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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 시현’ 간접광고까지 허용되나

등록 2015-01-26 20:12수정 2015-01-26 21:38

2013년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한국방송2·2012)는 여주인공이 간접광고 제품인 스마트폰의 특정 기능을 이용해 폐회로티브이(CCTV) 정지화면 중 차량 부분만 잘라내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시현해 방심위로부터 ‘해당 방송 프로그램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 제재를 받았다. 화면 갈무리
2013년 드라마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 남자>(한국방송2·2012)는 여주인공이 간접광고 제품인 스마트폰의 특정 기능을 이용해 폐회로티브이(CCTV) 정지화면 중 차량 부분만 잘라내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시현해 방심위로부터 ‘해당 방송 프로그램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 제재를 받았다. 화면 갈무리
방통위,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단순 노출’ 넘어 ‘특수기능 시현’ 가능
“드라마·예능 프로 홈쇼핑화” 우려
방통위 “규제 완화 아니라 구체화”
“(휴대전화 화면과 번호판) 위아래 다 눌러도 돼요.”

2013년 11월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할배>(티브이엔)에서 나영석 피디는 배우 박근형에게 최신 휴대전화 사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전화기는 삼성전자가 중·노년층을 대상으로 내놓은 폴더형 스마트폰이다. 나 피디는 “보기가 편하세요”라고도 했고, 박근형은 나 피디가 가르쳐 준 대로 따라했다. 이 장면은 30~40초 동안 이어졌고, 따로 떼어내 휴대전화 시에프(CF)로 써도 손색 없을 정도였다. 삼성전자는 이 프로에 간접광고와 협찬을 동시 계약했다. 이 방송은 지난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로부터 법정 제재(주의)를 받았다. 현재 간접광고는 법령상 상품 등의 ‘단순 노출’만 허용한다.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이런 간접광고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해 말 입법예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 시행령을 바탕으로 방송을 심의해야 하는 방심위 내부에서조차 반대 의견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는가 하면, 언론·시민단체들도 공동 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개정안을 보면, 제59조의3에서 ‘시청 흐름을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는 전제 아래 ‘상품의 기능 등을 허위 또는 과장 시현하는 경우’를 제한한다는 내용이 새로 들어갔다. 이를 두고 방심위가 적용 중인 간접광고 심의 기준보다 허용범위가 넓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현재 방심위가 만든 ‘방송 심의 규정’에는 “동종 또는 유사 상품에 일반적·보편적으로 적용되는 기능을 제외하고는, 상품 기능을 구체적으로 시현하면 안 된다”고 명시했다. 이를테면 전화기의 경우 그냥 전화를 걸 순 있지만, 그 제품만의 특수 기능을 시현하지 못하도록 제한한 것이다. 이는 2010년 간접광고 합법화 뒤 프로그램 제작 일선에서 간접광고 심의 기준의 ‘모호함’을 호소하자, 방심위가 지난해 1월 제한 항목을 구체화해 개정할 때 포함된 것이다.

2013년 드라마 <엄마가 뭐길래>(문화방송·2012)는 간접광고 제품인 스마트티브이의 기능을 구체적으로 시현해 ‘해당 프로그램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 제재를 받았다. 화면 갈무리
2013년 드라마 <엄마가 뭐길래>(문화방송·2012)는 간접광고 제품인 스마트티브이의 기능을 구체적으로 시현해 ‘해당 프로그램 관계자에 대한 징계 및 경고’ 제재를 받았다. 화면 갈무리
이런 사정 탓에 방심위 안팎에선, 허위·과장의 경우에만 상품 기능 시현을 제한하는 이번 개정안을 놓고 “방통위가 간접광고 상품 시현을 전면 허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상위법령인 시행령이 바뀌면 방송심의규정은 무력화된다. 허위·과장 광고는 표시광고법에서 이미 불법으로 규제되고 있으나, 신기술의 경우 방심위가 허위·과장을 판단하기 어렵다. 장낙인 방심위원(야당 추천)은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개정안이 확정되면 드라마, 예능, 정보 프로 등이 간접광고를 활용한 ‘홈쇼핑’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며 반대 의견을 명확히 했다. 방심위는 이달 말까지 방통위에 의견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심위지부, 민주언론시민연합도 최근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간접광고 합법화가 5년째 접어들면서 방심위의 규제 기준이 차츰 정착되고 있는 가운데, 다시 무분별한 기능 시현이 남발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시행령이기 때문에 다음달 2일 입법 예고가 끝나면 국회를 거치지 않고 규제개혁위원회, 법제처, 차관회의, 국무회의 심의만 거치고 공포, 시행된다.

지상파의 경우 ‘과도한 기능 시현’으로 방심위 제재를 받은 사례가 2012년 8건, 2013년 7건에서 심의규정 개정 뒤인 2014년에는 1건으로 줄었다. 반면 <티브이엔> 등 일부 유료방송에선 과도한 기능 시현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재허가·재승인 심사를 거치지 않아 방심위 제재에 별다른 부담을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이런 행태가 지상파로 번질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나아가,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이 시청권 훼손을 넘어 방송 상업화 심화로 이어질 것을 걱정했다. 프로그램 안에 사실상의 ‘직접 광고’가 범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윤여진 언론인권센터 사무처장은 “전자기기의 신기술을 시현하는 건, 그 기술이 탑재된 제품을 사라는 권유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송종현 선문대 교수(언론광고학부)는 “이번 개정안은 간접광고를 일반 광고와 동일시하는 인식에서 나온 것 같다. 간접광고는 어디까지나 ‘간접’광고여야 한다”며 “‘방송과 광고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방송법의 대원칙을 깨선 안 된다”고 했다.

이에 대해 방통위 쪽은 아예 ‘규제 완화’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반상권 방통위 방송광고정책과장은 “규제 완화가 아니라 구체화다. 시현에 있어 보편·특수기능의 구분은 무의미하다. 특수기능 시현이더라도 시청 흐름만 훼손하지 않으면 된다. 시청권 보호가 개정안의 최우선 기준”이라고 주장했다. 특수 기능을 보여주는 장면이 방송에 잘 녹아들면 문제 없다는 의미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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