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프로듀서
해고 등 징계 무효 확인 소송 2심 최후 진술
“MBC노조, 진보정권 때도 공정성 사수
노조 있었기에 ‘황우석 의혹’ 방송 가능
정권이 임명한 편향된 경영진 점검한 게 노조
노조는 어느 정권에서든 공정방송 주장”
“MBC노조, 진보정권 때도 공정성 사수
노조 있었기에 ‘황우석 의혹’ 방송 가능
정권이 임명한 편향된 경영진 점검한 게 노조
노조는 어느 정권에서든 공정방송 주장”
“<문화방송>(MBC)은 2012년 170일 파업 때의 불신·갈등이 너무 커서, 지금도 그 상처는 물론 회사 경쟁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파업을 주도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문화방송 사쪽을 대리하는 변호사는 지난 16일 오후 서울고등법원 서관 제305호 법정에서 이렇게 말했다. 재판은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이하 노조)가 사쪽을 상대로 낸 해고 등 징계 무효 소송의 2심으로, 이날은 최후변론이 있었다.
2012년 파업을 주도하거나 거기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최승호 피디, 박성호 기자, 정영하 전 노조 위원장, 강지웅 전 노조 사무처장, 이용마 전 노조 홍보국장 등 5명은 방청석에서 공판을 지켜봤다. 이들은 지난해 1심에서 “해고 무효”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사쪽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법원은 2심 진행 중에 이들이 낸 복직 가처분 신청에도 손을 들어줬지만, 사쪽이 지금도 일을 주지 않아 사실상 해고나 다름 없는 상태다.
쟁점은 이들이 주도·참여한 파업이 정당했는지 여부다. 1심 재판부는 ‘공정방송’이 문화방송 종사자들의 주요 근로 조건에 해당하므로, 이를 지키기 위한 노조의 파업은 정당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해고 징계는 과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문화방송 사쪽 대리인은 최후 변론에서 2가지를 주장했다. △노조의 파업 목적은 ‘김재철 사장 퇴진’이지, ‘공정방송’이 아니고 △설령 ‘공정방송’이 파업 목적이더라도, 방송법상 이를 담보할 주체는 노조나 개별 근로자가 아니라 방송사업자이기 때문에 파업은 불법이라는 주장이다.
사쪽 대리인은 “노조에 ‘방송 공정성’은 (컴퓨터) 바탕화면의 배경과 같은 구호에 불과하다. 노조는 노동자, 민중연대 등 정치적 편향성이 심하다. 일반인이 보면 그럴싸하지만, 노조는 진보진영 입장에 맞으면 공정하다고 하고 아니면 불공정하다고 주장할 뿐”이라며 “그 예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반대집회를 왜 (뉴스나 시사프로에서) 다루지 않느냐고 항의하면서도, 찬성집회를 왜 다루지 않느냐고는 항의하지 않는다. 이런 노조가 어떻게 ‘공정’을 논하느냐”고 말했다. 그는 “문화방송이 ‘노영방송’의 그림자를 지우고 공영방송으로서 본모습을 찾도록 도와달라”며 최후 변론을 마무리지었다. 요컨대 2012년 문화방송 노조의 파업은 특정 정치색을 띤 집단의 불법 해사 행위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이에 반해, 노조를 대리하는 신인수 변호사는 최후 변론에서 “기자·피디에게 공정방송과 제작 자율성이 근로조건이 아니라면, 그냥 돈 받고 일하는 사람들이란 얘기인가? 이들에게는 공정방송과 제작자율성이 헌법과 방송법에 규정된 가장 중요한 직업 정체성”이라며 “부인, 아이를 둔 40~50대 가장들이 대출로 생계를 유지하며 6개월10일이나 파업을 벌였다. ‘뉴스 없는 뉴스데스크’, ‘보도지침이 부활한 <피디수첩>’을 견딜 수 없는 구성원들이 심각한 고통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업을 선택하지 않으면 노조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최승호 피디의 최후 진술이 이어졌다. 최 피디는 “피고(회사)쪽 대리인이 노조가 정치성 있는 것처럼 말해서, 그 부분에 대해서만 말하겠다”고 운을 떼었다. 그는 “2012년 파업 때 정년 퇴직을 앞둔 40대 후반에서 50대 간부, 선배들까지 참여했다. 그들은 노조를 탈퇴한 지 오래됐으며 간부 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왜 파업에 참여했겠나?”라는 되물었다.
최 피디는 이어 “1988년 문화방송 노조가 처음 파업을 할 때부터 구호는 ‘황선필(당시 사장) 퇴진’이었다. 황선필 개인이 미워서가 아니다. 청와대 대변인 출신이 내려와 방송을 망치는 걸 막는 데 (사장 퇴진 투쟁의 방식이) 적합했기 때문에 선택한 구호다. 공정방송을 찾자는 의미”라고 했다. 문화방송은 1987년 방송사 최초로 노조를 만들었고, 전두환 정권에서 대변인을 지낸 황선필 당시 사장의 편파 방송 지시, 인사 전횡 등을 규탄하는 파업을 벌였다. 당시 파업을 주도하고 2012년 파업에도 참여, 2013년에 문화방송을 정년퇴직한 안성일 전 노조위원장도 이날 공판을 방청했다.
최 피디는 “노조는 보수든 진보든 정권을 가리지 않고 방송을 내보내서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입장이었다. 2005년 ‘황우석 사태’를 방송할 수 있었던 것도 노조가 강력하게 버텨주지 않았다면 할 수 있었겠는가”라며 “저를 해고한 선배들에게 물었다. ‘당신들 가운데 진보정권 시절 문화방송이 편향 방송했다고 항의한 사람이 있느냐?’고. 없다. 그때도 항의한 건 노조였다. 그때도 정권에 의해 임명된 경영진의 편향된 성격을 점검한 건 노조”라고 주장했다. 노조의 활동은 예나 지금이나 특정 정치 세력의 유불리를 따지는 게 아니라 공정방송을 지키는 게 최우선이라는 것이다.
최 피디는 “노조는 문화방송 구성원들의 마음 하나하나가 모여서 만들어진 것이고, 구성원의 마음들이 짓밟히자 이런 마음들을 대변하는 노조가 파업을 이끈 것”이라며 “이미 노조를 탈퇴하고 간부까지 역임한 선배들이 파업에 참여한 것도 자신들이 만들어 온, 사랑해온 문화방송이 제 모습을 잃어가는 게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게 파업의 진실”이라고 진술을 마무리했다.
2심 선고는 오는 4월1일 나올 예정이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