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워터게이트 추문으로 닉슨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물러난 지 40년이 됐다. 민주 언론의 첫째 임무가 주권자인 국민을 대신한 권력 감시기능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대통령이 언론 보도 때문에 자리에서 물러난 것은 미국 언론사상 초유의 일이다. 워터게이트가 언론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기록되는 이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워터게이트의 교훈’이 과연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지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워터게이트의 희생자로 자처하는 미국 공화당 보수세력은 언론의 권력 감시를 보수정권에 대한 진보언론의 공격으로 폄훼해 왔다. 이에 자신의 권력을 지킬 ‘옹호언론 체제’의 구축에 나섰다. 이들이 워터게이트로 얻은 ‘진짜 교훈’의 결과는 자기 방어의 언론체제 구축이었다.
오늘날 미국 정치 판도는 공화당이 민주당을 압도하고 있는 불균형 상태다. 이런 결과를 놓고 미국의 원로 언론인 로버트 패리는 “공화당이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진짜 교훈을 배운 데 비해 민주당은 교훈을 배우지 못한 것 같다”는 평가를 내린다. 약간 비꼬는 것이지만, 자기 세력을 보호할 언론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실용적인 지적일 수 있다.
실제 공화당의 윌리엄 사이먼 전 재무장관 등 보수 정치인들은 닉슨 사임 뒤 자금을 모아 우익 언론매체 인프라를 구축했다. 오늘날 미국 정치에서 가장 위협적인 미디어 조직이다. 앞으로 있을지 모를 ‘또 하나의 워터게이트’로부터 미래의 공화당 대통령을 보호할 미디어 인프라를 구축한 것이다.
반면, 진보 세력(리버럴)은 주로 워터게이트를 하늘에서 떨어진 것으로 간주하고 미래의 공화당 정부가 탈선할 때는 주류 언론이 언제든 비슷한 선물을 제공해 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는 미디어에 직접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어가 제구실을 해주길 바라는 것으로, 미디어의 역할이나 힘을 이용하는 데 아주 소극적인 태도다.
미디어를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적극 이용하려는 인식이나 태도는 미국이나 한국의 보수정당이 유사한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미디어는 일종의 선전매체이지 민주언론이라고 볼 수 없다.
우선 미국 공화당은 언론을 정치의 도구로 이용하는 데 상당한 연구를 한 인상이다. 이를테면 기자들은 공화당의 속사정을 자유롭게 취재하지 못하도록 했다. 기자들의 취재를 제한하거나, 공화당을 해칠 수 있는 사건에 대해 데스크에 압력을 넣는다. 또 하나의 워터게이트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철저히 언론을 통제한다는 기본 방침 탓이다.
레이건 정부 시절 이란-콘트라 사건 때 이런 전략은 효과를 톡톡히 봤다. 니카라과의 반공 게릴라에게 무기를 공급하기 위해 이란과 무기거래를 했고, 마약 거래에도 개입한 대형 추문이다. 전부 불법행위다. 기자들이 워터게이트 때처럼 취재했다면 또 하나의 워터게이트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를 폭로한 <워싱턴포스트>까지도 사건이 확대되는 것을 피했다. 캐서린 그레이엄 발행인은 당시 “또 하나의 워터게이트를 원치 않는다”는 태도를 취했다. 워터게이트 보도는 기자의 의욕뿐 아니라 사주의 찬성이 없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추론만 남긴 채 이 사건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레이건 대통령 이후 미국에서도 권언유착이 형성된 듯하다. 결국 언론의 수준, 민주언론의 성장 정도는 한 나라의 정치와 사회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아닐까 한다.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장행훈 언론광장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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