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자원외교 해부’ 독자들 호응 끌어냈지만
시의성·사실 확인·비판 균형성에 아쉬움
시의성·사실 확인·비판 균형성에 아쉬움
<한겨레>가 지난주, 뜻깊은 기획물을 선보였다. 1월19일치부터 닷새 동안 연재된 ‘MB 31조 자원외교 대해부’가 그것이다. 특별취재팀이 세달 동안 추적한 성과물이었다. ‘화려한’ 편집은 한겨레의 의지와 의욕을 웅변하는 듯했다. 지면을 할애하는 데 아낌이 없었고, 레이아웃은 파격적이었다. 독자들도 호응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반응은 뜨거웠다.(아래의 ‘댓글 중계’ 참조)
이명박 정부의 ‘자원외교’는 최근 너나없이 분노하는 ‘공분’의 표적으로 떠오르고 있는 터다. 막대한 예산을 들인 사업들이 줄줄이 ‘실패와 고전의 늪’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이미 여야는 이명박 자원외교 문제에 대한 국정조사를 벌이기로 합의했다. 한겨레도 이번 기획 의도를 밝혔듯, 시리즈는 국회 조사 활동에 때맞춘 ‘지상 국정조사’를 보는 듯하다. 시리즈는 몇 가지 놀라운 사실 또는 의혹들을 전한다. 특히 페루와 볼리비아 자원개발 현장 취재팀은 이명박 자원외교의 실체를 엿볼 수 있게 한다. 다음은 시리즈가 제시한 주요 내용이다.
“이명박 정부는 5년 동안 자원외교에 31조원을 투자해, 이미 확정된 손실만 4조원에 가깝다. 석유공사는 3억달러짜리 페루 석유회사를 12억달러에 인수했다. 그나마 유전 탐사 광구에서는 석유보다 물을 더 퍼내고 있다. 세계 최대 매장량을 자랑하는 볼리비아 리튬 개발은 결코 실현될 수 없는 헛꿈이었다. 멕시코 구리광에서는 거의 4천억원이 행방불명됐다. 관련 공기업들은 사업성보다는 ‘엠비(MB)의 꿈’을 위해 돌진했다. 그들은 엄청난 사업 손실에도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한 공기업 실무자는 ‘안될 사업’의 무리한 추진에 부담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까지 벌어졌는데, 당시 주무 장관은 ‘총리실에서 주도한 일’이라며 발뺌한다.”
한겨레의 시리즈는, 물불 가리지 않고 ‘자원 확보 경쟁’에 나선 이명박 시대의 요지경을 보여준다. 독자들은 닷새 동안, ‘광대한’ 지면 위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접했지만 뭔가 허전함을 느꼈으리라. 그 까닭은 ‘탐사 보도’의 세가지 요건에 숨어 있다. 하나, 시의성은 적절한가. 둘, 충분하고도 친절한 현장 취재와 사실 확인 작업이 보도의 신뢰성을 보장하고 있는가. 셋, 탐사 주제는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가.
앞에서 언급했듯, 국정조사가 이번 기획의 시의성을 돕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때늦은 기획’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명박은 ‘경제대통령’ 이미지로 2007년 대선에서 가뿐히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가 ‘경제 제일’ 시대가 요구하는 강점을 지닌 것은 사실이었다. 대기업 대표, 그것도 ‘속도전’에 능한 건설사 최고경영자 경력은 그만의 자산이었다. 거기에 시대와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력이 보태진다면, 금상첨화 아닌가. 그러나 그는 너무 일찍 자신의 밑천을 드러냈다.
이명박의 ‘시야’는 좁았고, 철학적 밑바탕은 천박했다. 그는 ‘청계천’에서 얻은 점수를 무기 삼아 ‘4대강’을 파헤쳤다. 그는 자연을 살리는 일과 죽이는 일을 분간하지 못했다. 이명박은 먼 장래를 내다보는 데도 익숙하지 않았다. 그는 임기 초부터 ‘눈앞의 성과’, ‘생색내기’에 급급해하는 모습이었다. 2008년 쿠르드 유전 개발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과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4기 수출 과정에서도 성과에 대한 뻥튀기 의혹과 계약 조건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엠비 자원외교’에 대한 탐사보도 시점은 적어도 4~5년 전이 적절했다고 볼 수 있다.
기사의 친절성, 사실의 정확성, 주장의 명료성과 관련된 문제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문제점이 더러 눈에 띈다. 무엇보다 르포 기사의 현장감이 독자 기대에 부응했는지 의문이다. 19일치 6면 ‘볼리비아 우유니 자원개발 현장’ 기사엔 ‘현장’이 없다. 대신 이 기사 앞부분엔 주제와 무관한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의 풍경이 그려져 있다. 컨소시엄을 주도한 기업 포스코는 ‘현지 파견 직원에게 1년 동안, 어디에서, 무슨 일을 시키다가’ 철수시킨 것인지 궁금하다. 이상득을 큰소리치게 만든 ‘양해각서’의 실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아쉽다.
같은 면의 르포 기사 ‘페루 해양시추 사비아페루 현장’ 역시 마찬가지다. 12억달러에 인수한 페루 석유회사에 대한 현지 대학 교수의 진단은 타당한 것인가. 그의 ‘3억달러’설 신빙성은 어느 정도인가. 믿을 만하다면, 12억달러 인수 결정은 명백한 범죄 아닌가. 그 협상을 주도한 한국 쪽 대표는 도대체 누구인가, 멍텅구리 아닌 그는 무엇 때문에 인수 가격을 4배나 부풀린 것인가. 또 ‘(탈라라) 이곳엔 없고, 리마에 있다’는 한국인 직원을 찾아 나선 흔적도 명확하지 않다. 현지 법인의 현재 경영 상황, 한국 쪽 인력 규모, 경영 참여 형태 등도 궁금하다.
23일치 4면 ‘풀어야 할 5가지 의문’ 가운데 멕시코 구리광 ‘볼레오’에서 사라졌다는 3962억원에 대한 설명도 미흡하다. 기사에 언급된 횡령 사건이라면,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저지른 사건인지 전혀 설명이 없다. 실종된 돈의 주인 또는 피해자도 명확하지 않다. 사업 주체인 한국광물자원공사인지, 이 사업 채권은행인 미국 수출입은행인지도 불분명하다. 횡령 사건에 대한 수사는 어디서(한국 혹은 멕시코, 아니면 미국)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 전체적인 내용이 명쾌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이번 ‘탐사기획’은 △뒷돈과 조작의 신화 △강압과 왜곡, 지경부 △재앙이 된 무능, 공기업 △눈먼 돈의 비극, 정경유착 △증발한 수조원, 의문과 책임 등 5개 소주제를 얼개로 삼았다. 시리즈는 몇 가지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자원외교의 허상을 고발하는 데 기여했다. 탐욕과 비리, 무능과 무책임, 강압과 조작으로 얼룩진 이명박 시대 자원외교의 민낯을 드러내는 데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비판 대상자에 대한 배려가 미흡한 점은 아쉽다. 자원외교 자체는 어느 누구도 그 중요성을 부정할 수 없다. 사안의 심각성, 시급성에서 결코 뒷전으로 밀려날 문제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정부 자원외교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아이템도 필요했다. 대형 기획물인 만큼 ‘반론권’ 차원에서도 ‘성공과 실패’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전경’을 보여주는 그림이 요긴했다. ‘문제의 10인’에게 엄정한 책임을 묻기 위해서도.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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