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대현 한국방송 사장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공개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경영혁신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한국방송 제공
취임식서 개념기업·철학담긴 방송사 시사
보도·제작쪽 인사가 공영방송 첫 시험대
새노조 “국장책임제 등 5대선결과제” 요구
보도·제작쪽 인사가 공영방송 첫 시험대
새노조 “국장책임제 등 5대선결과제” 요구
정권 편향 보도로 공영방송 위상을 저버렸던 <한국방송>(KBS)이 제자리를 찾아갈 수 있을까.
조대현 한국방송 새 사장은 28일 취임사를 통해 “공정성 시비를 확실히 끝내겠다”며 방송의 정상화에 앞장설 것을 역설했다. 이를 위해 외부의 전문가들과 저널리즘을 확립하겠다고 강조했지만 보궐임기 사장이 위기의 한국방송을 단번에 일으켜세울 수 있을지에 대해선 우려의 시각이 적지 않다.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본부(새노조)는 조 사장 취임 뒤 “제2의 길환영 사장이 되어선 안 된다”며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방송법 개정 추진, 국장책임제 도입 등 5대 선결 과제에 대한 청사진을 요구하고 있고, 한국방송노조(1노조)는 경영개선 청사진이 모호하다고 비판에 나섰다.
조 사장은 취임식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공정성 준수 등 5대 경영비전을 발표했다. 조 사장이 밝힌 5대 경영비전은 △올해 적자를 받드시 막아내겠다 △공정성 시비를 확실히 끝내겠다 △인사의 권위·조직문화를 회복하겠다 △2015년 1월1일 프로그램 달라질 것이다 △공영방송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주겠다 등이다.
그는 스웨덴의 다국적 가구기업인 이케아를 언급하며 개념 기업, 철학이 담긴 회사를 찾아보겠다는 의지를 시사했다. 이케아는 저렴한 가격에 디자인이 우수하고 기능성이 높아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기업이다. 그는 “이케아의 목적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일상 생활을 안겨주는 것”이라며 국민의 방송인 한국방송의 철학적 목적을 되묻는다.
조 사장의 임기는 지난 6월 해임된 길환영 전 사장의 잔여 임기인 내년 11월까지이다. 1년4개월짜리 사장인 셈으로, 방송 정상화에 경영적자 흑자 전환, 콘텐츠 혁신 등을 모두 해결한다는 것이 만만찮은 일이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해나갈 수 있을지를 살펴볼 수 있는 사장으로서의 첫번째 시험대는 보도·제작 관련 인사이다. 보도·제작 인사는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분야여서 초미의 관심이 될 수밖에 없다.
조 사장도 취임식에서 이 점을 중시해 ‘상식과 원칙에 맞는 인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저 사람은 할 만해.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인물로 인사를 하겠다며 인사 청탁하지 말라고 쐐기를 박았다.
한국방송에서 조 사장과 함께 일해본 경험이 있는 이규환 한국방송 이사는 “자신이 할 말은 책임지는 사람이기 때문에 비상식적인 행동은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뭐니뭐니 해도 인사가 만사인데 원칙대로 인사가 실시될지 궁금하다”고 밝혔다.
조 사장은 이번 사장 선거에서 한국방송 이사들 11명 가운데 6표를 얻어 최종 후보가 되었다. 여당추천 이사 7명, 야당 추천 이사 4명 등 전체 이사 11명 가운데 집권당이 과반수를 넘는 이런 체제에서는 정권이 점찍은 사람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낼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시민단체와 노조 등에서 다른 정당에서도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을 뽑자는 특별다수제 도입을 주장해왔다. 이는 정파적 인물을 배제하고 중립적 인사여서 자칫 소신을 펼치지 못하는 인사가 사장이 될 수 있다는 단점도 있으나 정권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 특별다수제가 관철되지는 않았지만 다른 정당 쪽의 표를 2표나 획득해 실질적으로는 특별다수제 도입의 시험대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방송의 정상화를 위해 자칫 사면초가인 조 사장의 리더십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미디어학)는 “새 사장은 야당 쪽 이사들만이 아니라 여당 후보 이사들의 동조를 받아 사장후보로 뽑혔다. 공영방송으로서 이런 모델이 성공하려면 조 사장도 현명하게 일해야겠지만 구성원들도 중립적 사장이 갖는 현실적 한계를 인정하고 사장의 리더십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략적으로도 과도한 요구를 하지 않아야 한다. 실질적인 성과가 중요한데 자칫 역풍을 맞거나 퇴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방송계 안팎에서는 한국방송의 보도관행이 바뀔지에 대해 주목한다. 공영방송이 아닌 ‘청와대방송’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정부 비판보다는 대통령 동정과 홍보에 치중했던 관행을 탈피할 수 있겠느냐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조 사장이 외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느냐 못지 않게 보도국의 변화가 초점이다. 특히 보도국 간부들 가운데 상당수가 대부분 정권과 연결돼 스스로 강한 힘을 보유하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피디 출신인 조 사장이 과연 보도국을 장악할 수 있을지, 앞으로 보도국의 인사가 주목받는 이유이다.
문현숙 기자 hyuns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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