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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미디어

깨어있는 시민의 힘으로…언론개혁 30년

등록 2014-12-15 19:52수정 2014-12-15 21:26

[민언련 30돌]
정권 비판한 해직 언론인 주축
1984년 언론운동 싹 틔워
‘말’지 창간에 보도지침 폭로도

언론학교 등 시민과 접점 늘리며
일상적 보도 모니터링 체계 구축
웹진·팟캐스트로 영역 차츰 넓혀
1984년 창립된 민주언론시민연합(민언련)이 오는 19일 창립 30돌을 맞는다. 민언련은 ‘언론권력’을 민주주의와 시민의 입장에서 일상적으로 견제·감시해 온 대표적인 시민단체다. ‘민언련 30년’에는 우리나라 언론 자유의 확장과 위기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 군사독재정권 시절, ‘대안 언론’ 활약

민언련의 첫 이름은 1984년 12월19일 세워진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다. 엄혹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언론운동의 싹을 틔운 것이다. 박정희 정권 때 언론 자유를 지키려다 쫓겨난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해직 기자들,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폐합과 비판 성향의 언론인 ‘숙정’ 작업으로 해직된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출판인 등이 주축을 이뤘다.

정권의 언론 장악과 사주들의 횡포를 온몸으로 겪은 해직 언론인들은, 정권의 입맛에 맞춰진 신문·방송의 보도 행태를 잘 알고 있었다. 언협은 창립 선언문에서 “강제된 힘으로 국민의 의사를 지배하려는 것이 폭력인데, 제도언론은 가장 큰 정신적 폭력범”이라며 “언론 부재의 캄캄한 암흑기를 언협이 선두에 서서 밝혀 나가자”고 했다. 언협은 이 같은 사명감으로, 이듬해인 1985년에 기성 언론에 결코 나오지 않는 ‘진실’을 전하고자 월간지 <말>을 창간한다.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당시 경찰은 인쇄소 앞에서 말 창간호 3000부를 모두 압수할 정도로 노골적 탄압을 이어갔다. 하지만, 언협은 비밀리에 마련해둔 예비본으로 말을 재발행했으며, 한 사람이 경찰에 계속 잡혀가는 일을 막으려 매번 편집인을 바꿨고 이들은 돌아가면서 구류를 살아야 했다. 이 와중에 말은 매번 빠르게 매진됐고 학생들은 복사본을 돌려봤다. 1986년에는 정권의 ‘보도지침’(문화공보부가 매일 신문·방송에 사건별 보도 가능 여부, 비중, 용어 등에 대한 보도 가이드라인을 시달한 일)을 폭로하기도 했다.

1988년 국민주 모금으로 만들어진 <한겨레신문> 창간에도 큰 구실을 했다. 언협의 다수 회원들이 1987년 ‘새신문 창간’에 관한 발기에 참여하고, 언협 초대 의장인 송건호는 한겨레의 초대 사장을 맡았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독재정권 시절 언협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언로를 뚫어야 민주주의 회복의 실마리가 생긴다’는 사명감으로 이뤄진 언론운동”이라고 말했다.

■ 1990년대 ‘시민 운동’으로 전환

민언련은 1990년대 시민운동으로 전환했다. 1991년 언론학교, 1992년 대학언론강좌 등을 시작하면서 시민과의 접점도 늘렸다. 지금도 매년 4차례 열리는 언론학교는 현재까지 졸업생 7000여명 이상을 배출하며 시민언론운동의 기반을 다졌다. 언론인 송건호, 리영희 등이 강사로 참여해 민주주의와 언론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해 얘기했다.

시민 회원들은 언협 안에 ‘신문·방송 모니터모임’을 만들어 직접 언론 보도 감시에 나서기도 했다. 총선·대선이 치뤄진 1992년 언협과 다른 단체들이 모여 ‘선거보도감시연대회의’를 처음 출범시키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일상적인 모니터 체제가 갖춰지면서 주요 국면마다 언론 보도를 살폈다. 신태섭 동의대 교수(광고홍보학)는 “민언련은 시민의 관점에서 ‘알 권리’ 및 ‘민주주의 사회의 건강한 여론 형성’이란 두 기준으로 언론을 상시 모니터하고 이를 토대로 의제를 제기해 왔다”고 말했다.

민언련은 언론 소유의 집중을 막고 독립성·공정성 등 권리와 책무를 부여하는 법제 개선에 기여했고, 조선일보 반대, 조중동 방송(종합편성채널) 출범 저지 등 보수 독점적 여론 구도를 정상화하려 꾸준히 노력했다. 1990년대부터 각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민언련을 만들어, 서울을 비롯한 경기·전북·충북·대전충남·광주전남·경남·부산·강원 등 전국 9개 지역에 민언련이 설립돼 있다. 현업 언론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강성남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은 “언론인들은 자신의 노동에 대해 방향을 잃었을 때 민언련의 뿌리와 활동을 생각하며 혼란함을 정리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민언련은 1998년에 언협에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으로 이름을 바꾸고 사단법인으로 개편했다. 2006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현재 회원 1300여명이 내는 회비(월 1300만원 안팎)와 강좌 수익만으로 살림을 꾸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2008년부터 방송 장악 기도 등을 노골화하면서, 민언련은 더 바빠졌다. 세월호 참사 때는 쏟아지는 보도에 대한 감시에 매달리다 건강을 해친 활동가도 있었다. 김언경 민언련 사무처장은 “종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장 등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서 감시 대상이 늘어나는 와중에 언론 자유는 후퇴하는 상황이라 일손을 더 늘리기 어려운 재정 상태가 아쉽다”고 말했다.

쉽지 않은 상황에도, 민언련은 활동 영역을 꾸준히 넓히고 있다. 올해 <이(e)-시민과언론>이란 웹진을 만들었고, 회원들의 요청으로 오디오 팟캐스트도 만들 계획이다. 각종 ‘언론 모니터 보고서’의 가독성을 높이는 방안도 찾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예비 언론인을 위한 전문 교육 강좌도 꾸릴 참이다. 18일 저녁 6시30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창립 30주년 기념식을 연다.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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