미디어학부)는 “현장 기자들이 데스크들과 이를 근거로 논쟁하면서 ‘진짜 가이드라인’으로 역할 하려면, ‘대국민선언’이자 약속의 형태로 지금보다 더 투명하게 공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성옥 경기대 교수(언론미디어학과)는 “비비시가 스스로 만든 가이드라인을 근거로 자체 심의를 하고 중요 선거가 끝날 때마다 결과를 공표하듯이, 한국방송이 가이드라인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시민사회와 꾸준히 피드백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심의에도 이번 가이드라인이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도 나왔다. 방심위는 그동안 방송의 공정성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논란을 해소하기보다 갈등을 키운다는 지적이 많았다. 윤성옥 교수는 “시민사회에서 방심위의 심의규정과 한국방송의 가이드라인을 비교해 어느 것이 더 적합한지 따지게 되면서 갈등이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방송의 내부 구성원들은 평가에 조심스럽다. ‘윗선’에서 훼손시키는 방송 공정성에 대한 대응책이 없어, 가이드라인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이다. 안주식 한국방송 피디협회장은 “사장의 직접 지시나 외압도 문제지만, 내부에서는 중간간부들이 권력에 잘 보이고 싶어 저지르는 자발적 자기검열이 가장 문제다. 이 점을 해결해야 실질적인 제작 자율성이 확보된다는 게 과거 6~7년 내부 투쟁 경험”이라고 말했다. 김철민 한국방송 기자협회장도 “지난해 공정성 가이드라인 제작 소식을 듣고 사쪽에 협회 차원에서 참여하고 싶다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길환영 전 사장 파문 때 보도국 기자들이 총의를 모은 ‘보도 독립과 뉴스 개선을 위한 개혁안’을 반영해달라고 전달했지만 (가이드라인에) 받아들여진 게 없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장책임제 같은 제도적 대응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한국방송>(KBS)이 세월호 참사 보도와 관련해 지난해 5월15일 <뉴스9>에서 대통령을 부각하고 유족을 소홀히 보도한 점에 대해 사과 방송을 하고 있다. 한국방송이 최근 내놓은 ‘공정성 가이드라인’이 지켜진다면, 이런 일은 재발하지 않을 수 있다. 방송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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